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왜인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조선통신사 사건사고 1-13

by 구경래

13. 왜인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조선 영조 때인 1763년, 조선은 조엄(1719~1777)을 정사로 하는 통신사절단 472명을 일본에 파견했어.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하루(1760~1786)가 쇼군이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야. 조엄은 고구마 종자를 쓰시마로부터 가져와 퍼뜨린 것으로 이름난 조선의 선비이자 관리야. 당시 통신사는 1763년 8월 3일부터 1764년 7월 8일까지 약 11개월에 걸쳐 일본을 오갔지. 일본 쇼군에게 국서를 무사히 전달한 통신사 일행은 1764년 3월 1일 일본의 에도를 떠났어.


에도를 떠난 지 약 한 달쯤 지난 4월 5일에는 오사카에 도착했고. 그런데 오사카에 머물던 4월 7일 새벽이야. 갑자기 도훈도 최천종(?~1764)이 왜인의 손에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했어. 도훈도란 통신사 길에 나선 사신 일행의 움직임을 관장하고, 정사를 비롯한 통신사 삼사를 수행하면서 사행 길을 열고 지휘하는 역할을 하는 무관이야. 그런 사람이 일본인의 칼에 찔려 죽는 사건이 벌어졌거든. 이 일은 자칫하면 외교 마찰로 이어질 만큼 아주 큰 문제였어. 왜냐하면, 예나 지금이나 외교관은 면책특권을 비롯해 각종 치외법권을 누리잖아. 그런 외교관이 죽었으니 어떻게 되겠니? 문제가 심각해질 게 빤하잖아. 그래서 조선과 일본 모두 서둘러 문제를 해결해야 상호 갈등을 피할 수 있었지.


그렇다면 최천종이 죽임을 당한 그 일은 도대체 어떤 일이었을까? 왜 그는 일본인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을까? 당시 통신사 정사로 떠난 조엄이 쓴 『해사일기』를 보면 그 배경을 그나마 엿볼 수 있어.


“정사 어른! 날마다 이렇게 먼 길을 떠나니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게다가 찾아오는 일본 손님을 맞이하여 시와 글, 그림과 이야기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시달리니 죽을 맛입니다!”

“내, 그 수고를 모르는 바 아니오! 다만, 임금님의 명을 받들어 우리가 오랑캐 나라를 가르치러 오지 않았소? 그러니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참도록 합시다! 힘내시오!”


날마다 밀려오는 일본인 방문객으로 말미암아 통신사 일행은 삼사는 물론이요, 하급관리까지도 죽을 맛이었지. 생각해 봐. 교통도 불편한 그 옛날에 하루 내내 걷거나 말을 타고 이동했다면 얼마나 피곤하겠어? 그러면 푹 쉬어야 하잖아?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지. 일본인의 처지에서는 어쩌면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행사니 어쨌거나 통신사 일행을 만나려 했어. 그러니 통신사 일행은 날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푹 쉬기는커녕 다시 일정이 진행되는 거야. 이미 통신사를 기다려 줄 서 있는 일본인을 차례로 만나야 했고, 그들이 원하는 글을 써주거나,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어. 이야기가 좀 통한다 싶으면 학문을 논하고, 토론까지 했으니 밤새기가 일쑤였지. 그러므로 통신사 삼사는 삼사대로, 그 이하 문관, 무관은 그들대로, 심지어 춤을 추는 무동까지도 전부 동원됐을 정도야. 따라서 통신사 일행의 피곤함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지.


도훈도 최천종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여서 4월 6일 밤, 잠자리에 눕자마자 곧 곤히 잠들었어. 그러다 가슴이 답답해져 눈을 떠보니 아 글쎄, 어떤 일본 사람이 배 위에 올라타서는 칼로 목을 노리지 않겠어?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으아악!”


고요한 밤, 적막을 깨는 소리가 요란하니 사람들이 이내 잠에서 깨어났지.


“아닌 밤중에 어인 비명이? 방금 최천종의 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지 않았소?”

“그러게요. 살려달라고 한 듯싶은데…….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빨리 가봅시다. 어, 저기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최천종의 방에서 나오고 있소!”

“어랍쇼! 네 이놈! 게 서거라! 거기 당장 멈추지 못할까?”


최천종의 비명에 깜짝 놀라 잠든 사람들이 깨어나 달려갔을 땐 범인은 이미 달아나버렸고, 최천종은 온통 피범벅이 된 채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어. 최천종은 얼마 동안 긴급치료를 받지만, 곧 숨을 거두고 말아. 최천종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통신사 일행은 엄청난 충격과 놀라움에 빠졌어. 첫째, 오랑캐인 일본 사람의 손에 죽었다는 울분과 비통함, 둘째, 임무를 마치고 그리운 조선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런 일을 당했다는 안타까움이 그것이지. 그러니 분위기가 어땠을까? 찬물을 끼얹은 듯 통신사 일행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어.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서둘러 범인을 찾아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그런 짓을 하면 어떤 앙갚음을 받는지 본때를 보여야 했어!


