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온 우주가 웃겼지만 나만 슬픈 날)
Intro.
안녕하세요, 감성 DJ D입니다.
오늘의 추가 선곡표는, 온 우주가 웃겼지만, 저만 슬펐던,
저만 웃을 수 없었던 날의 선곡표입니다.
저는, 이 사연이 레전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를 뺀 온 우주가 나를 놀리는 것 같았거든요.
그날은 나를 밴하고 모든 것들이 나를 놀리는 날이었다.
기분 좋게 엄마와 동생과 함께 시계탑이 있는 시내로 놀러간 날이었다.
그 때 나는 열 둘, 막 6학년 1학기를 마무리하던 시점이었다.
"엄마, 이제 여기 만두집 가-"
시내로 나와 오랜만에 들떴던 내게, 엄마와 동생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D야. 혹시 니 남자친구 여기 왔니?"
"응? 그걸 어떻게 알아?"
"누나. 나도 그 형 봤잖아. 그 형 동생도 우리 반 친구고."
"응, 근데 걔 얘기가 왜 여기서 나와?"
"응. 그 형 봤어. 방금 저기서. 근데 다른 여자애랑 손을 잡고 있어서."
"그럴 리가. 오늘 친구들이랑 논댔는데."
"그럼 저기 가서 확인 하고 와."
하필, 걸려도 엄마랑 동생한테 걸리냐.
엄마와 동생은 그 때 사귀던 남자애를 알고 있었다.
나랑 사귀자며 우리집 초인종까지 눌러서
"D의 반 친구인데요. 남자친구가 되고 싶어서 왔어요." 라고 말하던 당돌한 아이였다.
그래서 정확한 생김새를 알고 있던 동생과 엄마의 말이길래 믿지를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진짜 시내까지 나와서 딴 여자애의 손을 잡을 거라고는, 간 큰 애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참 웃기게도, 나는 그 자리에 가서 꾸역꾸역 얼굴을 확인하고 이름을 불렀다.
"야!"
나랑 눈이 마주친 그 남자애는, (지금도 그 나쁜 ㅅㄲ라고 부릅니다만..)
화들짝 놀라더니 옆에 있던 여자애의 손을 잡고 많은 인파속으로 숨어 버렸다.
충격적인 사건에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동생과 엄마가 찾으러 오지 않았다면
그날 밤이 늦을 때까지 서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으니 그대로 눈물이 터졌다.
억, 소리도 못내고 엎드린 채로 울고 있다가, 우는 소리를 들키기 싫어 라디오를 틀었다.
그런데 거기서 나오는 음악이 아주 가관이었다.
Westlife - Lovecrime.
아니, 처음에는 사랑에 관한 가사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니가 거기서 왜 나와~"라니. 나를 놀리나?
눈물이 뚝 멎었다.
아니 세상이 나를 놀리나 나와도 하필 저런 노래가 나와.
어이없어서 부은 눈으로 방 밖으로 나와 티비를 켰다.
한창 유행하던 투니버스의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있었는데.
티비마저도 나를 배신했다.
박완규의 Alone과 함께 흘러나오는, 여주인공 줄리아의 배신씬.
눈물보다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 무슨 타이밍이 이렇게 거지같아?
눈물이 그치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내일은 월요일인데, 학교 가서 내 구남친(현 바람핀ㅅㄲ)이 어찌 나올까.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내 구남친을 기다렸다.
음, 문제의 그 여자애와 함께 등교를 하네.
어머 씨발.
어디까지 하나 하고 지켜봤더니 둘이서 영화를 찍었다.
서로 다른 반이라, 손을 못 놔서 아련한 표정으로 안녕이라고 하는 걸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
"야."
"어? 안녕."
"너 어제, 시내 갔냐?"
"아니, 나 안갔는데?"
..........기가 찼다.
내 두눈으로 보고, 나랑 눈 마주쳐서 걔랑 사랑의 도피까지 해놓고 저런 식으로 회피를 해?
이건 무슨 막장드라마도 아니고 무슨 현실이 이래.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 나랑 이제 끝이야. 네가 거짓말하니까."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고?"
"너 시내 가서 나랑 눈 마주쳤잖아. 근데도 거짓말하니까."
"무슨 소리야, 안 갔다니까?"
"그럼 아까 내가 본 건 뭔데?"
아무 말 없이 슬며시 손을 감추는 것을 보곤, 나도 그냥 들이받았다.
"어쨌든 넌 바람남이야. 바람남. 그러니까 내 눈에 띄지마. 열받으니까."
그렇게, 나의 6학년의 연애가 끝이 났다.
나는 그 때 그렇게 끝나버린 연애가 나중에 만날 단초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거 같다.
고등학생이 되어 만난 그 바람남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어, 안녕~"
나는 상큼하게 씹었다.
누가 그런 경험을 하고도 반갑게 인사를 하면 호구지. 난 호구가 되기 싫었으니까.
어찌되었든, 나는 그 경험을 하고 나니 사랑이란 것이 덧없어져서
6학년의 2학기까지 남자친구가 되고 싶어하던 고백은 모두 컷을 해버렸다.
아무래도- 사랑을 믿기엔 그 사건이 꽤나 충격적이어서였을 거다.
그리고 나서, 그 애를 만나게 되었다. 나의 첫사랑, 그 애를.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내가 사랑을 만나고도 사랑임을 몰랐다는 것.
후일담을 말하자면.
여러분. 그 바람녀와 바람남 커플,
바람녀가 바람나서 중학교 가자마자 깨졌어요 ㅋㅋㅋㅋ
(믿기지 않겠지만 이건 전부 실화입니다. ㅜ)
오늘은 여기까지, 감성 DJ D였습니다.
Outro.
오늘의 선곡, 마음에 닿으셨을까요?
저는 이 노래를 들었던 날들이 떠올라서
가끔은 듣다가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지르곤 한답니다..
바람남과 바람녀의 그들만의 로맨스를 생각하면 빡치긴 하지만요.
그 날들이 나중에 이렇게 남들을 웃기게 할 소재가 될 줄 알았다면
더 큰 복수를 할걸, 하고 생각합니다.(확 걷어찰걸 그랬나..?)
여러분은 언제 우주가 나만 놀린 적이 있나요?
DJ D에게 복수의 사연을 보내주세요.(저도 같이 복수하고 싶습니다.. ㅂㄷㅂㄷ)
다음 트랙도 기대해주세요.
여러분의 선곡표를 기다립니다.
감성 DJ D였습니다.
당신의 조각들을, 제게 들려주세요.
일상 속 진공 같았던 순간, 누군가와의 온도차,
사소하지만 오래 남는 그 말들을—
당신의 노래와 함께 보내주세요.
다음은 당신의 선곡표일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