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책도 조언도 아닌, 당신의 결정에 도움을 주는 건..
"이과장 알지? 조직개편 다다음주에 나는 거"
팀장이 잠깐 이야기를 하자며, 나를 불렀다. 회사는 지난주 내내 구조조정의 소문이 돌고 있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옥상에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귀로 담배연기처럼 스며내려왔다.
'본사 30% 인력 조정.'
호황과 불황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듯, 호황은 신규채용을, 불황은 인력조정을 불러왔다.
"회사가 요즘 실적 때문에 힘든 거 알지, 전사적으로 영업 보강을 할건데, 전사영업 TF를 만들 거야. 각 팀별로 2~3명씩 뽑을 거고, 우리 팀에서는 이과장이 적합할 것 같은데.."
팀장과 나는 한 달 정도 같이 일을 했다. 그는 미국지사에서 한 달 전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났다. 내가 아는 한 이 회사에서는 해외법인에서 한국 본사의 발령이 났다라는 건, 퇴사권고의 메시지였지만. 그는 홀로 버티고 있었다. 가족을 미국에 두고, 원룸에 혼자살며 그는 버티고 있었다.
"좀 생각해보고 답변드려도 돼요?"
그렇게 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그리고, 잠깐 회사를 나왔다. 되돌아보면, 나에게 회사생활이란 항상 그랬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누군가 내 일을 정했고, 그 일로 내 업무의 우선순위는 너무나 쉽게 뒤바뀌었다. 우수운 건, 나는 남보다 그걸 제일 늦게 전달받았다는거다. 데드라인도 급하게 박혀 있는 그 일을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알았다. 항상 나라는 개인, 그리고 나의 가족은 '회사' 의 뒤, 2순위, 3순위로 밀려있었다. 회사는 그것을 원했고 나는 그걸 따라서 살았다. 워크 앤 라이프 발란스라고 겉으로 이야기하지만, 뒤에서는 워크가 항상 라이프보다 앞서 있었다. 금요일 또는 월요일에 연차휴가라도 아내가 이야기하면, 나는 짜증을 냈다. 그렇게 만든 건 나였고 회사였다. 팀장이 "과장이상이면 정시퇴근이 어딧어?" 라고, 꺼리낌없이 이야기하는 회사, 나 역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번 조직개편도 누군가 모여서 만들고 또 나에게 제일 늦게 전달이 된 꼴이었다. 항상 정해지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 그 현실에 이제 나는 지쳐버렸다.
'나 이제 그만둬야겠어'
아내에게 그저 덤덤하게 카톡을 보냈다.
'출근했어'라고 오전 9시에 카톡을 보내놓고, 두번째 보내는 카톡이었다. '난 왜 좀 더 살갑게, 자주 아내에게 카톡을 보내지 못했을까' 후회했다. 다행히도, 아내는 빨리 읽었다. 좀 더 다닐 수는 없는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솔직히, 새로운 조직에서 일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다닌다 해도 내내 불행할것 같다고 말했다. 그럴 수 있는 동기도 전혀 없다고도. 그렇게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길게 나눴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그랬다. 바로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눈물이 났다.
'저 퇴사할게요. 최대한 빨리 제 업무는 인수인계할게요."
팀장 자리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했다. 팀장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가 원했던 그 대답을 내가 해준거지. 그런거지. 내 눈에 보인 팀장님의 노트북 화면은 끝이 없이 올라가는 원달러 환율 그래프였다. '그래 모두가 시간의 차이일 뿐이야, 이 사무실에서 버티고 있는거지.' 자리가 비워지면, 누군가 채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내보낸다. 팀장과 나는 그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3주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퇴사를 했다. 항상 1순위였던 회사, 나는 회사를 1순위로 올리고, 다른 걸 얼마나 희생했던가. 1순위가 사라지니, 2-3순위의 나, 그리고 가족인 아내가 1순위와 2순위가 되었다. 퇴사를 준비하는 동안, 책을 참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이미 결정은 했지만, 불안했으므로, 조언이 필요했지만 들을 수 없었으므로,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읽고 그뿐이었다. 책장을 덮으면, 내게는 남겨지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책들이 지금 직장과 퇴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살아있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정작 내가 배운건 아내였다. 아내와의 대화에서였다. '출근해', '퇴근해' 두 문장이 전부였던 나와 아내의 대화는 퇴사를 준비하면서 180도 바뀌었다. 아내와 나는, 이제 오랫동안 대화를 한다. 책에서 얻기 힘들었던 것들을 아내는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했는지', '뭘할때 입가에 미소를 지었는지' 이야기 해주었다. 그게 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조언이 되었다. 그래서 생각한다. 만약, 내가 아내와 상이없이 그만뒀더라면, 아니 먼저 결정 한 뒤, 아내에게 이야기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나를 응원해주었을까 싶다.
만약 예전의 나처럼 지금 누군가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면, 감히 이 한마디를 이야기 하고 싶다. "아내(또는 남편)에게 먼저 이야기하세요, 처음부터."
퇴사는 무엇보다 가족의 지지가 필요하다. 자존감을 세워줄 수 있는 파트너의 지지가 계속 있어야만,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지금과는 다른 당신이 원하는 삶도 고민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가장이라고, 혼자만 짊어지지는 말자. 먼저 결정한 뒤, 알려주는 그런 악수를 범하지 말자. 설령 상대방이 이해를 못한다 해도, 친절하고, 상세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자. 나는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P.S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제외란 사실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