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문화교류 2-1
1. 말위에서 부리는 재주, 마상재
말위에서 이런저런 재주를 부리며 공연하는 것을 마상재라 해. 이런 마상재는 예로부터 말을 잘 다루는 겨레에게 전해오는 묘기야. 마상재 공연은 서커스처럼 볼거리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기마 겨레로서의 기상을 마음껏 떨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해. 그러니 마상재는 조선의 힘을 넌지시 내비칠 수 있는 공연인 셈이지. 그런 만큼 통신사가 떠날 때 빠질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였어.
그렇다면 조선통신사가 일본에서 마상재를 처음 선보인 때는 언제, 어디서 였을까? 기록에 따르면 1635년 에도의 야요스 강가에서 처음 열렸다고 해. 마상재는 처음부터 통신사에 포함된 것은 아니야. 그러다 일본의 이에미츠 쇼군이 마상재를 보여 달라고 조선에 부탁했거든. 그 뒤로 마상재도 통신사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 거지.
그런데 일본은 왜 하필이면 그때 마상재 공연을 보여 달라고 조선에 요청했을까?
“쓰시마가 앞장서서 국서를 마음대로 뜯어고친 사건은 우리 일본과 조선 두 나라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니 쓰시마가 앞으로 조선과의 외교를 제대로 이끌어갈 능력이 있는지 시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조선은 국서 개작 사건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보이는 지도 함께 알아봄이 좋을 것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조선에 사신을 보내 우리의 요구를 전하도록 쓰시마에게 명을 내리심이 좋을 성싶습니다. 그때 두 가지를 요구하면 됩니다. 첫째, ‘이에미츠 쇼군은 아직 나이가 어려 놀이를 좋아한다. 조선의 기마가 천하제일이라 들었지만 본 적이 없으므로 대단히 아쉽다. 반드시 쇼군의 초청에 응하도록 해 달라.’고 전하는 겁니다. 둘째, ‘일본 사신도 조선의 한양까지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조선의 사정을 살필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으로부터 이런 내용을 전달받은 조선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첫째, 일본 사신이 한양으로 오는 것은 거부했어. 왜냐하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한양으로 온 일본 사신 일행이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길을 죄다 지도로 그렸거든. 그 결과 임진왜란 때 왜군은 한양으로 파죽지세로 쳐들어갈 수 있었던 게지. 그러니 조선에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일본 사신이 한양으로 오지 못하도록 막은 거야.
둘째, 마상재는 떠나보내기로 했어. 왜냐하면, 조선으로서도 국서 개작 사건의 흐름을 똑바로 알고 싶었거든. 그러기 위해선 문화교류를 통해 일본과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었어. 그리고 마상재마저 거부하면 불필요한 외교적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했지. 그래서 마상재 초청에는 응하고, 일본 사신의 한양행은 거부한 거야. 그러니 마상재의 파견은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필요성에 따라 열린 거라 보면 돼.
그럼 마상재가 일본에서 처음 열리던 날 풍경은 어땠을까?
“마상재를 열려면 넓은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어디에서 하는 게 좋겠습니까?”
“야요스 강가라면 충분할 거요. 강가 넓은 터에서 마상재를 열 수 있으니 말을 부리기도 쉽고, 높은 곳에다 관람석을 마련하면 마상재를 보기도 좋을 테니 일석이조란 이럴 때 쓰는 말 아니겠소?”
아무래도 말을 달리며 묘기를 부려야 하니 당연히 넓은 공간이 필요할 테고, 그걸 제대로 구경하려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봐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아냐? 그러니 그렇게 준비한 거지. 일본으로 떠난 통신사가 에도에 무사히 도착했어. 마상재도 잘 도착했고. 일본에서도 마상재를 여는 데 필요한 준비를 다 마쳤어. 이제 남은 일은 마상재 공연을 하는 일이지.
드디어 마상재가 열리는 날이야! 일본의 쇼군 이에미츠는 도쿠가와 가문과 바쿠후의 높은 관리들, 다이묘들과 함께 마상재를 구경했어. 그때 마상재는 여러 가지 묘기를 선보였는데 반응이 아주 대단했나 봐. 왜냐하면, 마상재를 본 다음에 이에미츠가 은화 일천 냥, 철 따라 입는 옷 쉰 벌을 마상재에게 상으로 내렸거든. 일본인에게 마상재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그 뒤로도 마상재는 통신사가 일본으로 갈 때마다 대부분 같이 따라가게 된 거야. 마상재를 끔찍이 좋아했던 일본에서는 1711년 사행 때는 아예 마상재를 위해 새로운 마장인 ‘조센바조’를 두었어. 조센바조를 연 뒤로는 마상재는 늘 그곳에서 열리는 게 관례가 되었지. 대단하지? 조선의 마상재를 보려고 오늘날로 치면 전용구장까지 만든 셈이잖아.