그러면 당시 통신사절단은 최천종 사망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어떻게 했을까?


“정사 영감! 대체 최천종이 누구의 칼에 맞아 죽었단 말씀입니까?”

“음,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일본 사람의 짓이 분명하다 하오!”

“뭐라고요? 정사 영감,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면 좋겠습니까?”

“이 사건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니 일본 쪽에 조사를 철저히 하라고 다그쳐야 할 것이오. 그리고 범인을 하루빨리 잡아 들여 처벌하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외다!”


정사 조엄의 지휘 아래 삼사는 즉시 일본에 이 사건을 알렸어. 상상관 최학령(?~?), 이명윤(?~?), 현태익(?~?)이 각자 이름을 적어서 보냈어. 오늘날로 치면 공문을 정식 발송한 거야.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아.


「조선 통신사 일행 중 무관인 도훈도 최천종이 살해되었다. 최천종은 일본인으로부터 죽임을 당할만한 원한을 산 적이 없다. 우리가 현장을 살펴보니 ‘어영’이라고 적힌 일본제 창날이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조선 통신사로부터 이 서류를 받은 일본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다이묘님!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통신사와 관련된 일은 우리 쓰시마가 맡게 돼 있으니 먼저 오사카 관청에다 알리시오!”


하지만 오사카 관청에서는 조선 사절에 관한 모든 일은 쓰시마가 맡아서 하게 돼 있으니 쓰시마에서 일차로 조사하고,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문의하라고 했어. 그래서 쓰시마 다이묘는 최천종이 죽은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급히 조사관을 임명했지. 사쿠라키 헤이지(?~?)와 오이시 덴주로(?~?)가 그들인데, 이 사건을 속히 명쾌하게 처리하도록 했어. 조사관 두 사람은 최천종 살해 사건에 관하여 조사를 시작했고, 결과도 나왔지.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


“사쿠라키 헤이지! 그래, 사건을 조사해 보니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

“다이묘님! 죽은 최천종의 몸을 살펴보니 목 말고는 상처가 없으며, 상처도 3cm 정도로 깊지 않습니다. 또, 상처가 왼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으로 봐서 자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아무렴! 설마 우리 일본 사람이 조선인 최천종을 죽일 까닭이 없지. 오이시 덴주로! 너도 헤이지와 똑같은 생각이냐?”

“아닙니다, 다이묘님! 말씀드리기 송구스러우나 죽은 최천종 옆에 ‘魚永(어영)’이란 글이 새겨져 있는 일본제 창날 끝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살이 아니라 일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 게 틀림없습니다!”


현장을 조사한 조사관 두 명의 의견이 다르니 일본인 사이에는 이 사건을 두고 자살이다, 타살이다는 의견이 맞섰어. 그 바람에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듯했지.


한편, 쓰시마에서는 조사관의 조사와 더불어 통신사 일행을 맞이하여 통역 일을 맡은 통역관을 모두 한자리에 모이라고 했거든. 그런데 ‘스즈키 덴조(?~1764)’란 통역관만 나타나지 않은 거야. 그래서 어쩌면 통역관인 스즈키 덴조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돌게 돼. 실제로 스즈키 덴조는 사건이 일어난 뒤로 통 보이지 않았어.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둘씩 스즈키 덴조가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라고 생각하게 돼. 며칠 뒤 사라진 스즈키 덴조로부터 편지가 한 통 왔어. 그 내용은 이래.


「지난 6일 밤 니시혼간지 부엌에서 조선 관리 한 사람과 말다툼을 했습니다. 그때 일본을 욕하는 말이 있어 제가 ‘조선 사람은 숙소에 있는 장식품을 아무 말 없이 가져가는데 이게 무슨 짓이요?’ 하자 그 관리가 화를 내며 저를 몽둥이로 마구 때렸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그 조선 사람의 방에 몰래 들어가 찔러 죽인 겁니다.」

이제 스즈키 덴조가 최천종을 죽인 범인이라는 게 밝혀졌어. 하지만 스즈키 덴조는 이미 오사카를 빠져나간 뒤였지. 그래 일본 쪽에서는 범인이 스즈키 덴조라는 사실을 통신사에게 알리고, 범인을 찾기 위해 힘쓰겠다 했어. 그 결과 4월 18일 셋츠 고하마무라에서 오사카 관청의 관리인 야다 고로자에몬(?~?)의 부하가 스즈키 덴조를 붙잡게 돼.


이어, 다음날인 19일에는 에도에서 검사 마가리부치 가츠지로(?~?)가 직접 와서 조사를 철저히 할 것을 지시했어. 그러니 이 대목을 보면 도쿠가와 바쿠후가 이 사건의 신속한 처리에 얼마나 애썼는지 잘 알 수 있지. 어지간하면 쓰시마에 맡길 텐데 오죽하면 에도 바쿠후가 직접 조사를 책임지고 지휘할 관리까지 파견했을까? 그렇다면 마가리부치 가츠지로는 일본 바쿠후로부터 어떤 명령을 받아왔을까?


