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dsbos Mar 05. 2021

여자끼리 모이면 다 그렇다고?

빻은 여초 편견 빻아버리기

"여대는 단합도 안 되고 재미없대"

"여초 회사는 기싸움 장난 아니고 편 가르기도 심하다더라"

"여자끼리만 살면 전구는 누가 갈아주고 힘쓰는 일은 어떻게 해?"

  여중, 여고, 여대, 여초 직장, 더 나아가 사적인 모임부터 여자들이 사는 집까지 여자끼리 모이기만 하면 온갖 부정적인 인식과 괴상한 소문들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습니다. 때로는 여성 집단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직접 경험해 본 것 마냥 온갖 소문을 퍼트리고 다닙니다. 과연 그 소문의 출처가 어디인지, 실체는 있는 것인지 여성 집단을 겪어 온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봅시다.



Q1

그동안 여러 여성 집단을

거쳐오면서 마주한

대표적인 편견은?


레몬  여자끼리 모이면 기싸움 심하다!


하이볼  맞아요. 저도 그 얘기 진짜 많이 들어봤어요.


자몽  여대 재미없다, 여자들끼리는 남자 얘기만 한다는 얘기도요.


  그리고 여대는 애초에 가지 말아라(웃음).




Q2

그런 편견이

사실이었나?


하이볼  먼저 기싸움에 대해 얘기해볼게요. 사람들은 흔히 여자들이 서로의 사생활을 끄집어내어 헐뜯고, 외모나 남자를 두고 소모적인 경쟁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대를 다니면서 학교에서 서로 외모를 비난하거나 남자를 두고 경쟁하는 걸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오히려 공학에 다녔던 중·고등학생 때 친구들이 남학생을 두고 다투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어요.


자몽  사실 기싸움을 통해서 서열을 나누는 문화는 여초뿐만 아니라 남초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또 여자들끼리 있으면 서로 외모를 품평하고 신경전을 벌인다는 편견이 있는 동시에 잘 보일 남자가 없으니 안 꾸미고 다닌다는 편견도 있죠. 이 두 가지 편견이 서로 부딪히는데도 여성 집단을 깎아내릴 수만 있다면 본인들 입맛에 맞게 비난하는 것 같아서 참 웃기더라고요.


레몬  제가 경험한 여성 집단에서의 기싸움은 좀 더 정치적인 느낌이 강했어요. 집단 내에서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든지, 누가 리더로서 더 사람들의 신임을 얻는지 겨루는 것이죠.


  여자들끼리만 있으면 재미없다는 말도 많이 하잖아요? 사실 저도 옛날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여대에 입학하고 나서 남자를 만나려고 미팅도 나가고 대외활동도 했었죠. 그런데 미팅은 정말 재미없었고, 대외활동에서는 남자는커녕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버렸어요. (웃음) 요즘엔 영상통화를 자주 하는데, 랟스보스 친구들과 새벽 내내 잠옷 입고 누워서 수다를 떤 적도 있어요. 온라인 게임도 자주 하고요. 여성 집단의 재미는 경험해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고 생각해요.




Q3

여성 집단을 향한

편견과 관련된

인상적인 경험이 있었나? 


하이볼  저는 네 달 동안 여자 셋이서 함께 살아본 적이 있는데요, 여자들끼리 산다고 하면 힘쓰거나 전구 가는 일은 누가 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 한 번은 요리를 하는데 소스 뚜껑이 안 열리는 거예요. 룸메이트 언니가 “역시 남자가 있어야 해”라고 했지만 결국 여러 방법을 동원해가며 제 힘으로 병뚜껑을 열었어요. (웃음) 또 ‘남자의 도움을 받아 설치해야 한다’는 이케아 침대를 룸메이트들과 직접 조립했죠. 남자와 함께 살다 보면 여자라는 이유로 시도도 안 해보고 남자에게 일을 맡기도록 권유받아요. 하지만 병뚜껑을 따는 일부터 가구를 조립하는 일까지 여자라서 못 할 일은 없어요.


자몽  격투기 도장에 다닐 때 다섯 명의 여성들과 같이 운동했어요. 그때 관장님에게 ‘여자애들은 꼭 뒤에서 자기들끼리 말 만들다가 싸운다’, ‘다이어트하려고 왔다’, ‘여자애들끼리 수다만 떨고 운동은 안 한다’ 등의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현실은 사뭇 달랐어요. 서로 피 터지게 스파링을 하고도 뒤끝이 없었죠. 또 서로 근육을 키운다고 프로틴을 먹고 운동일지까지 썼어요(웃음). 가장 좋았던 건 체급이 비슷해서 같이 운동을 하기 수월했고, 정혈의 불편함도 공감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죠.


