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힘
얼마 전 영상에서 마약으로 인해 좀비처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굽어진 허리와 초점 없는 눈빛, 그리고 그들의 방향성 없는 걸음걸이는 섬뜩했다.
미국의 한 거리에 모여 있는 이들은 매일 마약을 하며 길거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이유로 시작하든지 한번 경험하면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그 마약은 모르핀의 100배 이상의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고 1달러로도 살 수 있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말 그들을 회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살아간다.
다양한 직업처럼 자신이 해소하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대처한다.
그럼에도 만약 누군가 당신은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갑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단지 '그냥 살아가는 거지요'라고 말하거나 '오늘만 잘 살아가려고 해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또는 종교적 신념이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힘을 받아 극복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믿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자신이 그렇다고 믿는 것은 기억하는 자아에서 오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 그러한지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많은 정보와 상황 속에서 자신은 기억하는 것을 믿는다.
자신의 신념체계가 걸러낸 정보를 기억해서 자신의 무의식에 쌓아 놓는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기에 어떤 신념체계를 가지고 사느냐는 자기 삶의 스토리텔링이고 그에 따라 수 없이 많은 삶의 사건과 결과 속에서 살아간다. 세월이 흘러 반복적인 삶의 패턴이 인식될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자기 이해가 되어도 반복되는 삶의 고리를 끊을 수 없어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을 반복하게 된다.
참 슬픈 이야기다.
이건 비단 마약 중독자들의 삶만 비극이라고 살 수 없다. 삶의 통제가 일어나지 않고 헤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에 갇히는 것 또한 어딘가 중독된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자기 인식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작하고 삶을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잠시 튀어 오르다 바닥에서 멈춰 버리는 공이 되지 않거나 깨지는 유리공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삶이 중독으로 이어지지 않고 건강하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관찰이 필요하다. 연구할 때만 필요한 것이 관찰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도 관찰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의 몸은 어떤 상태인가.
언제 피곤하고 무엇을 원하는가.
내 몸 안의 상황은 어떤가.
나의 피는 혈관에서 어떻게 흘러갈까.
나의 뇌는 지금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를 상상해 본다.
나의 마음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나는 지금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뭘까
나의 정신은 강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숨 막히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봐야 한다.
그 질문이 심문 같으면 그냥 써 본다.
지금의 나의 상태를 써 본다.
어떤 연결성도 없어 보이는 글을 그냥 쓰다 보면 자신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걸러지지 않는 것들이 토해 나오고 순환되기 시작하면 자신의 명료하지 않은 것들이 선명해지기 시작해진다.
막연히 힘들어라는 단어 대신에 내가 화나는 이유는 나를 존중해주지 않아서인 것 같다.라는 말로 표현될 것이다. 어른에 대한 존중이 없는 표현에서 무례함을 느꼈다는 자신의 신념을 알아가고 그것에 대처하는 나의 방식을 보게 된다. 그 상황에서 나는 나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비숫하게 무시하는 태도를 쥐 했다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간접적 회피의 방법으로 관계를 맺고 있구나를 알게 된다. 왜 그런 선택을 할까 떠 올리니 과거 나의 가정에서의 가부장적 에너지 흐름이 나의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못하게 했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렇게 자기 이해를 하며 자신과 연결되는 과정을 갖게 된다.
기록은 그저 외부에 내 이야기를 남기는 일이 아니다.
내면 깊은 곳과 대화하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자신을 잘 알게 되면 상대로 이해하게 된다.
자신을 이해하게 되면 자기 용서가 일어나고 자기 수용이 된다. 자신을 받아들이기 되면 상대도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의 관점으로 상대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이런 상황이 상대에게는 다를 수도 있게다라는 유연함이 생기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넓어지게 된다.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게 된다.
글쓰기는 그렇게 흔들려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과정이다.
자신에 대한 기록을 그냥 하루 일과에 대한 기록으로만 한정 짓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관찰일지 또는 성장일지처럼 하루하루의 생각과 마음을 적는 시간이 자신에게 물을 주고 있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나와 연결되는 시간이자 세상을 향해 문을 열어두는 시간이다.
초점 없이 바라보는 세상이 아니라 밝은 눈빛으로 자신과 세상을 마주하는 시간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