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불은 끄고 자야지(by 육오공)

이제는 잘 끄고 자고 있어요 아빠

by radioholic
어느새부터인가 돌아오지 않는 대답
아무 대화 없이 지나간 세월
기억하는 건 그때뿐야
아이는 기억 못 하겠지만
했던 말은 그것뿐야
불은 끄고 자야지
아빠는 불을 껐었지 아빠는 불을 껐었지
(육오공, '불은 끄고 자야지' 中)


고등학교 땐 왜 그렇게도 불을 켜고 잠이 들었을까. 책상머리에 앉아있다가 졸음이 밀려오면, '아... 10분만 자야지'하며 책상 옆 침대에 웅크리고 누웠다. 그렇게 누우면 분명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란 걸 알면서도, 지나치게 나 자신을 믿었더랬다. 잠깐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맑아질 거라 기대하며, 그럼 문제집 몇 장 더 풀고 자겠다고 다짐하며 눈을 붙이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런 날 아침이면 부모님에게 한껏 짜증을 내고 집을 나섰더랬다. 왜 나를 깨우지 않았냐며!!!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알고 있었다. 분명 곯아떨어진 나를 깨우던 목소리가 있었다는 것을. 침대 한 구석에 불편한 자세로 누워있는 나를 보며 안쓰러운 말투로 말을 걸던 음성이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공연히 화를 냈다. 철없던 시절의 전형적인 책임 회피였다. 돌이켜보면 그저 웃음만 나오는 그런 한심한 시기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를 잘 아는 엄마는 그냥 불을 끄셨고, 아마도 화장실에 가시다가 불이 켜진 내 방에 오셨을 아빠는 늘 이렇게 물어보셨다.


ㅇㅇ야~ 안자나? 불 끄고 자야지!


경상도 특유의 억세면서도 자식에 대한 안쓰러움이 담긴 아빠의 저 말을 들으며, 그땐 그냥 웅얼웅얼 답하고 잠이 들었더랬다. 그럼 이내 불이 꺼지고 선잠에 들었던 난 비로소 깊은 잠에 빠졌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저런 패턴이 반복되면 짜증이 나셨을 법도 한데, 생각해 보면 아빠는 한 번도 저런 걸로 나에게 화를 내진 않으셨다. 화도 많고 고집도 센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지만, 늦둥이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는 늘 관대한 사람이었다.


이젠 불 잘 끄고 자고 있어요^^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참 우연히도 가수 육오공님의 노래를 알게 되었고, 앨범 속 노래들을 주욱 듣다가 '불은 끄고 자야지'라는 이 곡을 듣고 마음이 많이 저며왔다. 25년도 더 지난 과거의 저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마음속에 주욱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행여나 아들이 잠을 깊게 못 잘 까봐 걱정하시며 내 방 불을 꺼주시던 아빠는 이제 내 얼굴을 알아보시지 못한다. 아빠의 사라져 가는 기억 속엔 깊은 새벽 웅크려 잠든 아들의 모습도 포함이 되어 있겠지만, 이제 그 기억은 내가 하면 되니까.


가족의 아픔을 인정하는 건 참 힘든 과정이다. 특히 그 대상이 부모님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이 짧은 글을 쓰는데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노래를 통해 한번 더 아빠를 생각하고 애틋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마음이 담아 만들어진 노래가 우리에게 주는 힘이다. 첫 앨범인 '1집이 아닙니다'에 정성껏 11곡을 녹여내었던 이 뮤지션이, 언젠가 꼭 1집을 내주어서 나에게 또 다른 위안을 주었으면 좋겠다. 위로의 노래를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https://youtu.be/nYD5KOMYaRg?si=ZxXmEiuSd33fFoAT

눅눅하게 젖어있던 마음을 달래주는 노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