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스 설치 분투기
한동안 <구해줘! 홈즈>를 챙겨 봤다. 저 동네 괜찮은데. 저 집은 별로네. 왜 구조를 저렇게 했을까. 저 동네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데. 그 돈이면 집을 사겠다. 왜 전세를 하지? 월세는 너무 돈 아깝지 않아? 그 집보다 아까 그 집을 했어야지~. 마치 우리 집을 찾는 것처럼 아내와 나는 TV를 보며 옥신각신했다.
"그런데 그 전원주택 난방은 뭐로 했데?"
"글쎄. 그건 안 나왔는데."
<구해줘! 홈즈> 프로그램 초기에는 전원주택의 경우 지열, 태양열, 심야전기, 도시가스, 기름보일러, LPG가스 등등 난방 설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다 어느 순간부터는 여기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없는 경우가 늘어났다.
아내와 나는 난방에 대해 예민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매매하며 난방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기 때문이다. 태양열을 하느냐, 도시가스를 놓느냐 그냥 이전에 살던 사람들처럼 기름보일러를 쓰느냐. 우리가 산 집은 도심에 있음에도 도시가스를 설치하지 않은 집이었다. 동네에 도시가스가 들어온 것도 10년밖에 되지 않다고 한다. 동네 안쪽 골목에는 아직도 연탄을 때는 집들이 있었다. 난방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건축사의 조언으로 도시가스를 설치하기로 했다.
* 도시가스 인입배관사용동의서 승낙받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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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옆집 두 곳에서 모두 도시가스 사용 허락을 받았다. 내 집 도시가스 놓는데 옆집 인감도장까지 받아와야 하는 이 빌어먹을 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러니 누가 구도심으로 이사를 오냐고. 이런 인프라를 행정이 해결을 해줘야지. 원도심 도시 재생한다고 애먼 짓이나 하고 있고, 참 내. 도시가스 설치하려면 돈도 돈이지만 이 따위 '빌어먹을' 절차를 왜 개인이 다 짊어지고 가야 하냐고. 살기 좋게 해 줘도 원도심에 이사를 올까 말까 하는 마당에."
구도심 주택에 집 짓고 살면서 겪었던 어려움이 뭐냐고 묻는 이들에게 나는 늘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특히 공무원이거나 공무와 연줄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원도심 주택 행정 이렇게 하지 말라는 넋두리를 해댔다. 어렵게 도시가스 사용승낙서를 받았지만 도시가스 공사를 하는데 또 속 터지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 번 땅을 판 곳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2년이 지나야 공사할 수 있다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법이 있다는 것이다.
"구청에 진정서를 내면 기한을 좀 앞당길 수 있대요."
진정 이게 진정할 수 있는 일인가. 연말이면 멀쩡한 보도블록 파헤치고 쓸데없는 보수공사를 일삼으면서, 골목길 한 평도 채 안 되는 땅을 파서 도시가스 설치하려는 이에게 이따위 행정이 말이 되나. 말은 벌써 구청으로 쳐들어 가서 구청장 멱살이라도 잡았는데, 내 손은 나도 모르게 공손히 진정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어차피 동절기에는 땅파기 공사가 안되니까 진정서 넣고 봄까지 기다리시죠."
"그럼 겨울을 어떻게 나죠?"
"일단 LPG 연결해서 쓰는 수밖에 없어요. 아시죠? 가스통."
이미 열을 너무 받아서 난방은 따로 필요 없을 것 같다고 건축사에게 말했지만, 일단 가스통을 연결해서 쓰는 걸로 마무리했다. 문제는 LPG 가스 비용이었다. 당시 LPG 가스 한 통 가격은 4만 원. 우리 집은 두 통을 연결해서 쓰는 걸로 했으니 한 번에 8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보일러를 가스통에 연결하고 3일 만에 고장이 나버리고 만 것이다. 도시가스 보일러에 LPG를 연결해서 잘 못된 걸까.
"여보세요? 보일러가 안 되는데, 고장이 난 것 같아요."
"보일러 창에 메시지가 뭐라고 떠요? 아, 그러면 고장이 아니라 가스가 떨어진 거 같은데요."
"네? 벌써요?"
