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담배를 즐긴 조선인, 인삼에 빠진 일본인

조선통신사 문화교류 2-2

by 구경래

2. 담배를 즐긴 조선인, 인삼에 빠진 일본인


담배는 백해무익 즉, 사람 몸에 매우 해롭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알려졌어. 사회적으로도 시선이 썩 곱지 않아서 요즘은 담배를 피우던 사람조차 담배를 끊으려고 애쓰고 있지. 금연교실이며, 금연구역이 정해졌는가 하면, 금연에 따른 금단현상을 이기기 위한 여러 가지 강의며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어.


반면, 인삼은 만병통치 즉, 사람 몸에 아주 이롭고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어. 사회적으로도 가치를 높게 받아서 요즘은 어른들에게 선물하거나, 몸을 튼튼하게 가꾸고 싶을 때 종종 즐겨 먹곤 해. 아는 분들 가운데 어떤 병에 걸려 회복 중이거나, 허약한 사람에게도 왕왕 장려하곤 하지.


그렇다면 통신사가 조선과 일본을 오가던 시대에도 담배나 인삼이 있었을까?


고맙게도 비슷한 시기에 조선인이 담배를 즐겨 피웠다는 기록이 외국인이 남긴 보고서에 남아있어. 오늘날 『하멜표류기』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인 ‘핸드릭 하멜(Hendrik Hame, 1630~1692)’이 쓴 보고서가 그거야. 여기서 잠깐 하멜에 대해서 좀 알아볼게.


하멜은 1653년 네덜란드어로 ‘새매’란 뜻의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다가 제주도 인근 해역에서 폭풍을 만나 제주도 해안에 표류하게 돼. 조선을 벗어나려고 시도했으나 무산되고, 당시 조선의 임금님인 효종(1619~1659)의 명에 따라 하멜 일행은 죄다 한양으로 보내져. 마침 조선에는 하멜과 비슷한 경로로 조선에 표류해 훈련도감에서 일하면서 조선인으로 귀화한 박연(1595~?)이란 네덜란드인이 있었어. 네덜란드 이름은 ‘얀 반스 벨테브레’라 해. 최초로 우리나라로 귀화한 유럽인이야. 이 박연의 도움으로 하멜 일행은 다행히 조선 체류를 허락받을 수 있었지. 조선 조정으로선 당시 북쪽 오랑캐인 청나라에 맞서 싸우려면 뛰어난 무기가 필요했는데, 하멜 일행도 박연처럼 대포나 무기를 잘 다룰 것으로 생각했거든. 그렇게 한양에 머물던 중 하멜 일행은 청나라 사신에게 호소해 탈출하려던 계획을 세웠으나 실패하고 말아. 그래서 그 뒤로 더 삼엄한 감시를 받다가 효종 사후 현종(1641~1674) 때 닥친 식량난으로 인해 하멜 일행은 다시 남원, 순천, 좌수영 세 곳으로 흩어져서 일곱 해를 더 억류당하게 돼. 그러다가 1666년 하멜을 포함해 총 여덟 명이 어선으로 조선을 탈출해 일본 나가사키의 데지마란 상관에 도착할 수 있었어. 거기서 일본 관리의 심문을 받을 동안 1년쯤 머무른 뒤 마침내 1668년, 그리운 네덜란드로 귀국하게 돼.


『하멜표류기』는 네덜란드에 도착한 직후 하멜이 작성한 보고서였어. 하멜은 본래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이었거든. 그래서 귀국 후 조선과 일본에서 지낸 14년 동안 받지 못한 임금을 달라고 요구했는데, 증거가 없잖아. 그러니 스스로 항해 시작 후 표류한 이야기부터 탈출한 이야기까지 지난 14년 동안 있었던 일을 기록해 보고서로 제출한 거지. 그걸 인정받아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어. 그때 보고서의 공식 명칭은 「1653년 바타비아발 일본 나가사키행 스페르베르호의 불행한 항해일지」였지. 『하멜표류기』는 이 보고서의 부록에 있는 「조선국기」를 합쳐 일컫는 말이야.


