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삶에서
여자들이 군대 얘기를 싫어하고 군대에서 축구 한 얘기는 더욱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TV를 볼 때 나는 경연 프로그램이 싫다. 더군다나 노래 경연이라면 채널을 바로 바꿔버린다. 좋은 노래를 가지고 경쟁을 하는 긴장감은 견디기 힘든 잡음일 뿐이다. 하루하루 사는 스트레스도 버거운데 음악마저 날 긴장시킨다면 어디로 피해 가 있으란 말이냐. 음악 듣는 것이 요즘은 얼마나 편한가. 듣고 싶은 곡이 있으면 복권 당첨 바라는 심정으로 엽서를 쓰거나 아니면 라디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려 녹음해야 했던 때도 있었다. DJ가 음악을 먼저 틀고 곡 소개에 멋을 부리면 녹음 준비하던 긴장한 손끝이 급격한 분노로 힘이 풀린다. 미스터빅의 ‘투 비 위드 유’를 좀 따라 불러 보겠다고 턴테이블 위에 올려 숨죽여 바늘을 놓아야 들을 수 있던 LP로 턱, 터덕, 치지직을 반복하던 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잡음이 더해지던 LP에 비해 CD라는 것의 소리는 소름 끼치게 정확해서, 그래서 좀, 비현실적이었다. 아이팟 MP3는 어떤가. 어쩜 그렇게 작고 예쁜지 신기할 따름이었지. 이제는 서비스 플랫폼에만 접근할 수 있으면 ‘스트리밍’으로 어디서든지 어떤 방법으로든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전철이나 버스, 자동차 안에서도 ‘노이즈캔슬링’이라나 하는 기술이면 오로지 음악과 나만의 콘서트홀이 생긴다. 한 곡 한 곡 모아 테이프에 담아서 선물하던 추억은 “라떼는 말야…” 옛이야기다. 어느새 나는 지금 여기에서 다른 세상을 살고 또 다른 세상으로 살아나간다.
한 번 터치였을 뿐인데 유튜브에서 포레스텔라의 팬텀싱어 시즌 2 결승 1회전 첫 곡 ‘in un’altra vita(또 다른 삶에서)’ 무대를 보여준다. 무시한다.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니까. 그랬더니 알고리즘은 내게 이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하는 설명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떤 외국인의 리액션 영상이 떴다. 포레스텔라가 커버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것이었다. 코로나로 길은 모두 막혔지만 인터넷 세상의 연결은 그 어떤 때보다 빠르고 끈끈하다. 성악 전공자도 있다니 퀸보다 잘 부르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락밴드인 퀸이 오페라 스타일을 접목한 곡이고 온전한 라이브만으로 들을 수가 없었던 곡이기도 하니까. 그러다 다른 곡보다 긴 줄도 모르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가 테이프가 모자라 버튼이 탁하고 튀어 올라 놀라던 그때가, 그 시절이 떠올랐다. 철학자 미셀 푸코와 지휘자 레너드 번슈타인, 할리우드 배우 록 허드슨처럼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도 에이즈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나는 라디오 디제이에게 들었다. 뛰어난 아티스트라지만 에이즈라니. 거기에 ‘Mama, just killed a man(엄마, 사람을 죽였어)’라니. 자체 검열이 강한 착한 학생일 때, 유럽은 알아도 동유럽의 존재는 잘 모르던 시절, 금지곡이었다가 풀리던 그즈음의 이야기다. 이제 시간은 흘러서 퀸은 전설이고 『보헤미안 렙소디』는 엄마 아빠가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함께 ‘자유로운 영혼’에 대해 얘기하며 볼 수 있는 천만 관객 영화다. 포레스텔라는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이 곡을 마치 김연아가 트리플 러츠에 트리플 토 점프를 붙여 빙판을 가로질러 날아가듯 시원하게 부르고 있었다. 깨달았다. 나는 이 곡을 처음 듣던 때와는 한참 다른 시대에 살고 있었구나.
TV 쿠폰을 모두 써서 ‘팬텀싱어 시즌2’를 몰아보고 결국 포레스텔라라는 팀이 결성되고 처음으로 부르는 이 곡 ‘인 운 알트라 비타’에 다다랐다. 경연 프로그램이지만 지켜보기로 했다. 결과를 알고 있으니까. 그들은 ‘죽을 각오’로 부르겠다고 인터뷰를 한다. 예술가들이란 늘 이렇게 처절한 경계에 서야 하는 걸까. 쓰러질 것 같이 서서 한 음 한 음 정성을 다하며 절정으로 향한다. 곡 자체가 영원한 사랑에 대한 노래여서였는지 뭔가 초월적인 힘에 닿았는지 노래 부르는 서로의 입가에 기쁜 미소가 핀다. “긴장감을 기쁨이 이겼다”고 멤버 고우림은 회고한 바 있다. 경쟁이라는 잡음 위로 다정한 눈길이 서로를 감싸 다독이듯 타고 흐른다. 그들에게 또 다른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으리라.
이 노래로 나는 포레스텔라에 “꽂혔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만든 음악이 나만의 너무나 개인적인 경험과 어떻게 이렇게 꼭 와닿을 수 있는지 신기한 일이다. 또 다른 삶에서도 사랑하겠다는 노래….
그대를 위한 집을 짓고 … 그곳에서 영원할 거예요
그 가사로부터 나는 십여 년 전 어느 날 밤 꾸었던 꿈 속으로 간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20일 뒤 엄마는 환갑을 맞았다. 태몽을 꿀 때처럼 낯설지만 생생한 꿈이었다. 나는 하늘로, 하늘로 올랐다. 캄캄한 공간에 크리스털 별빛이 가득하고 만년설 덮인 산봉우리가 아래로 끝이 없었다. 아늑한 느낌이 들며 그 장엄한 풍경이 커다란 통창 밖으로 밀려나고 나는 자개장이 은은한 온돌방에 들어와 있었다. 아빠…?
“엄마를 위해 아빠가 준비한 집이야. 엄마한테 잘 있다가 이곳으로 오라고 해 줄레?”
창으로 비쳐든 햇살이 다독이듯 깨우는 아침, 눈을 떴다. 우연한 일과 우연한 일이 만난 그저 우연한 일일지 모를 일이다. 꿈을 기억하고 노래를 들으며 숨 막힌 두려움과 슬픔에서 깨어나 다른 삶이 시작되던 그때 그 아침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