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조선통신사가 일본에서 맛본 음식은?

조선통신사 문화교류 2-5

by 구경래


5. 통신사가 일본에서 맛본 음식은?


통신사로 떠난 사절단에게 먹는 문제는 참으로 소중했어. 왜냐하면, 정든 고향을 떠나 머나먼 길을 오가야 하니 힘도 부치고, 피로도 무지 쌓일 거 아냐? 요즘처럼 해외로 놀러 가듯 가벼운 걸음걸이도 아니고, 국서전달과 외교 현안을 풀어야 하는 외교사절단으로선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해. 따라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기 일쑤야. 그런 사절단을 그나마 달래준 것은 일본으로 오가는 길 곳곳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와 일본 사람이 정성을 다해 바친 요리였다고 해.


일본의 처지로 보면 통신사는 멀리 조선에서 오는 귀한 사신이니 먹을 것 하나라도 소홀히 다룰 수 없지. 그러니 에도를 오가는 사신에게 올리는 먹을거리는 일본 평민은 평생토록 살아도 맛볼 수 없는 귀한 재료로 만들어졌어. 에도로 갈 때는 자기 지방에서 가장 맛난 먹을거리를 한 상 푸짐하게 바쳤고, 에도에서 돌아올 때는 입맛에 따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도록 음식 재료를 넉넉하게 내놓았대. 때로는 먹는 데 드는 값을 치르라며 은까지 내놓기도 했고.


그렇다면 통신사로 떠난 사신은 일본에서 어떤 먹을거리를 맛보았을까? 일본에는 어떤 요리가 유행하며, 그 요리에 대한 사신의 입맛은 어땠을까? 지금부터 통신사가 맛본 일본 음식을 추적해볼게.


먼저, 1811년 통신사가 일본 쓰시마로 갔을 때야. 이때가 통신사가 일본으로 간 마지막이야. 그때 일본에서는 나라 재정이 어려워지는 데다 여러 가지 내외적으로 골치 아픈 일이 많이 생겼어. 그래서 통신사를 맞이할 때도 에도까지 오지 말고 쓰시마에서 맞이하기로 했지. 당시 통신사 맞이 행사가 거행된 쓰시마로 찾아가 볼게.

“먼저 ‘칠오삼(7․5․3)미상’을 올리고, 술상을 올렸다. 다 같이 조금 먹고 마신 뒤에 상을 내고는 또 과일과 차를 올리니 이를 마치고 서로 두 번 절하였다. 여러 관원은 바깥에 앉아서 모두 상을 받았는데, 군관과 상상관에게까지 또한 칠오삼미상을 차렸다. 두 사신은 에도에서 온 쇼군의 사신에게 고맙다고 한 뒤 두 번 절하고 나와서 숙소로 돌아왔다.”


이 글은 1811년 사행에 나선 유상필(1782~?)이 기록한 『동사록』에 실린 대목이야. 여기서 칠오삼미상은 오늘날 히로시마 시모카마카리의 ‘조선통신사자료관’에 가면 볼 수 있어. 조선통신사자료관에 잘 전시돼 있으니 직접 가서 보면 그 화려한 상차림에 감탄할 거야. 이처럼 통신사에게 쇼군이 참여하는 행사의 의례 상차림처럼 화려하게 차린 상을 받았다는 것은, 일본 바쿠후가 1811년 사행 때 경비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여전히 통신사 접대에 정성을 쏟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어. 그때 잔치에 쓰인 재료로는 주로 해산물이 많았다 해. 아무래도 쓰시마가 섬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을 거야.


쓰시마와 달리 일본 에도로 떠난 통신사 일행은 어떤 음식을 일본에서 맛보았을까? 히로시마가 대접이 융숭했다 하니 히로시마로 가볼게.


통신사 일행이 히로시마에서 받은 상차림 가운데는 칠오삼(7․5․3)미상, 오오삼(5․5․3)미상이 있어. 이들 상차림은 혼례 때나 특별한 행사 때 나오는 상차림으로 일본에서 단연 으뜸가는 상차림이지. 눈으로 봐도 화려하고,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지. 대개 이런 상차림의 경우 의식 때 쓰는 상차림이라 통신사는 이런 상차림이 나오면 진짜로 먹는 것이 아니라 젓가락으로 먹는 시늉만 하는 거래. 실제로는 그것 말고 대신 그만큼 푸짐한 상차림을 따로 받는 거야.


