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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성훈 May 05. 2018

당장 퇴사하지 않아도 안전장치는 필요하니까

월급만으로는 못살겠는걸?

0. 망할놈의 경제적 안정성


함께 일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그만두게 됐다. 요즘은 퇴사가 유행처럼 번지고, 직장에서 누군가 나가는 일을 처음 본 것도 아니다. 그래도, 갑작스러웠다. 나 역시 최근에 이직을 했고 가급적 오래 있을 계획이지만, 언제 어떤 사정으로 떠나게 될지 모르는 게 이 바닥의 생리다.


특히 나처럼 스타트업에 다니면서 심지어 쫄보라(안타깝게 됐다..), "당장 다음달에 퇴사하면 어떻게 돈벌지?" 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충실하며 자기개발 하는 것과는 별개로. 하지만, 경제적 안정성이란 상당히, 상당히 큰 목표다. 쉽게 풀기 힘든 질문을 떠안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퇴사하면 이걸 못 산다. 안된다.


1. 비틀즈와 이말년의 수익구조


비틀즈가 처음부터 팝음악의 클래식, 레전드 포스를 뿜어낸 건 아니었다. 오히려 혈기왕성한 10대 아이돌에 가까운 초창기의 열정 무대와 거침없는 인터 지금 봐도 흥미진진하다. 기자의 질문에 뻔한 정답 반복하는, 너무 발한 캐릭터였. 오아시스가 괜히 비틀즈를 좋아한 게 아니다.


비틀즈가 엘비스 프레슬리 짝퉁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거 아닌뒈에에에~


하나 더. "사람들이 당신(비틀즈)을 왜 좋아하는 것 같냐"는 질문에도, "그걸 알면 제가 매니저 하죠ㅋ" 이런 식이다. 인기스타의 특별함, 대단한 비결같은 걸 기대한 사람들은 맥이 풀린다. 원래 자기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하고있는 일의 맥락이나 구조같은 걸 의식하지 못한다(천재들이란..). 이말년 작가의 대응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의 인터뷰를 보자.


Q. 어쨌거나 만화를 10년 그렸으면, 만화에서 뭔가를 발견했다는 거잖아요?
A. 10년이긴 한데, 중간에 많이 비어있어요. 골다공증처럼ㅋㅋ
Q. (ㅋㅋㅋ)그럼 연재를 안 하는 기간에는 생계를 뭘로 해결하셨나요?
A. 개인방송(게임 스트리머)으로 돈이 들어왔어요. 먹고살만큼. 전 모범사례가 아녜요.

팟캐스트 <이종범의 웹툰스쿨> 중에서


듣다보면 '정말 이렇게 살아도 괜찮나..' 싶은 걱정과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싶은 호기심이 동시에 생긴다. 하지만 그 역시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것만은 아니다. 아래 박스는 이말년 작가가 게임 스트리머 '침착맨'으로 활동하게 된 사고흐름이다.

게임중독인데 게임이 질렸다 >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까 > 사람들과 대화를 하자 > 플레이 화면을 보여주면서 채팅을 하자 > 사람들이 좋아한다 > (좀더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달고 내 얼굴을 보여주자 > 유튜브에도 올리자! > 꿀잼


나름의 기승전결이 있다. 권태 > 사람들의 (작은) 반응 > 본격적인 투자 > 재미+수익. 물론 이말년 작가가 말했듯이 이렇게 성공하는 건 상당부분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본업인 만화가로서 자신의 병맛 포지션 역시 어필할 수 있는 독자가 제한적이다. 모두가 이말년이 될 수는 없다. 다만, 만화와 관련없는 활동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한 수준의 수익창출에 성공한 것은 분명 참고할 만한 지점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이종범 작가 역시 <닥터 프로스트>를 휴재한지 2년이 넘었다. "제 원고료는 그렇게 높지 않아요. 만화로 대박을 내는 게 아니라 적은 수입이 들어오는 구멍을 아주 촘촘하게 만들었죠." 그는 본업인 웹툰작가 활동을 쉬는 중에 각종 강연, 에세이, 교수(청강문화산업대), 방송출연 등으로 수익을 다각화했다.


