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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Aug 28. 2020

야구부가 있는 학교 앞에 살면

우리동네 사람들 2 야구부

"혹시 야구공이 집으로 넘어오지는 않나요?"

"저희가 10년 살면서 딱 한 번 야구공이 넘어오긴 했어요. 걱정 안 해도 돼요."


우리가 매입한 집주인은 솔직한 분이었다. 집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고, 집을 파는 쪽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주셨다. 여름 되면 옥상에 그늘막이라도 치라며. 그 조언 덕분에 우리는 리모델링을 하며 단열에 신경을 더 많이 썼다. 한때 본인이 부동산을 해봐서 안다고, 나머지는 문제없다고 했다. 대체로 집주인의 말은 맞았지만 야구공 이야기는 거짓이었다. 리모델링 공사 차 옥상에 올라가 보니 그 자리에 꽤 오랫동안 있던 걸로 보이는 야구공이 두 개나 보였다.


집 앞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나를 사로잡은 오래된 빨간 벽돌 건물. 11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 학교는 한때 학생수가 6천 명을 넘었다. 그만큼 졸업생들 가운데 유명인사들도 많다. 하지만 사람들이 신도시를 향해 떠나고 구도심의 학교는 이제 전교생 2백 명의 작은 학교가 되었다. 더 이상 자랑할 게 남을 것 같지 않은 학교의 자랑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류현진 선수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현진은 이 학교 야구부를 졸업했다. 구도심의 꼬마는 커서 류현진이 되었고 이제껏 학교를 졸업한 어느 누구보다 유명 인사가 되었다. 미국으로 진출 한 뒤에도 류현진은 가끔 모교를 찾아왔다는 말을 옆집 주먹밥 이모님께 들었다.


"이모님도 '류현진 주먹밥'을 만들어 파시는 건 어때요? 야구공 모양에 참깨를 실밥처럼 박아 넣으면?"

"어머 어머 웬일이야~ 하하하하. 역시 젊으니까 생각이 달라."


호탕하게 웃으신 반면 제안은 거절하셨다. 미래의 류현진이 될 어린 학생들은 밤낮없이 그리고 주말에도 운동장에서 연습을 한다. 고요하던 동네는 쩌렁쩌렁한 학생들 소리로 활기차다. 하지만 야구부 학생들이 열심히 운동을 할수록 나의 불안도 커져갔다. 언젠가 야구공이 날아와 우리 집 유리창을 박살 내지는 않을까. 하필 왜 비싼 프로젝트 창은 이쪽 방향으로 냈을까.


목련꽃 필 때, 눈이 올 때 학교는 가장 아름답습니다. 우리 집도 이 벽돌이었으면 ㅜ.ㅜ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적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4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였고, 또 한 번은 그보다 저학년 일 때였다. 토요일인가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축구를 하는데 내가 찬 공이 허공을 가르더니 하필 교실 프로젝트 창을 박살내고 말았다. 주말 근무를 하던 선생님은 단번에 운동장으로 뛰쳐나왔고 아이들은 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선생님의 판결은 단순했다. 다음 주에 어머님을 모시고 오라는 거였다. 하지만 내겐 최악의 판결이었다. 당시 엄마는 낮에는 일로, 저녁에는 누워계신 아버지 병시중으로 숨 가쁜 생활을 하고 계셨다. 당연히 엄마가 학교에 올 시간은 없어 보였고 가난한 우리 집 형편에 유리창을 변상할 돈도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 주 나는 학교를 결석하는 걸로 판결을 거부했다. 내가 학교를 가지 않아도 집에서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학교에 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후로 한동안 학교를 가는 게 힘들었다. 학교에 가서도 운동장에서는 놀지 않았다. 최악의 판결을 한 선생님은 다행히 나를 찾지 않았지만, 나는 유리창이 박살난 교실 쪽으로는 발길을 끊었다. 그렇게 죄인이 된 마음으로 한동안 학교를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엄마한테 이야기하고 변상했다면 더 좋았을 법한 이야기이다. 그 일 때문이었는지 나는 내성적이고 겁 많은 소년으로 성장했다. 가난하다고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이런 기억 때문에 나는 우리 집 유리창이 야구공으로 박살 나지 않을까 걱정이 두배다. 혹시 유리 집 유리창을 박살 낸 아이가 나 같은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을까.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더 힘차게 휘둘러라.' 이렇게 돌려보내고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이 비싼 유리창을 내가 고치고 살아야 하나. 고민은 이중, 삼중창으로 머리를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마당 한편에 야구공이 하나 놓여 있었다. 오지 말아야 할 불청객이 온 것이다.


"여보, 마당에 야구공이 넘어왔던데?"

"어머, 그래? 몰랐는데. 자기가 가서 얘기 좀 해봐. 이러다 유리창 박살 나겠어."

"으응? 내가? 지금 운동장에 아무도 없는데."

"무슨 소리야 소리가 다 들리는데."

"다음에…."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은 토요일 야구공이 또 넘어왔다. 이번엔 아내와 함께 집에 있다가 그 소리를 들었다. 동네 대외협력 업무는 내 소관이었기에 더 뭉그적거릴 수가 없었다. 야구공을 집어 들고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교문으로 걸어가는데 한 아이가 공을 찾아 헐레벌떡 뛰어내려왔다. 야구복을 입은 통통한 아이를 보자 어린 시절 내가 떠올랐다. 아이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내 손에 있는 야구공을 쳐다봤다.


"이 공 찾으러 왔니?"

"네."

"몇 번 타자야?"

"3번인데요."

"홈런이었니?"

"아니요."


나는 미래의 류현진이 될 수도 있는 아이에게 공을 건네주었다. '다음엔 홈런 쳐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발길을 돌려 집으로 들어오려다 그냥 이대로 가면 아내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아서 다시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야구부 감독도 아이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나는 감독께 이차저차 하니 주의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감독께서는 주택 방향으로 그물을 쳐야 하는데, 여차 저차 한 문제들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 이렇게 저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나눴다. 발길을 돌리려다 벤치에 앉아 야구부 아이들의 연습경기를 더 관람했다. 아이들은 귀엽기도 하고 진지한 선수 같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내 모습이 얼핏 떠올랐다.


2019년 사진이다 보니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네요. 어서 코로나가 끝나야 할 텐데.


"여보세요?"

"왜 안 와?"

"야구 보고 있어."

"얘기했어?"

"응."

"뭐래?"

"홈런 치기 쉽지 않대."

"뭐?"


교문을 내려오는데 현수막에 이런 글이 쓰여 있다.


'류현진 선수를 배출한 전통의 야구 명문. 야구부에 가입하면 유니폼도 무료로 줍니다. 가입대상 1-5학년.'


'나도 어느덧 4학년인데…. 내가 가입해 볼까.'




구도심 주택 살이 봉봉 TIP


1. 자신의 나이를 몇 학년 몇 반으로 부르는 어르신들이 예전엔 좀 이상했는데, 이제 제가 그러고 사네요.


2. 학교 앞에 살면 장점도 있습니다. 차는 느리게 달려야 하고, 도로에 주정차도 안 되죠.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가 있어서 집 앞을 막고 높은 건물이 들어설 가능성도 적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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