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우리가 말하지 못한 것들

잊은 줄 알았던 너를, 다시 꺼내어 봅니다

by Rachel

1. 다시 꺼내보는 봄


그래, 돌이켜 보면 나는 너를 분명 좋아했었다.

2003년, 중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반 배정을 받은 날.
아빠의 출근 시간에 맞춰 일찍 교실에 들어섰던 아침.

그 날부터 시작된 나의 첫사랑.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거기 네가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어색하게 인사를 했었다.

처음 보는 얼굴, 키가 커서 괜히 더 부럽던 너.
30분쯤 뒤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들어오는 너를 보며, S와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봤다.
'아는 사이인가 보다' 생각하며, 너를 그렇게 기억하게 되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쯤 지났을까.
너는 반 친구들 사이에서 쾌활하고 매너 좋은 아이로 금세 아이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축구를 잘했고, 공부도 잘했고, 앞뒤로 짝이 된 아이들에게도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즈음, 나는 생각했다.
‘괜찮은 사람이다.’
그냥 그렇게, 너는 내 기억 속에 남기 시작했다.



우리는 임시 반장과 부반장이 되었다.
3월, 반 꾸미기 활동을 하며 너와 조금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인사를 나누고, 시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친해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3월의 끝물, 신체검사를 하는 날이었다.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누가 누구를 좋아하느냐는 말들이 오고 갔다.

나는 굳이 끼고 싶지 않았다.

나는 6학년 때, 남자아이들끼리 여자아이를 평가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빴었다.

그래서, 당사자가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다는 이유를 말하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은 너무 갑작스럽고 정말 눈치 없는 말이었다.

아무리 내가 부드럽게 말을 한다 한들, 비난의 어조가 될 거란걸 생각도 못하고.

조금 더 돌려 말할 수도 있는 걸, 직설적으로 말해서 분위기가 싸해졌다.

싸늘해진 분위기,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온 너는, 여자아이들이 신체검사를 받을 차례라며 교실 밖으로 나가라고 말했다.

나는 조금 놀랐다. 혹시 들었을까 봐.

다른 아이들이 "매너 좋다"고 꺅꺅대던 소리, 너는 들었을까?

내가 말하던 '기분 나빠'라는 말을, 들었을까?


맨 처음 교실을 나서며, 나는 너를 올려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그날, 너는 그냥 씩 웃었다. 내게는 낯선 그 미소가 마음에 들었다.

그 때는 몰랐다, 그 미소가 아주 오래도록 남을 줄은.

그 미소 하나로, 나는 그 애를 아주 오랫동안 기억했다.



사람들은 첫사랑을 오래 기억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 사랑의 첫 설렘은, 너무 짧아서—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어렴풋하던 시절,
그 처음의 설렘을 한 번의 눈맞춤으로 시작했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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