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 배다리 신포동
우리가 구도심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데는 경제적인 이유가 컸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이 오래된 도심에 많았기 때문이다. 오래된 건물, 오래된 식당, 오래된 술집 그리고 오래된 기억들.
그렇다. 세상 일이 모두 돈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지만, 한편에서는 세상을 좀 더 엉뚱한 방향으로 마치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끌어당기는 어떤 자력들이 있다. 나도 모르게 그런 끌림에 이끌리는 일들이 있는데, 우리가 오랜 구도심에 터를 잡은 이유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이 오래된 동네가 풍기는 어떤 기억과 정서들이 익숙했던 게 아닐까. (인천에 아무 기억과 연고가 없는 아내는 고맙게도 내 의견에 기꺼이 따라주었다.)
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근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렇다고 당시 이 동네에 살았다거나 연고가 있지는 않았다. 내가 살던 곳은 주로 인천 용현동과 주안 쪽이어서 학교와는 거리가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이 동네에 다시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대학에 진학하며 거리가 멀어진 이유도 있었지만 인천 여기저기 신도시들이 생겨나며 사람들은 하나둘 이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졸업 후 한두 번 배다리 헌책방에 책을 사러 온 적은 있었지만 그 후로 동네는 기억에서 빠르게 잊혔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1990년대 만해도 인천에서는 이곳 '동인천'이 번화가였다. 동인천은 늘 학생들로 천지였고 학생들의 천국이었다. 서울로 치면 명동과 종로를 한데 모아 놓은 그런 응축된 공간이 동인천이었다. '약속의 땅' 대한서림을 중심으로 분식집이 한 집 건너 하나씩 있었고 탁구장, 오락실, 문방구, 레코드 가게 심지어 '학생백화점'이 상권 한복판에 있었다. 지하상가는 또 얼마나 번창했는지 학생들이 원하는 것과 원하면 안 되는 것들까지 모든 것을 갖춘 곳이었다. 다만 지상과 다른 것은 지나다가 신발에 눈이라도 잘 못 굴렸다가는 그 신발을 사지 않고는 지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어둠의 포스가 있었다고 할까. 우리는 '삐끼' 형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옷을 사러 갔다가 일명 '빨간책'까지 사는 원 플러스 원 강매 행사가 도처에 난무했던 곳. 오성과 미림에 영화를 보러 양키시장까지 진출하는 날에는 세상은 그야말로 ‘던전' 그 자체였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도 진풍경은 난무했다. 등굣길 동인천 역부터 시작해 대한서림 방향으로는 이어지는 학생들의 교복 행렬은 마치 남극의 펭귄 떼들의 행진과도 같았다. 교복은 학교마다 하나같이 왜 그렇게 칙칙하게 비슷했던지 멀리서 보면 마치 '윌리를 찾아라'처럼 모두 그 애가 그 애 같을 지경이었다. 좁은 골목마다 담배 피우는 형들과 누나들이 있었고 재수가 없는 날은 하루에 세 번이나 '삥'을 뜯기기도 했다.
좀 더 멀리 가서 신포동과 차이나타운으로 길을 넓히면… 아, 신포동! 그때 신포시장의 닭강정은 맛있었다. 신포만두 쫄면은 또 어떤가. 배고픈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는지 돈이 궁색해서였는지 그때 신포시장에서 먹었던 튀김과 만두, 순대, 떡볶이들은 정말 맛있었다.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까지 진출하는 건 좀 두려운 일이었다. 나 같은 쫄보에게 공원과 공원 너머 차이나 세계는 벌건 대낮이 아니고서는 아예 갈 생각도 할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좁은 골목에 향신료 냄새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이 한데 뒤엉켜 자장면보다 더 거무튀튀한 음침함을 내뿜던 곳. 신포동의 울퉁불퉁 근육질 같은 골목에서 놀던 형들도 발길을 함부로 들일 수 없었던 그런 넘사벽의 세계가 차이나타운이었다.
20여 년도 훌쩍 지나,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근처에 살게 되면서 잊었던 그때 기억이 많이 떠오른다. 배다리 헌책방에서 책을 샀던 일들. 영화여상 학생들의 촌스런 체크무늬 교복과 타자기를 들고 다니던 빨간 교복의 중앙여상 학생들. 하필이면 학교 바로 아래 절이 있어서 '스님'이라 불리던 위아래 회색 교복의 광성고 아이들. 보는 이들이 더 창피했던, 역사에 남을 광성중 초록색 교복은 아예 이야기를 말자. 까까머리 아이들을 모두 수술실 외과의사로 둔갑시킨 그 에메랄드 초록빛 교복이란.
'리모델링은 리멤버링이다.' 이곳 배다리에서 주택을 고쳐 살다 보니 이 말이 이해가 된다. 내가 지금 사는 동네에 대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 사는 것이 어쩌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발이란 풍파에서 빗겨 나 있는 이곳엔 아직 그때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 흔적이 붙들고 있는 기억이 있어서, 사는 것이 나는 좀 덜 퍽퍽하다. 그 기억 속 공간과 추억의 가게들로 들락거릴 수 있는 것이 이곳에 사는 즐거움 중 하나다. 그리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집은 무엇일까.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그 공간에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많은 사람들이 신도시를 향해 떠난 반면 여기 구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왜 떠나지 않고 남았을까. 어떤 이들은 왜 우리처럼 돌아와 사는 걸까. 무엇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선택하게 하는 걸까. 단지 돈의 문제일까. 원래 살았던 곳이기 때문에, 살다 보면 정이 들기 때문에 익숙한 걸까. 사람들은 정말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곳에서 살고 있는 걸까. 비싼 동네 비싼 아파트에서 살면 정말 살기 좋은 걸까. 살기 좋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그럼에도 자신이 살고 있는 집과 동네는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구도심 주택살이 봉봉 TIP
1. 구도심 주택을 찾는다면, 본인이 잘 알고 있는 곳부터 살펴보세요. 등잔 밑이 어둡습니다. 따져봐야 할 이런저런 것들이 있지만 동네에 대한 익숙함과 호감도 주택 구입 시 무시 못할 중요한 점입니다.
2. 동네 정보를 알고 싶다면 세탁소, 미장원 같은 동네 인플루언스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부동산 어플들도 많지만 오래된 동네일수록 전통적인 방식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