이종범 작가의 수입은 샤워기 물구멍처럼 촘촘하다


비틀즈, 이말년 작가, 이종범 작가의 수익창출 방식은 각각 비슷하면서 다른데,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이말년, 이종범 작가는 자신의 직업과 관련없는 곳에서 수익을 창출한다.

2) 이말년 작가는 게임 스트리머의 수입을 생계유지가 가능한 만큼 키웠으며, 이종범 작가는 n잡러로 동시다발적 수익을 창출한다.

3) 이말년 작가와 비틀즈는 재미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4) 비틀즈는 재미에서 시작한 일이 부담이 되어버린 후, 비틀즈를 해산하는 대신 전혀 다른 색깔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란듯이 성공했다.


돈을 버는 방법은 2가지 중 하나다. 대박과 박리다매. 나처럼 안정성이 중요하다면 무게추는 후자쪽으로 기운다. 주식으로 분산투자를 하든, 돈이 들어올 구멍을 여기저기 많이 만들어놓든, 요는 달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는 거다. 경제적 안정성의 종말을 목격한 나는, 애초에 안정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 직업인 예술가의 사례를 참고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셋 중 어느누구도 자신의 본업을 내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월급만으로는 살 수 없지만, 월급 없이 살기는 더 어렵다.


참고용으로 세 아티스트의 케이스를 아주 간단히 정리했다. 하지만 분석을 위한 분석은 공허하다. 오히려 나는 알고있다는 자기만족만 남기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타이밍에 적절한 질문은 이거다.


so what?




2. 그래서 나는 뭐먹고 살거냐면


그래서 결국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려면, 조금 더 깊이 분석해야 한다. 앞서 간단히 정리한 걸 토대로 그 이면에 숨어있는 키워드를 들여다보자. 세 아티스트는 다음과 같은 키워드기준으로 움직인다.


직업관련성, 수익률, 수익다각화, 재미


일을 선택하는 기준은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비틀즈는 수익다각화 부문 0점이지만 재미와 수익률 모두 100점이다. 결과론이지만, 자신이 하던 일을 지속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반대로 이종범 작가처럼 수익률은 떨어지지만 다각화를 잘하면 시장상황이 나빠져서 한두군데 구멍나도 최종수입에는 큰 지장이 없다. 혹은 이말년 작가처럼 직업관련성은 떨어지지만 재미와 수익률을 동시에 잡을 수도 있다. 선택의 문제고, 성향의 문제다.


이런 기준을 나에게 비추어보면 재미를 기반으로 한 다각화 전략이 가장 적합하다. 선택이 딱히 어렵지 않았다. 스스로의 성향을 너무 잘 알고있으니까. 재미를 못 느끼면 결과물이 좋지 않다는 걸. 편차가 좀 심한 편이다. 경험상 좋아하지 않는 일을 애써 노력해봤자 겨우 남들만큼 쫒아가는 수준이었다. 당장 큰돈을 벌기보다 안정을 더 큰 목표로 잡고 있기에 수익률보다 다각화에 집중하자는 결정도 자연스러웠다.


이 2가지를 축으로 뻗어나갔을 때, 나에게 재미는 '글'이고, 다각화는 '매체기고', '콘텐츠 판매', '광고'다. 시작하는 단계지만 조금씩 반응이 보인다.


*여기서 고려하지 않은 게 있다. 수익활동이라고 해도 목적에 따라 PR(SNS), 네트워킹(오프라인 행사), 순수재미(컨텐츠리뷰), 성장(수익률이 낮은 일) 등을 고려해야 하고, 내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면서 심리적으로도 불안하지 않은 최저기준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계획으로 맞추는 게 아니라 경험데이터를 쌓아야 아는 것들이니, 차차 배우면 된다.


그럼 이제 남은 건 하나다. 나의 '어떤' 노동이 '얼마'에 거래되는지 인식하는 것. 소비자가 아닌 플레이어로 필드에 나갈 차례다.




사실 이말년 작가가 스트리머 활동을 시작한 계기와 만화가로서의 일은 밀접한 관련이 다.

그가 만화로 얻으려고 했던 것, 현재의 고민, 악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헤치는 인터뷰.

http://www.podbbang.com/ch/13327 (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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