귀국 후, 첫 만남

(feat. 낯설고도 낯익은 그)

by Rachel

무시무시한 우울증으로 귀국을 결정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5개월째 되던 어느 시점, 나를 덮친 무거운 우울은
잠으로 숨어든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저 쪽잠을 잘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살이 많이 쪘다.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는데도
몸은 정직하게 변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5월,
캐나다의 한 공원에 갔을 때
나는 이미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잔디 위에 누워 햇볕을 즐기고,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칠 곳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모두가 행복해 보이던 그 공원에서
나는 울면서 걸었다.

5월이었음에도
그곳에서 느낀 것은 매서운 추위였다.

그 순간, 이 싸움이 쉽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 혼자서는 이겨낼 수 없는,
아주 오래 지속될 외로운 싸움이 시작될 거라는 것도
그땐 알지 못한 채—


허우적대다 깨는 꿈을
몇 달 동안 반복해 꾸었다.


잠을 자도 잠든 것 같지 않았고,
자꾸만 무서운 꿈에 깨 새벽 세 시에 눈을 떴다.

무엇보다 누우면 침대 아래로 가라앉아 버릴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눈을 제대로 감는 것조차 두려웠다.




다사다난했던 캐나다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나는 살이 많이 쪄 있었다.

귀국 후, 여기저기 다니며 살을 빼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복학 생활을 준비하던 그 무렵이었다.


산적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내나? 나 이제 전역했다. 전역하면서 서울에서부터 쭉 훑고 가는데, 가는길에 울산 들러서 갈까 하고."

"그래? 전역 잘 했다니 축하해. 근데 나 보고 간다고?"

"응. 오랜만이잖아. 한번 보자."

"그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산적을 만나러 갔다가, 크게 변한 모습(?)에 많이 놀랐다.

내가 알던 산적은 젖살이 통통한 고3때의 모습 그대로였는데-

젖살이 많이 빠지고, 탄탄한 몸에 핼쑥해진 얼굴을 보니 낯선 사람을 만난 거 같아서,

나도 모르게 산적의 본명을 불렀다.


"어.. Y.. Y맞니?"

"맞다. 왜 그래?"

"아, 아니 내가 알던 사람 아닌거 같아서."

"밥 뭐 먹을래?"

"어, 냉면 괜찮으면 먹으러 가자. 날도 덥고 하니까."

내가 어색하게 냉면을 말하는 동안에도 산적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고,
그 차분함이 나를 더 낯설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낯설고도 낯익은 그 느낌이 이상해서 몇 번이고 산적을 돌아봤다.

그때, 그 느낌을 믿었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조심했더라면.

그러면 우리는 조금 더 일찍, 가족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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