운  저는 한창 축구 모임에 빠져있었는데요, 직장 상사가 "여자들끼리 축구를 할 수 있나?"라고 했던 게 기억나요. 지금까지 운동장은 오직 남자의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여자들이 팀을 이뤄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더라고요. 실제로 저희가 치열하게 축구를 하고 있으면 지나가는 분들이 그 광경이 생소한지 한참을 지켜보고 가기도 해요. 앞으로 더 많은 여성이 운동장을 차지하면 좋겠네요.




Q4

여성 집단을 경험하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나?


운  예전에는 제가 여자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어요. 여자들을 향한 각종 편견을 여과 없이 믿고 여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렸죠. 그런데 여대에 입학하고 여러 여성 집단에 가입해 활동하고 나서부터 그 편견들이 다 허상임을 확인했어요. 이제는 여자들과 함께하지 않는 일상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아요(웃음).


레몬 여자끼리 어울리다 보면 미래에 대한 계획이 달라지기도 해요. 저는 막연하게 30대에는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누가 딱히 강요한 것도 아닌데, 혼성 집단에서 남자랑 연애하고 결혼하는 사람들을 보며 당연히 어느 순간 저도 한 남자와 연을 맺을 거라고 단정 지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자들과 어울리면서 제가 원하던 것은 남자나 결혼이 아니라 일상을 공유할 누군가였을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제는 제 미래를 떠올리면 지금처럼 여자들이랑 재밌게 잘 먹고 잘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져요.


자몽  가장 큰 변화는 저의 한계를 깰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남자들과 어울리다 보면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도 여자라서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여자라는 이유로 도전할 기회조차 빼앗겼죠. 칭찬 앞에도 늘 ‘여자 치고’가 붙고요. 그런데 여성 집단에서는 모든 일을 여자가 해내는 게 당연해져요. 이렇게 여성 집단 내에서 신체적으로든 능력적으로든 한계를 긋지 않는 분위기가 저에게 큰 영향을 줬어요. 주식, 코딩, 축구 등 스스로 한계 지어왔던 분야와 취미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죠.


하이볼  맞아요. 확실히 야망을 갖고 자기 계발에 힘쓰는 여자들을 보면서 저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어요. 대화 주제부터가 달라지게 되죠. 혼성 집단에서는 여자들이랑도 연애, 아이돌, 네일, 화장품 등 주로 소모적인 이야기를 나눴다면, 여성 집단에서는 경제, 여성의제, 정치 등 생산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눠요. 여자로 살아가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더 알게 됐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것도 수월해졌어요. 




Q5

여성 집단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레몬  남자들의 상상 속에서 나왔다고 생각해요.


하이볼  대부분의 편견은 여성 집단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남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여자들끼리 모이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그들을 깎아내리고 싶은데, 여초 집단에 대한 경험은 없으니 남자들이 서로 대립하고 기싸움하는 모습을 ‘여자들도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뒤집어 씌우는 거죠.


자몽  혼성 집단에 들어가면 항상 남자들이 여자들의 서열과 기싸움 구도를 조장하더라고요. 남자들의 인정을 받는 게 익숙한 여자들은 거기에 동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운  그리고 재미없다는 편견은 혼성 집단 속 ‘재미’의 기준이 매우 성애적인 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요. ‘재미없다’는 말은 ‘(이성)연애를 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은 맥락으로 사용되는데, 연애가  집단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재미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Q6

섣불리 여성 집단에

소속되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한마디


운  일단 들어가 보는 것을 추천해요. 경험하기 전까지는 모릅니다. 여성 집단을 둘러싼 수많은 소문의 출처가 어디인지 다들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바라요. 가까이 있는 여자들과 어울리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저는 교류가 적었던 대학 동기들과 다시 가까워지고 싶어서 최근에 연락도 다시 주고받고, 어제 본 웹툰 이야기도 꺼내보고, 같은 책을 골라 읽기도 하고 있어요. 이렇게 주위에 있는 여자들과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너무 즐거워요.


자몽  무엇보다 직접 여성 집단을 찾아가 보면 좋겠어요. 여성 집단에서는 혼성 집단에 퍼져있는 성적 대상화와 남성들로부터 가해지는 직간접적인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요. 만일 들어간 집단이 별로면 그냥 나오면 되는 거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한 번 들어가 보세요. 위험은 적고 얻을 수 있는 건 아주 많을지도 몰라요.


레몬  여성 집단도 평범한 인간 사는 곳이에요. 대신 남자가 있는 곳에서 신경 써야 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다 나다워질 수 있죠. 다 같이 자유롭고 편안한 모습으로 교류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또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더 많아져요.


하이볼  물론 여성 집단에서의 마주하게 될 경험들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어요. 그런데 여성 집단이라서 불쾌한 일이 생기는 건지, 아니면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서 그런 건지 한 번쯤은 생각해보셨으면 해요. 근거 없는 이야기 때문에 여자들과 어울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에디터 | 하이볼

디자인 | 자몽

이전 12화 야, 너도 레즈비언 할 수 있어!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