「조선 사람이 죽은 사건을 조사할 때 쓰시마 번과 기시와다 번의 다이묘에게도 따로 그 상황을 듣고 진술서를 받아둘 것, 조사할 때는 장로를 오게 해 함께 그 상황을 알아볼 것, 조선에서 쓰시마 번의 조사를 믿지 않는다고 들었으므로 쓰시마 번 다이묘를 철저히 조사하여 한 점 의혹도 없도록 할 것!」


참고로 기시와다 번은 최천종이 죽을 때 통신사 접대를 맡은 번을 말해. 그렇다면 일본 바쿠후는 왜 그토록 최천종 살해사건의 조기 해결에 목을 매달았을까?


“이런 사건은 자칫 잘못하다간 외교 문제로 번질 수 있소! 그렇게 되면 문제가 점점 꼬이게 돼 조선과 일본 사이의 평화가 깨질 수도 있지 않겠소? 그리고 이 사건에 얽힌 사람이 죄다 쓰시마 사람이라는 게 밝혀졌으니 더는 머뭇거릴 필요도 없소!”


스즈키 덴조로부터 모든 자백을 받은 일본에서는 그 내용을 통신사에게 밝혔어. 어떤 내용인지 사건이 일어난 그 날로 되돌아가 살펴볼게.


때는 4월 6일 낮이야. 나가하마 하역장에서 조선의 한 관리가 거울을 도둑맞는 일이 생겼어. 바로 그 때문에 최천종과 스즈키 덴조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진 거지. 스즈키 덴조가 ‘너희 조선 사람도 우리 일본의 방과 집에 있는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지 않느냐?’고 따지면서 말다툼은 차츰 심해져. 그래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최천종이 스즈키 덴조에게 몽둥이찜질을 해댄 거야. 결국, 그때 당한 일을 두고 부끄러움과 분함을 삭히지 못한 스즈키 덴조가 밤에 몰래 최천종이 자는 방으로 들어가 최천종을 죽인 거지.


그럼 그 뒤 스즈키 덴조는 어떻게 되었을까? 스즈키 덴조는 붙잡힌 뒤 니시혼간지 경내에서 고문을 받고서야 비로소 자기가 최천종을 죽였다고 말해. 그래 몇 가지 심문을 받고는 곧장 옥에 갇히게 되지. 일본 쪽은 일본법에 따라 4월 29일 스즈키 덴조를 즈키마사지마란 곳에서 처형한다고 했어. 그런데 스즈키 덴조가 죽는 모습을 꼭 봐야겠다는 조선 쪽 요구로 스즈키 덴조의 처형 날짜를 5월 2일로 미루게 돼. 결국, 스즈키 덴조는 조선 사절 오십사 명이 보는 앞에서 목이 잘렸어.


“스즈키 덴조의 목을 쳤으니 이제야 최천종의 억울함이 풀렸소!”

“그렇습니다! 이제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는 길을 서둘러야 합니다!”


일본도 범인을 재빨리 잡아 죽임으로써 두 나라 사이에 외교 마찰이 생기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게 되었지. 그러나 이 사건은 백성의 눈길이 확 쏠릴 만큼 일본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았어. 그래서일까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일본 사회 곳곳에 남아서 영향을 미치고 있대. 그 좋은 보기가 바로 「도진고로시」야. 도진고로시는 최천종이 죽은 사건을 문학이나 예술로 꾸민 것을 말해. 그래서 가부키나 문학 작품에 종종 나타나지. 아, 가부키는 일본 에도 시대에 교토, 오사카, 에도 같은 도시에서 탄생한 일본의 전통 연극을 말하는 거야.


생각거리)


오늘날에도 상대국에서의 자국민 안전은 중요한 일이에요. 요즘도 다른 나라에서 자기 나라 사람이 피살당하거나, 다치거나, 돈을 털리는 사건이 종종 벌어지잖아요. 그럴 때면 십중팔구 피해를 본 외국인이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피해자인데도 그 나라 언어가 통하지 않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되레 가해자로 둔갑한다거나, 현지 문화나 관습을 잘 몰라서 무심코 한 언행이 현행범으로 체포당하거나, 현지 외교관으로부터 급히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하는 일이 그것이죠. 그래서 해외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어느 정도로 신속히 그런 문제를 처리해주느냐가 중요한 외교 역량으로 평가받는 거예요. 따라서 모든 나라의 외교부는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자국민에게 현지의 문화와 관습, 주요한 질병이나 자연재해 등에 관하여 안내를 해주기도 하고, 다른 나라와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기도 하지요.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외에서 현지인에게 목숨을 잃거나 신체적·물질적·정신적 피해를 보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그렇다면 해외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만약,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현지인으로부터 공격을 받았거나, 체포를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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