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지원했던 회사는 서류전형에서 탈락하고 기대를 많이 했던 회사는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떨리는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연락이 온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관 네 명과 지원자 네 명이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차례로 지원 의사 등 몇 가지를 물었고 이윽고 내 차례가 되자 나는 미리 준비해 간 자료를 가방에서 꺼내어 면접관에게 내밀었다. 내 이력서의 내용을 뒷받침할 나름의 포트폴리오였다.
‘뭘 이런 걸 다?’하며 신기한 표정으로 자료를 훑어보던 면접관 한 분이 나에게 물었다.
이렇게 준비해오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하나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나 떨어지는 건가? 이윽고 나온 대답은 내가 들어도 낯설었다.
가져오라는 말씀이 없었지만 가져오지 말라는 공지사항 또한 없어서요. 어떻게 하면 저의 대학교 시절의 경력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몇 가지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었고 면접은 예정된 시간을 넘겨 진행되었다. 면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들어갔던 지원자 4명 모두 합격 통지를 받았다.
#2 중학교 체력장에서
학교에서는 일 년에 한 번 기초체력을 측정하는 체력장을 했다. 이를 체육 중간고사로 대체했기에 체육 시간은 여느 때와 달리 사뭇 진지했다. 종목은 공던지기, 오래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100미터 달리기, 제자리멀리뛰기 등 다양했고 그 가운데 팔굽혀매달리기도 있었다.
여러 종목을 통해 신체 능력을 다양하게 측정하기에 체력장에서의 ‘특급’을 받기란 쉽지 않았다. 한 반에 한 명도 없는 경우도 있었고 많아야 1~2명뿐이었다. 팔굽혀매달리기는 여러 종목 중 난이도가 높은 종목이었고 특급을 받기 위해서는 넘어야 하는 산이었다.
나는 다행히 앞선 종목들의 점수가 괜찮은 편이었기에 마지막까지 잘해서 ‘특급’을 꼭 받고 싶었다. 내 기억에 팔굽혀매달리기는 60초를 넘어야 종목 만점을 주었던 것 같다.
선생님이 호명하는 두 명씩 나와 발판을 디디고 서서 철봉을 잡았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무릎을 구부려 철봉에 매달린 채로 오래 버티는 방식이었다. 반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출석번호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철봉에 매달린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붉어지거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불쌍해 보여.”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 소리를 듣고 힘이 빠져버리거나 웃음이 터져 매달리다 내려온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은 시험 보는 친구들을 배려하라며 주의를 주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손바닥을 체육복에 쓱쓱 문질러 땀을 닦아내고 두 손으로 철봉을 움켜쥐었다.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발을 굴러 가슴 앞으로 두 다리를 구부렸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작게나마 “얼굴 빨개진 것봐.”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정신을 놓지 않으려 질끈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같이 매달렸던 아이가 스르륵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오민아, 37초.”
'아직도 절반 가량 남았네.' 이제는 혼자서 끝까지 버텨야 한다.
이를 악물고 참았다.
“우와, 60초 할 것 같아.” 탄식은 조금씩 환호로 바뀌고 있었다.
얼굴에서 열이 나는 것을 느꼈다. '이제 못 버틸 것 같은데' 아직도일까 싶었다.
표정의 변화를 보셨는지 선생님은 10초 남았다고 알려주셨다.
“58, 59, 60초”
60초 소리를 듣고 나서야 철봉에서 내려왔다. 두 볼이 화끈거렸다. 더웠다.
아이들이 몰려와서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대단해! 너 만점이야.”
바들바들 떨며 버텼던 덕분에 나는 체력장 특급을 받을 수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는 왜 삶의 장면들에서 기를 쓰고 매달렸던 것일까.
일 년에 몇 차례 이력서를 갱신할 때나 삶의 방향을 고민할 때마다 나는 종종 그 면접을 떠올린다.
Nobody asks me to bring it, nobody asks me not to bring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