그렇다면 통신사 일행이 먹는 진짜 먹을거리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이왕 히로시마로 떠났으니 히로시마의 사례를 볼게. 통신사 사신을 위해서 일본에서는 탕 세 가지, 반찬 열다섯 가지로 이루어진 3탕 15찬의 푸짐한 상차림이 나왔어. 엄청나지? 거의 전주한식 수준이야.


“이 상차림은 아까 의식 때 상차림인 ‘7․5․3 미상’보다 훨씬 더 푸짐해 보입니다. 여기를 좀 보십시오. 육류로는 멧돼지와 돼지고기가 있고, 조류로는 꿩과 닭, 오리가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도미와 농어, 대구와 연어, 광어와 전복, 마른오징어 같은 생선, 콩이나 신선한 채소가 가득 놓여있으니 이 어찌 7․5․3 미상보다 못하다 하겠소이까?”


아무튼 갖가지 재료가 골고루 들어갔으니 영양으로 봐도 썩 괜찮은 상차림이야. 이 상차림은 주로 저녁 때 나온 거래. 그럼 점심때는 어떤 먹을거리가 상을 채웠을까?


“여봐라! 이것은 무엇이라 하는가?”

“그것은 숭어알을 소금에 절인 후 말린 ‘가라스미’이고, 저것은 야채를 소금과 된장, 겨자에 절인 ‘고노모노’입니다. 그 옆의 것은 생선고기에 가랑이포를 섞어 술이나 식초에 담근 요리로 무쳐서 비빈 ‘아에마제’입니다.”

“그렇다면 이 음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도미를 불에 직접 구운 ‘야키모노’이고, 그 뒤의 것은 살색이 흰 생선을 잡아 달걀흰자와 조미료를 섞어 빚은 뒤, 판에 담아 말아서 찌거나 굽는 어묵 요리인 ‘가마보코’입니다. 저쪽에 있는 것은 기러기고기를 주로 하여 네 가지 다른 건더기인 우엉과 절임송이버섯, 무와 밀개떡을 넣은 된장국입니다요!”


어때, 오늘날 입맛에도 정말 맛깔스러운 상차림이지 않아? 이렇게 한 상을 거나하게 잘 대접받은 통신사 일행이 그 지역을 떠날 때면 으레 그 지역의 다이묘는 통신사 일행에게 다시 먹을 것을 내놓기도 해.


“이것은 통신사 삼사와 모든 일행에게 드리는 우리 히로시마의 작은 정성입니다. 사양 말고 받아주시지요!”

“아니, 이게 다 무엇이오?”

“도미 된장구이와 꿩 육포, 담배를 조금 준비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가져갈 수 있도록 넉넉하게 준비했으니 사행 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대단한 환대지? 힘든 사행길에 지쳤을 때 육포를 한 점 뜯어먹으면 얼마나 힘이 솟겠어? 하여튼, 히로시마의 정성 어린 접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 얼마나 통신사 사신에게 멋진 대접을 하려고 했냐 하면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달하게 돼.


“통신사가 식사 때 쓴 그릇은 두 번 다시 쓰면 안 된다! 혹시라도 바람과 물길 사정으로 항구에 배가 들어올 수 없을 때는 준비한 요리를 배까지 잘 가지고 가서 정성껏 갖다 바쳐야 할 것이다! 또한, 맛있는 요리를 위해 통신사가 먹는 음식은 오직 살아있는 재료만 써야 한다! 이를 위해 물고기 어장, 꿩 사육장, 돼지우리까지 따로 만들어 두었으니 통신사가 오면 곧장 잡아서 요리하도록!”


참으로 그 정성이 대단하지? 그릇의 청결함은 물론이고, 신선한 요리재료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지? 이렇듯 푸짐하게 대접을 받은 사신 곁에는 늘 쓰시마 다이묘도 함께 자리했어. 그 쓰시마 다이묘가 통신사 사신이랑 더불어 에도에서 쇼군을 만났을 때 쇼균과 나눈 대화야!


“쓰시마 다이묘! 그래, 어디에서 음식 접대를 가장 잘 하던가?”

“쇼군 전하! 히로시마 아키의 카마카리에서 먹은 음식이 으뜸이었사옵니다!”