8만 원짜리 가스통은 삼 일을 넘기지 못했다. 1층과 2층 난방에 온수까지 가스로 하다 보니 두 통의 가스로는 어림도 없었다. 게다가 가스가 한밤 중에도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 우리는 자다가도 동태가 되어 잠에서 깨는 일을 반복했다. 하필이면 그 해 겨울은 역대급 추위가 될 거라는 뉴스가 우리를 더 덜덜 떨게 했다. 이런 일이 잦아서 괴롭다고 하니 가스 배달업체에서 때가 되면 미리 가스통을 갈아주는 방식으로 일을 바꾸었다. 그나마 신경 쓸 일은 하나 줄었으나 예상치 못했던 비용은 사라지지 않았다.
"삼일에 팔 만원이면 한 달이면 80만 원이네?
"큰일이네. 이렇게 썼다가는 생활비 감당이 안 되겠는데."
시골 할머니들이 왜 집에서 '잠바'를 입고 사는지 그때 깨달았다. 가난한 동네일수록 계절에 맞지 않게 옷을 입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아파트에서 살 때처럼 보일러를 틀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났다. 아내와 나는 초겨울 패딩을 꺼내 실내복으로 입기 시작했다. 내복은 기본이고 기모 운동복에 폴라티까지 갖췄다. 집안에서 입고 있는 그대로 밖을 나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패션이었다. 물론 입은 상태 그대로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차가운 이불보다 옷을 입고 자는 게 더 따뜻했다. 보일러는 온도를 낮춰서 잠자기 30분 전에만 트는 걸로 아내와 합의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보일러부터 끄는 게 일상이 되었다. 보일러 끄는 걸 오후까지 까먹은 날에는 세상 나라 잃은 백성이 따로 없었다.
단열 공사는 제대로 했는지 집안의 열기가 쉽게 빠지지 않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향집이라 해가 들어서 낮에는 보일러 없이도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하지만 종일 집에서 일하는 아내는 가뜩이나 추위를 잘 타서 사실은 견딜만한 게 아니라 버틴다는 게 더 맞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살아도 가스비는 매달 30만 원이 넘게 나왔다. 그렇게 혹독했던 그 해 겨울을 우리는 LPG 가스통과 함께 버텼다.
2월 말 구청에 넣은 진정서가 효력을 발휘해 드디어 도시가스 연결 공사가 시작되었다. 땅을 팔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이란 말인가. 시뻘건 황토흙을 보면 기운이 난다는 농부들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도시가스를 설치한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반신욕을 했다. 반신욕을 하며 음악 듣는 이 달콤하고 소박한 나만의 쾌락을 되찾기까지 이렇게 험난한 겨울을 보내야 했다니. 이러려고 내가 건축주가 되었나. 허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주택 리모델링 상담을 할 때, 건축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2층 발코니에서 별을 보며 반신욕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거예요.' 내가 반신욕을 좋아한다니 했던 말이다. 별은 무슨.
습관이란 무서운 일이다. 도시가스가 집에 들어와도 아파트에서 살 때처럼 빵빵하게 보일러 돌리는 일은 줄어들었다. 예전 같으면 겨울에도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을 텐데, 여전히 겨울에는 실내에서도 따뜻하게 입고 지낸다. 집들이를 온 친구들이 왜 실내에서 '잠바'를 입고 있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답해주었다.
"이게 바로 구도심 주택살이 라이프 스타일이지."
구도심 주택살이 봉봉 TIP
1. 내복을 입죠. 두껍게 입죠.
2. 도심 속 주택 난방은 도시가스가 가장 효율이 좋습니다.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집을 매입하는 게 좋겠죠?
3. 대구에 이어 서울에서도 2019년부터 도시가스 인입 설치비가 사업자 100% 부담이 되었다고 하네요. 이전까지는 사업자와 이용자가 50% 씩 나눠 부담했어요. 불행히도 경기, 인천은 아직 아니라고 합니다.
4. 민원을 넣으세요. 공무원들을 움직이는 것은 민원, 탄원, 제안 등 '문서'입니다.
5. 땅파기 공사 관련: 도로법 시행령 30조에 따르면 ‘신설 또는 개축되어 포장된 도로의 노면에 대해 신설 또는 개축한 날부터 3년(보도인 경우에는 2년) 내에는 도로굴착을 수반하는 점용허가를 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어요. 이를 모르고 공사를 시작했다가는 저희처럼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6. 동절기 땅파기 공사 금지 기간은 보통 12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입니다. 또한 지자체에 따라 비가 많이 오는 6, 7월에도 굴착공사를 금지할 수 있다고 하네요. 단, 길이 10m 이하 너비 3m 이하 굴착공사는 예외니까 자세히 알아보고 이 기간을 피해 공사 계획을 세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