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우리가 말하지 못한 것들

잊은 줄 알았던 너를, 다시 꺼내어 봅니다

by Rachel

3. 달라진 시간, 기다리는 사람


바람을 같이 맞고 나서부터, 나 혼자였던 조금은 쓸쓸한 아침길이 달라졌다.

처음 내가 기다리던 건, 어쩌면 Y였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함께 등교하던 익숙함이 사라지고, 혼자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는 아침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 그 바람을 함께 느껴준다는 것으로도 아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혼자만 알고 있던 수고를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건,
작은 말 한마디로도 기분을 바꿔놓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먼저 도착해 창문을 열고 있었을 때였다.
교실로 들어온 그 애가 말했다.

“오늘도 일찍 왔네. 오늘부턴 나도 할게. 나도 상쾌한 바람 맞는 거, 네 덕에 알았으니까.”

나는 웃으며 받아쳤다.

“진짜? 내 보람찬 아침을 나눠가려고?”

“그래. 위쪽 창문만 열면 되지?”

“응. 근데 왜 위쪽 창문만 열어?”

“전에 보니까 너는 손 안 닿아서, 까치발 하던데.”

나는 까치발이란 말에 웃었고, 그 애는 슬쩍 나를 보더니 장난처럼 말했다.

“다음엔 안 도와줄 거야. 너 혼자 까치발 열심히 해봐.”

그 애는 장난스레 웃고는 창문 하나를 더 열었다.
그러곤 아무 일 없다는 듯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타이밍에 저 멀리서, 그 애의 친구 S가 들어왔다.

“어, 왔어.”

그 애가 먼저 인사를 건넸고, S는 자연스럽게 자기 자리에 가방을 두었다.
둘은 익숙한 친구처럼 앞뒤로 앉아 편안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조금 부럽기도 하고, 조금은 화가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만 알고 있는 줄 알았던 저 표정이 누군가에게도 이미 닿고 있었던 거구나, 싶어서.
그러면서도 묘하게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 애가 다른 친구와도 그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게, 어쩌면 더 좋은 사람이란 뜻일지도 모른다고-

그 순간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조금씩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침 교실에 함께 있는 시간이 어느새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조심스럽게 물은 적이 있다.

“저기, 나 물어볼 거 있어. 내가, 혹시 질리거나… 귀찮지 않아?”

그 애는 책장을 넘기다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있다가 천천히 말했다.

“괜찮아. 너는 시끄러운 것도 아니고, 내가 책 읽는 걸 기다려주잖아.”

그 말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았다. 기다려 주어서, 누군가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존재라는 것.
누군가가 나의 기다림을 ‘배려’로 느껴줬다는 사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더 안심하며, 그 애의 옆에 머무를 수 있었다.

누군가가 같이 머무를 수 있다는 것으로, 그 아침들이 따뜻해졌다.



처음에는 그 애가 다정한 건지, 내가 특별한 건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되짚어 보니,

다정함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었고,

특별함은 기다림 속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것이었다.


내가 묻고, 그 애가 대답해주던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내가 ‘곁에 있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졌던 것 같다.

말이 없어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 따뜻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애와의 아침이, 내게는 그런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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