이런 쓰시마의 평가는 일본에서 히로시마 번의 체면을 세우는 데 크게 이바지했으며, 히로시마 번 사람의 어깨가 으쓱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지. 그럼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음식을 대접받았을까?


“이 요리는 돼지고기로 만든 것으로 ‘시키세이 료리’라 하옵니다. 후쿠오카의 요리 가운데 단연 으뜸입니다!”

출판사 어문학사에서 펴낸 『일본 여성의 어제와 오늘』이란 책에 따르면 시키세이 요리는 에도시대에 자리 잡은 전통 요리로 결혼식이나 축하연 등을 베풀 때 나온대. 역시 눈으로만 보고, 실제로 먹는 음식은 ‘혼젠’이라 해서 우리나라 정식처럼 다양하게 나오는 거야.


그렇다면 이처럼 화려한 일본 음식을 맛본 통신사 일행의 평가는 어땠을까? 조엄도 『해사일기』에 일본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써 놓았어.


“이키섬에 머물 때 ‘스키야키’를 먹었다. 스키야키는 생선과 나물을 섞어 끓인 것으로 일본 사람은 그 맛이 아주 좋다는 뜻으로 ‘일미’라 했으나 그 맛이 어찌 조선의 ‘열구자탕’에 비하겠는가?”


히로시마의 음식이 으뜸이라고 한 쓰시마 다이묘와 통신사 사신의 입맛이 확실히 다른 대목이야. 또 다른 곳에서는 어땠는지 살펴볼게.


1636년 5월이야. 오카자키란 곳은 쇼군이 보낸 사신이 직접 통신사 마중을 나오는 곳이라 통신사를 모시는데 더더욱 신경 썼나 봐. 먹을거리를 두고 고민하던 오카자키 사람은 통신사로 온 사신이 꿩고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꿩을 요리해 갖다 올렸어. 그런데 그것을 맛본 사신의 평가는 영 아니었지. 사신의 말을 한 번 들어볼래?


“꿩이라고 내놓은 것을 먹는데 맛이 없어서 거의 ‘닭갈비’와 한가지였다.”


오카자키에서는 귀한 손님이 좋아한다고 그 비싼 꿩을 보내왔지만, 하필이면 꿩 맛이 없는 여름철에 꿩 요리를 바쳤으니 그 맛이 좋을 까닭이 없지! 그리고 요즘에는 닭갈비를 좋아하지만, 옛날 우리 선조는 꿩고기를 으뜸으로 쳤으니 그럴 수밖에.


사실, 일본으로 떠난 통신사 일행이 일본 음식을 맛볼 때 반응은 별로였어. 왜 요즘도 다른 나라로 가면 그 나라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한국에서 가져간 햇반이나 라면을 먹는 사람이 있잖아. 그렇듯 옛날 통신사 일행도 일본 음식이 썩 입맛에 맞지는 않았나 봐. 그래도 요즘 일본 음식은 한국 사람 입맛에도 어느 정도 익숙한데 말이야. 그나저나 조선통신사가 맛본 옛날 일본 음식. 정말 그 맛이 궁금하다, 그지?


생각거리)


예로부터 음식은 생존과 더불어 나눔을 뜻해요.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서로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니 가장 아름다운 일 중 하나예요. 통신사는 서로 믿음을 나누고 정을 나누는 사절단이니 일본에서 나눈 음식 문화가 조선과 일본 두 나라 사이를 평화롭게 만드는데 적지 않은 보탬이 됐을 거예요. 무엇보다 요즘은 음식과 요리가 대세인 시대여서 요리와 음식에 철학까지 동원이 될 정도로 연구가 활발하지요. 혹시 여러분은 집에서 직접 요리를 만든 적이 있나요? 요리할 때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그리고 지구에도 건강하고 유익한 요리를 만들어볼까 생각한 적이 있나요? 또, 음식을 둘레 이웃이나 어려운 이웃과 나눠본 경험이 있나요?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사회적 행위라 할 수 있어요. 우리가 만들어 먹는 ‘음식 나눔 운동’을 혹시 펼쳐볼 생각은 없나요? 혹은, 주변의 굶주리는 아이나 소외 이웃을 위해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따뜻한 손길을 건넬 수 있을지 좋은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갖고 있나요?

keyword
이전 17화2-4. 조선통신사가 일본에서 가져온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