하멜은 당시 대다수가 문맹이었던 다른 선원과 달리 글을 알았어. 따라서 조선에 머물 동안 체험한 사건이며 언어나 풍습 등을 자세히 기록할 수 있었던 거야. 그때도 글을 아는 선원은 항해일지를 작성하는 것이 기본 임무였으니 그럴만해. 그 덕분에 유럽에서는 조선을 알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나온 거지. 조선의 정치나 외교, 교육과 종교, 문화와 사회 모습, 언어 등을 내보인 자료로는 사실상 최초라 할 수 있어. 그래서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조선과 무역을 하고 싶었으나 일본의 반대로 포기하게 돼. 하여튼, 그 하멜이란 외국인 덕분에 우리가 당시 조선인의 삶을 엿볼 수 있으니 역사는 참으로 요지경이지?


그럼 다시 조선 통신사가 오간 시대로 돌아가 볼게. 하멜표류기에 따르면 조선의 담배 문화에 대하여 다음처럼 나와 있어.


“50~60년 전에 그들은 담배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때 일본 사람이 조선 사람에게 담배 재배술과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일보인들은 그 담배씨를 남반국에서 가져왔다고 말했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남반코라 부른다. 이 나라에서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 여자들은 물론 네댓 살 되는 아이들도 담배를 피운다.”

무척 놀랐지? 남녀는 물론이고, 어린이까지 담배를 즐겼다는 거잖아. 물론, 어느 정도까지가 사실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외국인인 하멜의 눈에 비친 조선인의 모습에 따르면 조선인이 담배를 즐겨 피우긴 했나 봐. 그래서일까 일본에서는 통신사를 맞이할 때 조선 사람이 담배를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대. 따라서 사신을 대접할 때면 늘 담배를 준비했다는 거야.


일본에서 통신사에게 담배를 선물로 내놓기 시작한 것은 대략 1682년 사행 때부터야. 1711년 사행 때도 히로시마의 카마가리에서 사신을 접대할 때 담배가 들어있는 것으로 봐서 담배는 확실히 귀중한 선물이었던 걸로 짐작할 수 있어.


그렇다면 일본에는 언제부터 담배가 전해졌을까?


일본에는 임진왜란 전후로 유럽 사람이 담배 씨앗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그게 일본 곳곳으로 널리 퍼져나갔다고 해. 그로부터 약 백여 년이 흐른 1682년 사행 때는 일본 담배의 질이 날로 좋아져 아주 괜찮은 담배가 많이 나왔나 봐. 쓰시마에서 사신에게 담뱃대 4개와 담배를 세 상자 보낸 것을 시작으로 가는 곳마다 담배를 주었다고 해. 그러니 통신사로 나선 사신들이 어지간히도 담배를 좋아했나 봐, 그치?


그럼 조선에는 언제, 어떻게 해서 담배가 들어오게 되었을까?


담배의 유입경로에 대해선 이런저런 말이 많아. 어떤 사람은 담배가 처음에 남초라 했는데, 그 뜻을 보면 남쪽에서 온 풀이란 것을 알 수 있어. 어떤 사람은 왜초 곧, 왜국에서 온 풀이란 뜻도 있으니 아무래도 담배는 일본에서 왔다고 보는 게 옳다고 주장하지. 반면, 어떤 사람은 담배를 일러 서초 또는 양초 즉, 서양에서 온 풀이니 일본에서 왔다는 말은 당치도 않다고 해. 또, 호초와 당초란 이름도 있는데, 그 말은 곧 ‘오랑캐에서 온 풀, 중국에서 온 풀’이란 뜻이므로 역시 일본에서 왔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하지. 그러므로 이름만으로는 담배가 어느 나라로부터 조선에 전해졌는지 정확히 알기가 어려워. 다만, 지금까지는 일본에서 전해졌다는 게 주류적인 입장이야.


하여튼 통신사로 떠난 사신이 담배를 좋아했던 것과는 달리 일본 사람은 조선에서 가져온 인삼을 보고 어쩔 줄을 몰랐다는 거야.


