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이 별건가
결혼 후 아파트 전세를 옮겨 다니기를 세 번. 계속해서 대출금은 늘어나고 더 이상 이사 다니기도 괴로웠다. 주택에 대한 로망을 품고 아파트 전세금으로 인천 구도심 단독 주택을 매입했다. 그리고 집 담보대출로 리모델링 공사를 완료했다.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공사비가 커져 대출은 또 늘었지만 그래도 내 집이 생겼다. 그렇게 도심 속 단독주택에 산 지 2년이 넘었다.
주택에 살아보니 괴로움도 즐거움도 있다. 굳이 무게를 재어보자면 즐거움 쪽이 더 크다. 우리를 괴롭혔던 층간소음에서 해방되었고 애매한 거리긴 하지만 이웃도 생겼다. 동네 책방이며 동네 밥집과 술집,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주위에 있어서 오래된 동네를 산책하는 즐거움도 있다. 게다가 요즘엔 동네를 재생하는 사업을 한다 하니 살기가 더 좋아지지 않을까.
도시재생을 위한 주민공청회에 나오라고 해서 한번 가보았다. 재생 사업으로 무엇을 할지 의논하는 자리였다. 우선 재생 센터를 짓고, 교육프로그램도 한단다. 그리고 주민들 의견을 물어 이런저런 사업을 하는데 대체로 다른 곳에서 하는 걸 흉내 내는 듯했다. 나도 주민의 한 사람으로 의견을 내려고 손을 들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이미 주도권을 잡은 분들이 계셨고, 나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풋내기일 뿐이었다.
회의에 몇 차례 나가봤지만 회의만 들 뿐이었다. 내가 하려던 말은, 우리가 이사 오면서 겪은 문제들과 구도심 주택으로 이사하기가 망설여지는 이유들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한다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살기 좋고 그러면 당연히 구도심에 이사오려는 이들도 늘 것 아닌가. 그게 바로 도시재생 아닌가. 구도심 신출내기라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여기에 적어본다.
작성자: 구도심 주택 러버 a.k.a 구도심 풋내기
주차문제
구도심 주택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우리는 다행히 집 앞에 공영주차장이 있었기에 주택을 매입하는데 고민을 덜게 되었다. 공영주차장을 늘여야 한다. 지어 놓고 유지도 못하는 재생 센터를 자꾸 만들 게 아니라 그 돈으로 주차장을 더 늘이면 어떨까?
센터는 이제 그만
도시 재생 사업을 하며 센터를 자꾸 만드는 이유는 그것이 마을 공동체 허브 역할을 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 환상을 버려야 한다. 센터 만들어놓고 이런저런 교육을 한다고 갑자기 없던 공동체 정신이 생기나. 자금을 센터 짓는데 털어 넣고, 인력 인건비로 또 나가고, 자금 고갈되면 센터를 놀리며 이걸 어쩌나 하는 걸 많이 봐왔다. 도시 재생에 공동체 정신이 반드시 깃들어야 할 이유도 없고, 센터가 없어도 생길 이유가 있으면 생긴다.
도시가스
우리가 이사를 하며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은 도시가스 문제였다. 나는 아직도 도시가스를 왜 개인이 설치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도심의 도시가스는 상·하수도 같은 생활 기본 인프라가 아닌가. 인터넷망 사업자처럼 도시가스 사업자가 관 매립 비용을 대고 소비자가 이를 저비용에 이용할 수 있도록 행정력을 발휘해야 한다. 다행히 서울은 2019년부터 '도시가스 인입배관 공사금 분담금 제도'가 폐지되었다. 사용자와 50%씩 분담하던 것을 도시가스 회사가 전액 부담한다. 인천을 비롯해 다른 도시들도 따라서 시행해야 한다.
별첨> 도시가스 설치하려다 옥황상제 알현하고 온 이야기
마을공구대여소
재생 관련 사업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사업이다. 주택에 살다 보면 공구들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옆집에 가서 빌리기도 뭣하고, 사기에는 비싸다. 이런 공구들을 행정복지센터에서 대여해주는 것이다. 누가 생각해냈는지 칭찬해 줘야 한다. 칭찬해~. 이게 생활 필요에 의해 생기는 공동체 정신이다.
'순돌이 아버지 서비스'
마을공구대여소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서비스이다. 주택에 살다 보면 대부분 '순돌이 아버지'가 되어 자신이 뚝딱뚝딱 집을 고치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나처럼 '똥손'들은 뭘 해도 엉망이라는 것이다. 아파트 관리소처럼 구도심에도 동네마다 '순돌이 아버지 관리소'를 만들어서 '똥손'들을 구해야 한다. 비용은 도시재생 사업 기금과 이용자가 나눠 부담하면 된다. 어디에나 있는 지역 재주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도 있다.
교육문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구도심 주택을 가장 꺼리는 이유인 듯하다. 우리는 아이가 없어서 이런 고민은 없었다. 구도심 인구가 적으니 학교수가 적고 사교육을 시킬 곳도 마땅치 않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구도심 = 가난한 동네, 가난한 동네 = 가난한 교육, 가난한 교육열. 결론 암튼 후짐. 이런 인식이다. '이부망천'의 사고 구조와 다를 게 없다. 원도심에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방법은 특성화 교육, 공교육 강화밖에 없다. 남한산성초교처럼 구도심 학교가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집값
교육문제만큼이나 사실 구도심 주택을 꺼리는 이유이다. 아파트는 오르는데 빌라, 주택은 안 오른다. 남들 다 오르는데 십 년을 살아도 나만 안 오른다. 열 받는다. 이게 현실이다. 집이 투자의 대상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풀지 못할 숙제이다. 반면 우리처럼 구도심 주택의 가격 매리트로 이사하는 이들도 있다. 이것도 하나의 현실이다. 내 집에서 맘 편하게 오래 살고 싶고, 내가 살고 싶은 동네에서 살고 싶다. 집값이야 안 올라도 상관없다. 부동산이 미치니, 이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스스로 열만 안 받으면 된다. 이런 생각이 늘어나면 구도심으로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눈길이 가면 발길이 가고 발길이 쌓이면 돈도 모인다. 세상일 누가 알리오.
전선 지하화
요즘 우리 동네 재생사업으로 전선 지하화를 하고 있다. 잘하는 일이다. 전선들이 허공에 헝클어져 있어서 보기도 안 좋고 위험하다.
조경
신도시가 부러운 것 중 하나는 공원과 가로수들이다. 구도심에는 나무도 별로 없고 공원도 없는 경우가 많다. 주민들을 위한 작은 공원이라도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 또 거리에는 나무를 심어서 걷고 싶은 동네 분위기를 연출해야 한다. 그래야 걸을 맛이 나고 그래야 사람들이 찾는다.
구도심 주택살이 봉봉 TIP
1.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2. 꼭 살고 싶은 동네에서 재미있게 사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