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본인이 ‘응애’하고 태어난 순간부터 성소수자였다고 주장한다. 본인은 처음부터 레즈비언으로 태어났으며 성 지향성은 바뀔 수 없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의지로 레즈비언이 되겠다고 ‘선택’하기도 한다. 여기서 레즈비언이 된다는 선언 속에는 ‘이성애’를 거부하고, 여성을 사랑하겠다는 실천적 의지가 담겨있다. 어떤 여성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저 여자랑 노는 게 재밌어서, 남성과의 유대를 끊어내고 싶어서 레즈비언이 된 세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에게 레즈비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자.
여자들과 놀다 보면 레즈비언이 된다 / 칼
20대 초중반을 남성들과 어울려 놀면서 보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대부분 남성들이 가득했고, 늘 남성중심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과정은 철저히 남성의 시선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다른 여성을 타자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017년 무렵, 운 좋게 여성주의를 만난 이후로 남성중심사회의 실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남성이 없는 세상을 찾아 나섰다. 남성과 함께하는 시간에는 직간접적인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했다면, 여성과 함께하는 순간에는 방어태세를 갖출 필요 없이 대등한 관계에서 온전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이전에는 남자랑 노는 게 더 즐거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점점 소중해졌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여자랑 노는 즐거움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남성중심사회으로부터 탈출해 여성들과 어울리면서 마음 깊숙한 곳에서 한 가지 의문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남자를 좋아해본 일이 까마득했음에도, 스스로를 이성애자로 여겼던 확신은 대체 어디서부터 왔는지 추적하고 싶었다. 남성과 함께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스스로 이성애자라고 규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성애라는 견고한 틀은 여성이 다른 여성과 가까워질 수 없게 만들었다. 스스로를 이성애자라고 자각하는 한 여성과 맺는 관계는 축소되고 한정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어떤 여성과 가까워져도 “걘 널 우선순위로 두지 않아. 다른 남자에게로 가버릴거야”라고 걱정하면서 그 관계를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방식으로 내 생각을 가둬왔던 것이다. 이성애를 향한 의구심이 짙어질수록 이성애로부터 탈출해야겠다는 결심이 확고해졌다.
강요된 이성애로부터 벗어난다면 여성들과 친해지면서 느꼈던 불안이나 망설임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한참의 고민 끝에 나는 레즈비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레즈비언이 된다는 것은 사랑도, 우정도 여성과 나누겠다는 선언임과 동시에 이성애 제도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레즈비언이 된다는 것은 두려움 없이 여성과 더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이자 더 많은 시간과 애정을 여자들과 공유함으로써 내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결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