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궁리하던 어느 순간부터 롤모델을 찾았다. 대학교 4학년 때 취업을 앞두고 강의를 수강했던 경제학과 여 교수님에게 메일을 썼다. 이제 졸업하는데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셨는지 후배로서 ‘선배님’께 여쭈어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교수님은 흔쾌히 응해주셨고 당신의 연구실로 찾아오라고 하셨다.
교수님은 솔직 담백하셨다.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은행권에 부장급으로 입사를 하니 동료들의 경계가 심했다고 했다.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겪었던 차별을 이야기할 때도 감정 변화 없이 담담히 지나간 일을 들려주셨다. 몇몇만 담배 피우러 가서 중요한 결정을 하거나 팀장과 임원이 모이는 미팅이 변경되어도 말해주지 않거나 아주 늦은 시각까지 회식을 하거나 하는 식이었다.
몇 번의 경험으로 동료들의 생각을 알게 된 교수님은 그때 그런 결심을 하셨다고 했다. ‘잘할 거야. 누구보다 잘할 거다. 혹여 내가 못하는 건 그건 아무도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 생각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끝까지 일도 빠짐없이 하셨다. 그때는 아 그렇구나 하고 들었는데 막상 내가 아이들을 기르며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이게 어떤 무게였는지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내가 신입사원 일 때 우러러보았던 여자 임원들은 싱글이거나 최근에 결혼했거나 결혼은 했는데 아이는 없거나 혹은 돌싱이었다. 아이를 기르면서 온전히 일에 시간을 쏟기가 얼마나 어려웠는가의 반증이라고 생각했다.
출근시간보다 앞서 사무실에 나오고 칼퇴는 집에 특별한 행사 있을 때만 아주 가끔. 야근은 기본으로 해야 ‘일 조금 할 줄 아네.’ 소리를 들었다. 회사에 이슈가 있다면 아이들을 두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것이 당연했던 슈퍼우먼이 여성 리더십으로 마땅히 추앙받던 그때.
워킹맘의 맞은편엔 남자 동료가 아닌 전업맘이 있었다. 워킹맘은 초등학교 입학할 때 만들어지는 엄마들끼리의 네트워크에서 자연스레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은근한 질투와 경계에 조용히 지내야 했다. 한 여자 선배가 학기 초 면담 중 들었다는 담임 선생님의 피드백은 실로 그랬다. “엄마가 워킹맘인 게 티가 나네요.”
그 얘기를 듣는데 서럽기도 하고 묘한 감정이었다. 한편으로는 엄마는 워킹맘 아니면 전업맘이라는 이 사회가 만든 프레임에 맞춰 굳이 편을 가를 필요가 있을지, 이게 그럴 일인가 싶었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 팬데믹이 왔다. 코로나 초기, 사람들은 거리에서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을 보면 무슨 벌거벗은 임금님 마냥 놀라서 쳐다보았다. 그때를 지나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까지 마스크를 쓸지 논의하는 시기가 되었다. 지난 코로나를 평가하면서 사람들은 우리의 미래가 최소 5년 앞당겨졌다고 말한다. 당겨온 미래는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재택’을 경험했고 코로나가 어느 정도 잦아들어 다시 출근으로 돌아간 회사도 많지만 재택을 병용하거나 아예 재택으로 전환한 회사도 있었다. 회사가 재택을 하는지 여부는 구직자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되었다.*
감히 구분 지어 보건대, 과거 여성 리더십이 기존의 질서가 자리 잡은 무대에서 그 규칙에 따르며 살아남았다면 코로나 이후의 지금에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상에만 존재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한 사례는 이미 일반적이고 때문에 반드시 과거처럼 오프라인의 어느 곳에 거점을 두고 하는 일만 굳이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코로나로 재택을 경험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대한 정의가 바뀌고 있다. 집이든, 회사든, 카페든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것이다. 오프라인 어디에 있든 온라인으로 만나서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장소에 대한 제한이 없어지면서 ‘일’을 구분 짓는 것은 공간이 아닌 시간이 되어 가고 있다. 나아가 어느 순간에는 일하는 공간마저도 온라인으로 옮겨진 세상이 보편화되지 않을까. 메타버스, 블록체인 등 최근 등장한 웹 3.0의 키워드를 떠올리며 상상해본다.
와튼스쿨 경영학 교수 마우로 기옌은 저서, [2030 축의 전환]을 통해 2030년을 예측하면서 지금의 세상은 없어질 것이라는 파격적인 통찰을 짚어냈다.**
그는 2030년이 되면 전 세계 모든 신생 기업의 절반 이상을 여성들이 꾸려 가고 있을 것이라 하면서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과거에는 아이를 낳고 기르게 되면 커리어를 포기했던 많은 여성들이 이제는 그러한 선택을 당연시 여기지 않고 힘들어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은 본인의 의지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현실적인 이유도 있으며 집에만 있는 것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한몫을 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출산율 감소와 인구 노령화 때문에 노동력이 부족해지기에 여성에 대한 수요가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술은 사람들의 의지로 발전한다. 현재가 아쉬웠던 누군가가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무대를 옮기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로 거기에 속도를 붙었다.
다가올 가까운 미래에 대해 조금 더 상상을 해보자면 이제는 정말로 ‘자율’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 회사에 속해서 회사의 목표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때문에 근태의 의미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몇 시에 어디서 일하는지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아울러 아무도 언제 출근하는지 언제 퇴근하는지 관심이 없고, 체크할 수도 없다. 다만, 어느 일정한 시기까지 퍼포먼스가 나오는 것으로 이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유튜버가 어디서 일하는지 우리는 따지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영상이 업로드되기를 기다릴 뿐이지.
때문에 끊임없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동기부여’가 점점 중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을 이해하고 체화할 수 있는 사람이 MZ세대, 그 이후의 알파세대와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다음 세대의 리더십’ 일 것이라 생각한다. 해야 하는 것을 참고 이겨 내는 것만이 미덕이 아니라 정말 잠 안 자고 밥 안 먹어도 좋아하는 주제를 찾아 그에 몰입하는 일이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탁기, 청소기 등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육체의 노동에서 우리를 해방시켰고 AI는 지식을 암기하는 노동에서 우리를 놓아주었다. 기술의 발전과 인식의 변화를 디딤돌 삼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리더십’을 새롭게 정의하는 롤모델이 나타날지 궁금하다.
** 마우로 기옌. 2030 축의 전환. 2020. 리더스북
* 포스트코로나 시대…재택근무 자리 잡나? [친절한 뉴스K] / KBS 2022.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