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을 직접 하다 보니 챙길 내용이 꽤나 많았다. 전자소송 사이트에서 어떻게 송달 내역을 확인하는지, 준비서면은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도 배울 곳도 없었다. 남편과 둘이서 하나씩 찾아가며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법원에서 송달이 오면 암호문 해독하듯 인터넷과 책을 들춰가며 내용을 이해했다.
그래도 제일 어려웠던 건은 매번 법원에 출석하는 일이었다. 둘 다 회사에 다니는 터라 변론기일이 잡히면 휴가를 내야 했다. 사건에 대하여 얘기하는 시간은 십분 남짓이었지만 법원에 오고 가는 시간, 대기 시간이 있었기에 연차를 쓸 수밖에 없었다.
4번째 변론기일은 오후 3시로 잡혔다. 남편은 회사에 출근하며 오후 반차를 내고 법원으로 오겠다고 했다. 약속 시간에 종종 늦던 남편이기에 걱정이 되었다. 차라리 재판이 오전이었다면 집에 있다가 함께 출석할 텐데. 가버린 남편을 붙잡을 수도 없고, 그저 늦지 않겠다는 남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에 맞춰 혼자 법원으로 갔다.
복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있다가 혼자 법정으로 들어갔다. 앞선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확인하고 다시 복도로 나왔다. 시간이 가까워지는데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속이 타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어디예요?”
“지금 택시 타고 가고 있는데 길이 좀 막히네요.”
남편은 자신이 늦거든 나더러 대신 진술하라고 했다.
이 사람아, 내가 할 수 있었으면 처음부터 했겠지!
집은 남편 이름으로 계약했기에 원고는 남편이었다. 배우자라 하여도 소송의 대리인이 될 수는 없었다. 어쨌든 남편이, 꼭 와야 했다. 늦더라도 내가 있으니까 괜찮겠지 싶었던 남편은 이제야 무슨 말인지 깨달은 듯했다.
남편은 체념한 듯 알아서 하라고 했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며 열이 나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서 그렇게 늦지 말라고 당부했건만.
회사 일을 하다가 늦게 출발한 남편은 꽉 막힌 택시 안에서 갇혀 있었다. 남편은 말이 없었다. 어떻게든 사정을 얘기해볼 테니 지금 내려서 지하철을 타라고 했다. 역에서 내리면 4번 출구로 나와 쉬지 말고 뛰어 오라고 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부탁했다.
2시 54분. 남편은 두 정거장 전 역에 있었다. 애간장이 녹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3시.
남편은 없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홀로 법정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판사가 우리의 사건번호와 함께 원고와 피고를 불렀다. 비어 있는 원고석을 보며 판사가 한번 더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내가 엉거주춤 일어나 판사를 향해 말했다.
“제가 원고의 아내인데요. 남편이 지금 뛰어 오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순간 얼굴은 정면을 바라보는데 판사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혀 앞이 흐려진 까닭이었다. 누가 툭 치기라도 하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정말 나의 최선을 다했는데 이렇게 하늘이 안 도와주는 건가 싶었다.
판사는 잠시 말이 없더니 이윽고 물었다.
“지금 어디인가요?”
“역에서 내려서 지금 법원으로 뛰어오고 있습니다.”
“그럼 잠시 기다려보겠습니다.”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그 순간 남편에 대한 원망도 기다려주는 판사에 대한 고마움도 없었다.
그냥 서러웠다. 내 처지가 한없이 불쌍했고 분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살았을까.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뜨거운 눈물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이 눈물이 뺨을 타고 떨어지면 감정을 다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온 몸에 힘을 주고 바들바들 떨며 눈물을 참았다. 일단 지금을 잘 마무리 짓고 나중에 감정을 다시 열어보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지하철역에서 법원까지는 오르막길이었다. 남편은 어디쯤 왔을까. 법정 안의 적막함이 마치 내 탓인 것 같았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숨죽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뒤에서 문이 거칠게 열렸다. 헐떡이는 숨소리를 듣고 남편임을 알았다.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판사는 밖으로 나가 숨을 고른 뒤에 다시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다가가 물을 건넸다.
호흡을 정리하고 남편은 원고석에 앉았다. 재판은 진행되었고 십 분도 안되어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 변론기일이 잡혔다.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걷다가 법원 근처에 음식점으로 향했다. 설렁탕 한 그릇씩 먹고 나니 기운이 났다. 한참을 다른 얘기를 하다가 남편에게,
“고마워” 한마디를 건넸다.
뛰어와줘서, 포기하지 않아서.
다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집주인을 생각하며 ‘다음 변론기일에서 만납시다.’ 하고 혼잣말을 했다. 집에서 만나자고 인사하고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향했다. 나는 준비서면을 쓰러 근처 카페로 가고, 남편은 회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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