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루프탑, 빨래, 정원

원도심 주택살이의 괴로움과 즐거움

by 봉봉

영화 <로마>는 중요한 몇 가지를 내게 떠올려 주었다. 우선 영화에서 사운드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알려 주었고, 덕분에 나는 방통위 지원사업 PT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또한 개인의 기억과 스토리가 어떻게 'Roma'라는 한 도시, 크게는 멕시코라는 한 국가의 역사로 확장할 수 있는가를 멋지게 보여 주었다. 누구 말마따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인 것'이며,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을 이 영화 <로마>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한 것,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장면, 내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을 좋아하게 된 바로 그 이유! 옥상에 빨래를 너는 마지막 장면에서였다. 가정부 클레오는 옥상에 빨래를 널고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눕는다. 자신이 돌보는 막내 페페도 머리를 맞대고 같이 눕는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도 적당하다. 눈을 감으니 로마라는 도시의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소리는 기억을 데리고 온다. 누가 뭐래도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 평화롭다. 세기의 명화를 보며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자각을 하고 말았다.


'그래, 빨래는 역시 옥상이지.'


영화 <Roma>의 엔딩 장면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집에 옥상이 있다고 하니 주위에서 하는 말은 보통 이랬다.


남자: "놀러 갈 테니, 옥상에서 고기 구워 먹자~."

여자: "옥상에 빨래 널 수 있겠네. 너무 부럽다~."

FEAT. 엄마: "고추 말리면 잘 마르겄네."


우리나라 남자들에게는 유목민의 피가 흐르는지 밖에서 고기 구워 먹는 걸 좋아한다. 여자들은 그동안 살림을 도맡아 해온 관습 때문인지 일거리부터 떠올리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은 나의 편견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 옥상 하면 남녀노소 루프탑의 낭만을 떠올리거나 아니면 빨래나 고추 말릴 생각을 먼저 하긴 했다. 아무튼 내가 옥상에서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정원이었다. 나무도 심고 텃밭도 만들어 밖에서 딱 봐도 멋진 녹색 옥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한편에는 선루프를 만들어서 가끔씩 그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아내와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전에 이야기한 대로 리모델링에 예상보다 큰돈이 들어간 탓에 옥상은 거의 손도 대지 못했다.


단독주택 협소주택 리모델링 이야기


아쉬운 대로 옥상에 텃밭을 만들기로 했다. 택배로 오는 스티로폼 박스에 구멍을 내고 상추와 쑥갖, 고추, 토마토 등을 심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옥상에 수도관이 없어서 매일 물을 길어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까지 것 못하겠냐 했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고 화분 박스가 늘어나자 물을 주는 일도 벅차게 느껴졌다. 게다가 고추와 토마토는 어느 정도 잘 자라다가도 성장을 멈추곤 했는데 누가 봐도 이유는 화분이 작고 흙이 적어서였다. 이참에 돈을 들여 텃밭용 화분을 들일까 생각하다가도 그 값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방부목으로 만든 텃밭 용 화분은 작은 것도 개당 10만 원을 훌쩍 넘었다. 화분이 적어도 세 개는 필요한데. 그러면 차라리 내가 만들까.


자타공인 천하의 '똥손' 내가 그냥 만들기로 했다.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니 별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따라서만 한다면 돈도 적게 들여, 옥상 정원까지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즉에 동영상 찾아볼걸. 동네 목재 판매소에 가서 방부목을 샀다. 남들은 미리 설계도를 만들어 크기대로 나무를 잘라온다고 해서, 나도 사장님께 부탁했다.


"화분 만들려고 하는데, 방부목 팔아요?"

"네.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대요?"

"그냥, 길이가 한 1미터 50 정도요?"

"높이는요? 그런데 너무 크지 않아요? 뭐 심으려고요?"

"그냥 일단 토마토 같은 거요. 그럼 어떻게…."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라는 표정을 하던 사장님은 그럼 보통 이렇게 하니 이렇게 하세요라며 나무를 잘라주었다. 내가 화분 세 개를 만들겠다고 하니, 다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일단 하나만 만들어보고 또 와서 사가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셨다. 처음 보는 분이었는데 어지간히 내가 걱정됐나 보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서 일단 하나 분량만 사서 돌아왔다. 생각보다 목재 가격은 저렴했다. 이참에 옥상 정원도 만들자!


돌이켜보면 사장님의 말을 듣길 잘했다. 텃밭 화분 만들기 동영상에서는 뚝딱뚝딱 쉽게 하는 것들이, 나에게 전혀 쉽지 않았다. 목재가 비틀어지지 않게 수평을 맞추는 일부터가 어려웠다. 나사못을 나무에 박다가 자꾸 목재가 갈라지는 일이 생겨서, 다시 박고 또 박고 하다가 성질이 나고 말았다. 또 사면을 만들고 서로 합해보면 전체 균형이 맞지 않아 조립했다 풀었다를 몇번 반복했다. 결국 '주말 하루면 하겠네.' 했던 일이 일주일을 넘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나마 동영상에서 보던 화분 모양새를 갖추긴 했는데 어딘가 찌그러진 만신창이 상자가 되어 있었다. '야, 이거 흙을 넣으면 버틸 수 있을까? 흙 쏟아부으면 이거 부서지는 거 아니야.' 내가 만들고도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흙을 또 옥상까지 어떻게 옮기지?', '물은 또 매일 어떻게 길어 올리지.', '아니, 왜 내 말을 안 듣고 옥상에 수도관을 안 놨어.', '이러다 허리병 도지는 거 아니야.' 이 핑계 저 핑계가 머릿속에서 뭉개 뭉개 피어올랐다. 아내에게 큰소리친 게 생각나서 오기로 완성을 해보려고 하다가도, 이러다 정말 큰일을 치를 것 같아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그렇게 하나 둘 내가 아끼던 식물들은 시들시들해지고 나의 옥상 정원 꿈도 시들시들해지고 말았다.


사진으로 텃밭 화분을 보니 그나마 봐 줄만 하네요


옥상에 빨래를 널러 갈 때마다 나의 찌그러진 화분을 바라본다. 옥상 한편에 덩그러니 만신창이가 되어 버려진 화분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영화에 나온 클레오나 페페처럼 나도 저 위에 나도 벌렁 드러누워 볼까. 그렇게 빨래 널고 낮잠이자 한숨 자 볼까. 그런데 내 몸무게를 버틸 수 있을까. '아이쿠, 두야!'




구도심 주택살이 봉봉 TIP


1. 본인이 생각하기에 '똥손'들은 아무것도 만들지 않기로 해요. 사태 수습이 더 어렵습니다.


2. 하지만 언젠가는 꼭 옥상 정원을 만들겠습니다! 어떻게든 완성해서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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