그런데 마상재가 대체 어떤 연기를 선보였기에 일본인들이 그토록 열광했을까?
“마상재 공연을 곧 시작할 모양입니다! 먼저 '마상기립'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마상기립'은 말 그대로 말 위에 올라타 똑바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오호, 달리는 말 위에서 똑바로 일어서기라. 그 정도는 우리 무사들도 할 수 있지 않나?”
“그렇습니다. 좀 더 지켜보시지요. 이번에 부릴 재주는 '주마입마'라 합니다. '주마입마'는 말 위에 올라타 선 채로 말을 달리는 것입니다!”
“음, 잘하긴 하나 뭐, 저 정도는 우리 무사들도 충분히 할 수 있겠는데?”
“그렇긴 합니다만, 아, 저것 좀 보십시오! 이번에는 부채까지 폈다 접었다 합니다. 선 채로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호!”
사실 빠르게 달리는 말 위에서는 말을 제법 오래 다루었다 하더라도 몸의 중심을 가누기가 쉽지 않거든. 하물며 두 손까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면 그건 말이 다르지. 구경꾼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냄은 물론이고, 감탄을 넘어서 두려움까지 느끼도록 해. 왜냐고? 만약, 전투가 벌어졌을 때 말을 탄 기마병이 두 손을 자유로이 쓴다면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아? 맞아! 활이건, 조총이건, 다른 무기건 간에 말을 타고 그 무기를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거잖아. 그 당시에도 적진 깊숙이 잽싸게 말을 몰고 들어가 적의 진영을 무너뜨리는 전술을 기마병들이 펼쳤거든. 그러니 두려움을 느끼는 게 지나친 과장은 아니야.
“이번에는 달리는 말 위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거꾸로 앉았습니다! 어어, 그러더니 아예 달리는 말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했습니다! 대단합니다. 저 자세는 '마상도립'이라는 자세라 합니다.”
“하하하, 거 참 잘한다!”
“이번에 보여줄 연기는 말 아래쪽에 엎드려 말을 끌기입니다. 위도 아니고 아래쪽이라 자칫하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와, 저기 보십시오. 밑에서 말을 끄는가 싶더니 어느새 말 몸통 옆으로 붙기를 합니다! 조선의 기마가 천하제일이라는 소문이 정녕 거짓은 아니었습니다. 어라? 갑자기 말을 부리는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아, 반대쪽입니다. 놀랍게도 말을 부리는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 자세는 적의 화살이 날아올 때 피하는 자세라 하는데, 마상재가 선보이는 가장 어려운 묘기 중의 하나로 '등리장신'이라 일컫는다 합니다.”
“오, 사람이 말에서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하네. 손바닥에서 땀이 다 나는 걸.”
“이제 숨이 차는지 말 위로 다시 올라오고 있습니다! 세상에! 달리는 말 위에서 하늘을 보고 가로누웠습니다! 아, 저 기술은 '횡와마상양사'라는 자세라 합니다!”
“하하하, 재주꾼이 너무 힘든지 잠을 자려나 보네. 그렇더라도 어떻게 달리는 말 등에서 옆으로 누울 수 있지?”
“그러게 말입니다. 누운 자리가 불편한지 이번에는 말 위에서 똑바로 누웠습니다. 아예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아, 저 자세는 '종와침마미'라 일컫는다 합니다.”
“참으로 대단하네.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다시 움직입니다. 어쩜 저리도 잽싸게 말고삐를 쥔 채 뛰어넘기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왼쪽에서 일곱 걸음 걷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훌쩍 넘어와 일곱 걸음 걷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좌우초마' 자세라 합니다!”
“저걸 하려면 적어도 말과 달리는 속도가 같거나 비슷해야 할 텐데. 말이랑 호흡이 척척 맞아야만 할 수 있겠다.”
“그렇습니다. 이어서 말 두 마리를 한꺼번에 다루는 쌍마술 묘기를 선보인다 합니다! 저기를 보십시오. 말을 부리는 사람이 말 두 마리 위에 올라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쌍마도립'이란 자세입니다. 저러다 달리는 두 말이 조금이라도 간격이 벌어지거나, 한 마리라도 제 맘대로 달리게 되면 말을 부리는 사람이 말에서 떨어져 크게 다치게 됩니다.”
“오호, 참으로 대단한 솜씨네!”