“고려 인삼은 청나라는 물론이요, 우리 일본에서도 아주 귀한 신비의 약입니다! 쇼군을 비롯해 일본 곳곳의 힘세고 잘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인삼을 사고팔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입니다!”


쓰시마가 절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그러다 보니 일본 전역의 상인이 인삼 매매에 혈안이 되었대. 조선에서 온 인삼을 사고팔려는 게 얼마나 심했던지 마침내 이를 보다 못한 일본 바쿠후가 직접 나서게 되었다는 거야.


“인삼을 사고팔려는 사람끼리 심지어 다투기까지 한다니 뭔가 대책이 필요합니다. 인삼은 귀한 약재니 꼭 필요한 사람만 살 수 있도록 바쿠후에서 증명서를 만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러면 인삼으로 한 몫 보겠다며 달려드는 일이 크게 줄어들 겁니다!”


이런 조치를 해도 수그러들지 않던 인삼 매매가 한풀 꺾인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그건 도쿠가와 요시무네(1716~1745) 쇼군이 인삼을 일본에서 심고, 기르기 시작한 1723년부터야. 하지만 1748년에도 조선 인삼의 인기는 식지 않아 서로 앞다투어 조선 인삼을 구하겠다고 안달이었지. 왜냐고? 암만 제도와 법을 엄하게 해본 들 우리나라 인삼만큼 좋은 인삼을 구할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지!


그렇다면 조선에서는 언제나 인삼이 넘쳐났을까?


“아무래도 인삼이 딸려 이번 1748년 사행은 어려움이 많겠습니다! 요즘처럼 청나라와 일본이 인삼을 좋아해 인삼을 싹 가져가 버리면 이제 인삼은 씨앗도 찾기 어렵습니다. 당장 통신사가 일본으로 가져가야 할 인삼만 해도 모두 260근이나 되는데, 창고에 남아있는 인삼은 죄다 합쳐도 120근밖에 되지 않습니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 건 호조에서 처리할 문제지 않소? 호조에서는 무슨 대책이 없소?”

“지금은 인삼이 모자라니 급한 대로 은을 구해 인삼을 사는 게 바람직할 줄 압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인삼이 많이 나는 평안도 강계에는 지금 흉년이 들어 백성이 먹고살기가 어려워 그곳 백성은 은보다는 곡식을 더 원한다 합니다. 또한, 조정에서 가지고 있는 은도 바닥이 나 모자라는 인삼을 사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요? 그러면 쌀이라도 풀어 인삼을 가진 백성에게 나누어 주고 인삼을 받아와야지요!”

조선에서조차 이렇게 인삼이 귀하니 청나라와 일본이 저마다 손에 넣으려고 눈이 벌겋게 설쳐대는 건 어찌 보면 마땅한 일이야. 그나저나 우리나라 인삼, 예나 지금이나 온 누리에서 으뜸가는 약초임엔 틀림없지?


생각하기)


인삼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특산품으로 그 진가를 맘껏 발휘했어요. 과거나 현재나 특산품은 주로 그 나라 또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품이 중요한 특산품이었지요. 그런 특산품으로는 인삼처럼 농산물도 있고요, 안동 고등어처럼 수산물도 있어요. 혹은 도자기나 칼, 농기구처럼 사람이 손으로 만든 물품도 포함되고요. 자본주의가 발달한 오늘날에도 이런 특산품은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켜 수많은 지역주민에게 혜택을 주기도 해요. 아울러 현대사회에서는 꼭 새로 만드는 물품이 아니라도 아이디어만 잘 쓰면 얼마든지, 누구나 새로운 특산품을 개발할 수도 있어요. 심지어 노래나 춤, 음식과 옷, 디지털 상품처럼 문화, 예술, 과학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도 특산품으로써 한 몫을 톡톡히 해요. 그렇다면 21세기의 사회 환경에 맞는 특산품으로는 어떤 게 있나요? 또, 어떤 것을 개발하면 특산품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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