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재수를 했지만 의대에 떨어졌다. 2 지망으로 쓴 동물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하버드대학교 생물학 박사 학위를 최초로 받았다. 열대지방에 사는 민벌레가 전공 분야이지만 연구지는 한국. 연구를 지속할 형편이 못되니 주위에 흔한 개미를 연구했다. 그렇게 해서 쓴 책 '개미 제국의 발견(1999년)'은 영미에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보다 훨씬 더 많이 팔렸다. 이례적인 약력을 두고 당사자인 최재천은 말했다.“살다 보니 이런 반전도 있더라”
장류진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 2019) 역시 인생이란 정답에서 멀어진 것 같아도 지나고 보면 스케치부터 착실한 밑바탕이었을 수도 있고, 법으로 정해두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만든 것 같은 성의 없는 조형물일지라도 올라서면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는. 무엇이든 쓰임이 있다는 희망을 준다.
위치기반 중고거래 앱을 만드는 회사인 '우동마켓'에는 '거북이알'이라는 사용자가 있다. 거북이알은 몇 주 전부터 강남과 판교 지역에서 하루에 백 개씩 글을 올리고 있고, 심지어 중고물품도 아닌 새 상품을 인터넷 최저가보다 조금 더 싸게 팔고 있다. 거래 성공률은 백 퍼센트. 거래 후기도 훈훈하다. 잘 나가는 대기업 다니는 사람이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걸까. (p.45)
유비 카드사의 혜택기획팀 차장 이지혜. 거북이알은 원래 유비 카드사의 공연기획팀 소속이었다. 클래식 마니아인 회장의 지시로 세계적인 음악가의 아시아 내한공연을 최초로 성사시켰다. 관행대로 실무선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내한공연 공지를 띄웠다가 자기 인스타에 제일 먼저 올리고 싶었던 회장의 눈 밖에 나게 된다. 특진은커녕 보직이 변경되고 월급은 포인트로 받게 됐다. “사실 돈이 뭐 별건가요? 돈도 결국 이 세계,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의 포인트인 거잖아요.” 거북이알은 포인트를 돈으로 전환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다. 근무시간에 직원 할인가로 물건을 사고, 점심시간이나 외근 나가면서 직거래하고. 원래 받았어야 하는 건 돈이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포인트로 모닝커피 마시고, 포인트 되는 식당에서 점심 먹고, 포인트로 장보고, 부모님 생신 선물도 포인트로 결제했다. (p.51)
이 소설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인생이란 정답이 없다. 장 작가는 연세대학교 사회학부를 전공했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기자가 되고 싶어서 언론사 입시 아카데미 수업을 들었고 실제 수습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판교에 있는 IT 회사에 다녔고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데뷔 1년 만에 첫 책이 묶였다.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의 동명의 단편집.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언론사 입시 아카데미 수업을 들었을 때 썼던 글이 김애란 작가의 <침이 고인다>에 실린 ‘성탄 특선’과 비슷하다는 지인의 말 때문이었다고. 그 소설을 찾아 읽고는 한국 단편소설의 매력에 빠져들어 지금은 전업 작가가 되었다.
생각해 볼 일이다. 같은 상현달이지만, 북반구에서는 오른쪽 반이 보이고, 남반구에서는 왼쪽 반이 보인다. 그 이유는 남반구에서는 북반구와 달리 달이 북쪽 하늘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의 같은 곳이 빛나지만, 사람이 보기에는 반대로 보인다. 마찬가지다. 직업이란 무엇이고. 명함이란 무엇인가. 통장 잔액이 어떻고, 차가 어떻고 하는 외향적인 성공의 지표들은 누군가에겐 쉽게 주어지기도 하고 동경의 대상이며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때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살아온 흔적이다. 그러나 여러 정보가 담겨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림이 쌓이면 무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