어때? 말을 달리는 우리 선조의 날쌘 움직임에서 기마 겨레의 웅장한 힘이 느껴지지 않니?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일본 사람의 얼굴에는 부러움과 놀라움이 가득했어. 그런데 이렇게 훌륭하고 뛰어난 마상재를 아무나 다 볼 수 있었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아! 마상재를 보려면 쇼군의 식구이거나 바쿠후의 높은 자리에 있는 관리, 큰 다이묘라야 볼 수 있다고 앞서 말했잖아. 쉽게 말하면 쇼군과 쇼군을 곁에서 떠받드는 사람만 볼 수 있는 거지. 그러니 지위가 낮은 무사나 평민은 마상재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거야.
그럼 평민이나 낮은 무사는 평생 마상재를 볼 기회가 없었을까?
“쓰시마 다이묘님! 쇼군에게 보여주는 마상재 공연 전날에 쓰시마 다이묘의 숙소에서 먼저 몸을 푼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우리 식구도 마상재 구경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좀 만들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조선의 마상재는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구경거리인데 그게 어디 맨입에 되겠소?”
“지당하신 말씀! 당연히 섭섭하지 않게 자릿세를 듬뿍 낼 테니 꼭 좀 마련해 주십시오!”
상술이 뛰어난 쓰시마가 어찌 조선의 마상재를 그냥 넘길 수 있을까? 쓰시마에서는 조선의 마상재를 보여주는 조건으로 한 밑천 짭짤한 돈벌이를 했을 건 물어보나 마나지? 아무튼 이 마상재로 인해 통신사 일행은 툭하면 쓰시마와 크고 작은 말다툼을 벌이게 돼.
“정사 나으리! 여기 쓰시마에서 마상재 공연을 미리 좀 보여주실 수 없겠습니까?”
“어허, 그게 무슨 불경한 소리요? 본디 마상재는 쇼군의 요청으로 통신사에 낀 것인데, 어찌 쇼군이 보기도 전에 쓰시마 영주가 감히 먼저 보여 달라니요? 일본에는 위아래도 없소?”
통신사로 떠난 사신은 쓰시마의 버르장머리 없는 짓거리도 꼴불견이고,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쓰시마의 꼴도 못마땅했으므로 쓰시마 영주의 그런 요구를 받아들일 리 없지. 그래서 사신은 쓰시마가 요구할 때마다 칼로 무 자르듯 단칼에 물리쳤어.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사정도 많이 바뀌게 돼.
“우리 쓰시마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1682년 사행 전까지는 조선과의 무역이 섬의 생명줄과 마찬가지라 조선에 목을 매었지만 이제부터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뜬금없이 무슨 말씀을 하려는지 모르겠군요?”
“다 아시면서 왜 이러십니까? 조선이 청나라와 무역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야 두말할 나위 없이 은 아니겠소?”
“그렇지요, 은이지요! 그런데 조선이 필요한 그 은을 누가 다 대줬습니까? 바로 우리가 대줬지 않습니까? 우리가 일본 곳곳에서 힘들게 은을 끌어 모아 조선에 대주고, 조선은 이를 다시 청나라와의 무역에 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찌 저희에게 이러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어허, 왜 그러시오? 화를 푸시오. 그러면 내 이번에는 쓰시마 영주에게 먼저 마상재를 보여 주리다!”
쓰시마의 역할과 지위가 많이 올라가자 1682년 통신사 사행 때는 마상재를 쓰시마 영주에게 먼저 보여주며 한껏 선심을 썼어. 심지어 마상재에 쓰는 말까지 세 필이나 줄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쓰시마가 작고 보잘것없는 섬이라 해도 조선의 관점에서 볼 때 조선과 일본 사이를 평화롭게 지내게 해 준 공을 언제까지나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던 거야.
생각거리)
외교 관계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허투루 다루면 곤란해요. 암만 작고 보잘것없더라도 때로는 그런 것 또한 외교 갈등을 해소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걸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마상재라 하겠어요. 얼핏 보면 단순한 문화예술행사를 교류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숨은 이유가 다 있었잖아요. 그러니 국제 관계에 있어서는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지요. 이런 관계는 개인 사이도 마찬가지예요. 자기가 가진 재능을 미처 알지 못하다가 어느 날 우연히 찾아낸 재능으로 인해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을 간혹 만나기도 하잖아요. 이처럼 보잘것없다고 치부한 것, 하찮다고 생각한 것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오는 사례는 무지 많아요. 공기와 물은 그 대표적인 보기라 하겠죠? 그렇다면 내 자신이나 주변 친구에게서 하찮지만 대단한 것을 가졌다고 느낀 적은 없나요? 우리 사회를 바꾸는 힘도 그처럼 작은 것에서 비롯될 수 있으니 한번 잘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