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결론 없는 담판을 짓고 간 뒤부터 집주인 내외는 남편과 나에게 수시로 연락하기 시작했다.
“남편분께 연락하니 이 건은 아내분과 상의하라고 하셔서요.”
“수리 일정과 비용 등 논의드리고 싶은데 가능하신 날짜를 알려주세요.”
내가 말했던 내용은 의미 없는 외침에 불과했다. 집주인은 누수가 이미 우리의 과실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2층 천장과 옆 집에 대한 보수 공사를 해야 한다며 거듭 배상을 요구했다. 누수 건은 우리와 상의할 내용이 아니며 건물 관리에 책임이 있는 건물주가 진행하실 내용이라고 말해도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며칠 잠잠하다 금세 또 연락이 왔다. 이러기를 몇 차례.
이 집에서는 이제 도저히 못 살겠구나.
이사 들어올 때 작성했던 계약서를 몇 년 만에 꺼내보았다.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 기간은 한참 전에 만료되어 있었다. 이후에는 상호 간 구두 합의를 통해 지금까지 살고 있었던 셈이다.
이 경우 ‘묵시적 갱신’에 해당하는 사례로 임차인 쪽에서 이사를 나가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3개월 후 계약이 종료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휴 다행이다.
계약 기간이 남았다면 우리가 나가고 싶다 한들 아직 계약이 끝나지 않았다며 집주인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했을 터다. 비록 이사 나갈 곳을 구하지 못했지만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다. 정 안 되면 친정집에라도 들어갈 생각이었다. 일단 숨 좀 돌리고 살고 싶었다.
“임대차 계약 해지하겠습니다.”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답은 오지 않았다.
줄기차게 내리던 장맛비가 멈추고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휴가철이 무색하게 나는 새로 옮긴 부서에 적응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보니 공사 재료가 1층 복도에 한편에 쌓여 있었다. 며칠 뒤에는 2층 천장도 어느새 수리가 되어 있었다. 집주인 측에서 더는 연락이 없었다. 임대차 계약에 회신이 없기에 여름이 끝나갈 무렵 다시 연락을 했다. 이번에도 집주인은 아무 회신이 없었다.
집에서 어떻게 나가야 할지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이 집을 처음 중개해주었던 공인중개사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OO빌라 OOO호에요. 예전에 저희 집 알아봐 주셨죠.”
“아, 네. 안녕하세요.”
“다름 아니라, 저희가 여기 이제 집 나가려고 하는데요. 집주인과 연락을 좀 하고 싶어서요.”
“아 그래요? 그런데 그 계약 기간은 이미 끝났을 텐데요.
“아니, 그래도 저희는 여전히 여기 살고 있어요.”
“아, 그럼 계약서 쓰셨나요?”
“아뇨, 그렇지는 않고요. 구두 합의해서 계속 살고 있어요.”
“……”
정리하자면 이랬다. 본인이 중개해준 기간은 끝이 났고 전세 연장 계약서를 본인의 주선 하에 쓴 것도 아니기에 이제는 자신과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꽤 오랫동안 이 동네에 살았고 오며 가며 얼굴을 마주친 사이였지만 공인중개사는 이해관계가 없는 일에 냉정하게 선을 그어버렸다.
울컥했다. 세상은 선의로 돌아가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대로 움직이는 거였다. 돈이 되지 않는 일에 공인중개사는 움직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마주하고 나는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세상은 결코 교과서 대로 되지 않았다. 잘못을 하면 인정하기는커녕 되려 뻔뻔하게 우기는 세상이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도와준다는 이웃도 없었다. 회사 생활 몇 년 차였지만 이런 현실을 마주해보니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밖에 모르는 사회 초년생이었다.
어렵게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남편은 도의적인 차원에서 돈 백만 원 냈으면 끝났을 일이라며 초기 대응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나를 나무랐다.
만약 돈을 보냈으면 “이것 봐. 자기네가 잘못했으니까 이렇게 돈을 내는 거잖아.” 하는 뜻으로 비추어질 것이라 대답했다. 과실 여부가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설픈 동정은 화살로 돌아올 것이라 설명했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돈이 훨씬 더 들고 쌓인 감정의 골이 깊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날카로워진 상태였기에 내가 무엇을 하든 남편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아무리 부연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집주인, 공인중개사, 그리고 남편마저.
외롭다는 생각은 이제 사치였다. 괴롭다는 생각도 진즉 사라지고 없었다. 사람들의 냉정한 시선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아무도 내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나만은 내 편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택임대차 보호법을 공부하고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절차나 기관이 있는지 찾기 시작한 것도 이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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