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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Jul 09. 2024

'시나브로' 도 좋지만...

무지성으로 반복해야 하는 것이 분명 있다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제가. 그러면 그거를 복사-붙여넣기 해서 2초짜리 부분을 한시간으로 만들어 놓은 다음에 한시간 끝까지 해요. 1800번 정도 할 수 있잖아요, 한시간 연습하면 2초씩."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실력이 늘 수 있었냐는 김계란의 질문에 대한 QWER 베이스인 마젠타의 대답을 들으며 정말 탄식이 나왔다.(맞아요. 요즘 QWER 콘텐츠에 빠진 아저씨 1인입니다) 악기를 연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답임을 알고 있지만 결코 하고 싶지 않은, '될 때까지 무한반복'을 저 친구는 직접 하고 있었던 거다. 나에겐 가장 취약한, 목표를 정해놓고 아주 밀도 있게 노력을 쏟아붓는 그 고행의 과정을.


난 '시나브로' 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이란 뜻의 이 단어가 내 삶의 방식과 너무나 부합하기 때문이다. 의식해서 우격다짐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다 보면 어느샌가 이루어지는 그런 게 자연스럽고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 성격은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데에는 꽤 강점을 보이지만, 문제는 정해진 시간 내에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는 너무나 취약하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 공부를 할 때도 중요한 건 그 부분만 반복해서 집중적으로 외워야 하는데 난 그저 전체적으로 여러 번 훑으면 자연스레 머리에 스며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성적이 좋을리가 있나. 무언가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것이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전략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난 애써 외면해왔다. 그 문제는 내가 기타를 배우는 데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한 곡을 연습할 때 연주가 잘 안 되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심지어 프로 기타리스트도 어떤 곡을 아무리 연습해도 100번 연주하면 두번은 꼭 틀리는 구간이 존재한다고 할 정도니까. 실수할 확률을 줄이려면 그 구간이 극복될 때까지 반복 연습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지루하고 고통스러우니까 피해왔고 그러다보니 실력이 내 맘처럼 늘지를 않았겠지. 하지만 '난 그저 취미로 즐겁게 하는거니까' 라는 핑계로 무한반복의 지루하고 힘겨운 과정을 생략해 버리곤, 잘 안되는 부분은 그냥 대충 연주하면서 넘어갔으니까. 그래놓고는 난 왜 자신 있게 남들 앞에서 연주할 수 있는 곡이 없을까 하며 괴로워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코미디가 아닌가.


내 연습이 게으르면... 옆에서 날 물어주겠니...


다음 달에 학원 연주회가 있어 Depapepe의 'One' 을 연습 중인데, 정말 날 미칠만큼 괴롭게 하는 한 구간이 있다. 왼손 핑거링과 오른손 피킹을 동시에 아주 빠른 속도로 연주하며 분위기를 최고조로 이끌어가는 하이라이트 파트인데 손가락이 꼬여서 극복을 못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원곡의 80% 속도밖에 안되는데도. 어제 마젠타의 저 이야기를 듣고 약 7초간의 해당 구간에 반복을 걸고 속도를 조금씩 높여가며 약 두시간을 연습하니... 손가락이 지판 위에서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물론 완벽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손가락이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충격이었다. 무한반복의 매직을 베이스를 잡은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어린 친구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무언가가 잘 되지 않으면... 머리를 굴려가며 고민하기보다 그냥 일단 무작정 해보는 게 필요하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하다보면 터득하게 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효율과 속도를 중요시하는 세상에서 무지성적인 반복이 미련하게 느껴지겠지만, 적어도 몸으로 체화해야 하는 분야에서만큼은 그 무지성의 힘을 믿어야 함을 검도와 기타를 연습하면서 새삼 느낀다. 어쩌면 작년 연주회 때 세 번의 리허설을 모두 실패했던 것도 무한반복을 통해 그 곡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한 달이 넘는 시간이 남았고 이제 방법도 알았으니(아 맞다... 방법은 원래 알고 있었지), 지금부터라도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면서 이 곡을 꼭꼭 씹어먹어 봐야지. 즐기기 위해선 일단 익숙해야 할 테고, 익숙하기 위한 길은 연습밖엔 없으니까. 물론 무대에선 손이 덜덜 떨릴지도 모르지만, 몸에 배어 있다면 무의식으로라도 어떻게든 연주는 할 수 있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게으른 아저씨의 가슴에 분발의 불씨를 붙여준 마젠타님에게 감사를.


https://youtu.be/a3Rwc0JXkls?si=37j6DM6euSIK58mW

이렇게 즐겨볼 날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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