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동요
음악 선생님의 예쁜 손 따라
낡은 풍금소리 높아만 가면
올라가지도 못했던 우리 목소리
힘을 주어 반복했던 발성연습
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
(예민, '아에이오우' 中)
요즘 아이들은 '풍금'이란 말을 알까. 건반을 누르기만 하면 소리가 나는 피아노나 키보드와 달리 풍금은 페달 모양의 풀무를 밟아 공기를 불어넣으며 건반을 눌러야 소리가 나는, 연주하기 위해서 꽤나 품이 많이 들어가는 악기였다. 저런 원리를 알리가 없던 어린 시절엔 선생님이 페달을 힘껏 밟으며 연주를 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 페달을 밟을 때 흔들리는 어깨가 마치 노래의 리듬을 타는 것처럼 흥겨워 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풍금'이란 단어를 들으면, 겨울에 난로를 때던 교실의 따뜻했던 음악 시간 생각이 난다.
선생님의 풍금 소리에 입을 맞춰 노래를 부르던 내 어린 시절엔 학교에서 배운 동요나 평일 저녁 가요톱텐에서 보았던 가요, 누나가 듣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팝송이 내가 접할 수 있는 음악의 전부였다. 인터넷은커녕 PC통신도 귀하던 그 시절에 노래를 외우기 위해선, 테이프 속 가사집을 들여다보거나 노래를 들으며 못쓰는 글씨로 삐뚤빼뚤 가사를 받아 적어야 했다. 유튜브 등을 통해 아이돌들의 노래와 댄스를 바로바로 확인하고 따라 하는 요즘 아이들에겐, 저런 모습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에겐 너무나 생생하게 남아있는, '고작' 30~35년 전 모습들인데 말이다.
마룻바닥을 발로 구르며 박자를 맞추고
함께 노래 불렀던 친구들
이제 모두들 어른이 되어
학창 시절 음악시간 잊힌 지 오래겠지
(예민, '아에이오우' 中)
예민의 '아에이오우'는 사실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라기보단, 어린 시절을 애틋한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요다. '풍금'이란 말만 들어도 순식간에 수십 년 전 국민학교 시절을 마음속으로 소환하고, 그때 함께 노래 부르며 깔깔댔던 친구들의 소식이 문득 궁금해지는 아저씨, 아줌마들을 아련하게 만드는 노래. 요즘 아이들이야 이런 노래를 들으면 그저 시시할 뿐이겠지만, 발표된 지 무려 45년이 된 이 노래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즐겨 듣고 따라 부르는 것은 이 노래 속에 그들의 어린이 시절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예민의 노래들은 맑고 순수하지만, 그 속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애조가 느껴진다.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에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슬픔이 처연하게 녹아있고, '아에이오우'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 배어 있다.(여행스케치의 명곡인 '난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어' 역시 그가 만들어 준 노래다) 그래서 이 노래들을 신나게 따라 부르고 난 뒤 밀려드는, 살짝 쑥스러우면서도 코끝이 시큰한 느낌은 변하질 않는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촌스럽다고 이야기할지 모를 이런 정서가 난 아직 너무나도 좋다.
어린이날이다. 집에 어린이가 없는 나로서는 다른 집 어린이들 덕분에 회사를 하루 쉬는 무임승차와 같은 날이지만, 그래도 어린이날이 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설렘이 마음을 살짝 스친다. 그건 내가 어렸을 때 맞이했던 어린이날에 부모님이 사주셨던 꽤 고가의 G.I 유격대 장난감을 받았을 때의 두근거림이 아직 남아있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왠지 다른 휴일과는 다른, 평소보다 맑고 순수한 마음가짐으로 보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문득 예민의 이 노래가 떠오른 것이 아닌가 싶다.
자꾸 과거를 그리워하면 나이가 든 증거라고 하지만, 이런 날 이런 좋은 노래를 들으면서 해맑았던 시절을 살짝 떠올려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어린이날을 챙기기 위해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야 하거나, 다양한 이유로 어린이날을 즐기지 못하거나, 나처럼 어린이날과는 무관하거나...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오늘은 어린이날을 보내는 어른들이 이 노래와 함께 조금이나마 마음이 즐겁고 따뜻했으면 좋겠다.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는 원래 이유 없이 신나야 하는 그런 날이니까.
https://youtu.be/YwyN3SlYCoo?si=kEuEZgRPB8Dd4r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