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책임지려면 얼마가 필요한가요?
간호사가 물었다.
“인형도 가져오신 거예요?”
새해가 밝았다. 한 해를 보내고, 다가올 한 해를 맞이하는 기대에 찬 인사말들이 가득하다. 연말연초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는 편이라 올해는 해를 넘기지 않고 연말 회고를 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최근 몇 년간의 병원인간 데이터에 의하면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 것도 무병자들에게만 해당된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계획보다는 해낸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내가 병원인간으로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일이니까.
12월의 마지막주, 의사는 다른 치료 방법을 제안했다. 먹는 약으로는 효과가 없는 것 같으니 조금 더 약효가 강한 주사 치료 요법을 해보자고.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10년, 최근 3년 동안은 약을 아무리 먹어도 검사 수치가 나아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는 말로 얼버무리기에는 꽤나 많이 흐른 시간에 조급해지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의사의 제안은 꽤나 반가운 제안이었다.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나아지지 않는 검사 수치를 들여다보며 ‘정상수치에 가까워지기에는 한참 멀지만, 더 나빠지지 않았으니 됐지 뭐.’라고 위안을 삼는 것도 이제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건강보험의 급여 처리가 되지 않아 치료비의 100%를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사 한 대에 200만 원, 2주를 주기로 총 2번 투약하는 것이 한 세트. 총 400만 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표적항암치료의 일환으로 세포를 죽이는 방법인데, 나에게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항암제 부작용은 없을지. 그 무엇 하나 확답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연말이어서 그랬을까. 새해가 다가오니 나도 모르게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서였을까. 아니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걸까. 나도 모르게 ‘방법이 있다면 뭐라도 해봐야죠.’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캘린더에 2023년의 첫 일정 ‘입원’을 등록하며 나는 일정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몇 달 전 피켓팅을 통해 잡아놓은 1월 1일 아이돌 콘서트를 눈물을 머금고 취소하고, 연초의 약속들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슬펐지만 또 슬프지 않았다. 새해니까, 몸도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가득 담아서.
1월 2일부터 2박 3일의 입원이 시작되었다. 5번의 입원 경력을 살려 짐을 싸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수건 두장, 입원복 안에 받쳐 입을 반팔티 두장, 세면도구, 충전기 그리고 나의 걱정인형(애착인형). 병원에서 제공해 주는 것들과 내가 챙겨갈 것들이 명확한 짐 싸기는 백팩 하나로 결론이 났다. 무엇보다 필요한 게 생기면 병원 편의점에는 다 있다는 경험이 있었으니까.
입원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차분하게 기존 병력을 말하고, 추가로 더 신경 써줘야 하는 다른 병력과 먹고 있는 약물들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다. 이런 것까지 말해줘야 하나? 싶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나의 몸에 대한 정보를 의료진에게 인계했다. 역시, 입원 몇 번 해봤다고 또 이게 익숙해지네,라는 뿌듯함이 안정감이 될 때쯤 사건이 터졌다.
비급여 약물 사용 동의서에 적힌 주사비의 금액이 내가 알고 있던 금액의 두 배가 더해져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금액도 큰 결심이 필요한 금액이었는데, 그것의 2배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내가 한 번에 써본 적 없는 돈. 말 그대로 눈이 휘둥그레지는 금액이었다. 이걸 내가 한 번에 쓴다고? 이 금액을?
의사에게 물었다. 금액이 내가 알고 있던 금액과 다르니, 다시 확인을 해달라고. 그래야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의사는 되려 나에게 금액에 대해서 안내를 어떻게 받았냐 물어보았고, 이런 걸 물어보는 환자는 처음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를 꺼낸 이후부터 간호사와 의사가 번갈아가며 병실을 찾았다. 의사의 처방이 떨어져야 금액이 확인이 가능하다는 이야기, 원무과에서 확인을 해줄 사항이지 본인은 정확한 금액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류의 이야기들이었고, 나는 반복해서 말했다.
“얼마인지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이 서류에 사인을 합니까. 입장을 바꿔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10만 원, 20만 원짜리 주사도 아니고 몇 백만 원짜리 주사인 건 아시죠? 하다 못해 동네 의원에서도 비급여 항목은 얼마라고 고지를 하는데 대학병원에서 안 해준다는 게 말이 됩니까.”
억울함과 답답함을 어쩔 줄 모르겠어서 패딩을 걸쳐 입고 병원 산책로로 나왔다. 내가 의료진에게 요구한 것은 법적으로도 명시되어 있는 ‘비급여 진료 사전 설명 제도’인데 몇 시간이 되도록 정확한 정보를 하나도 듣지 못하고, 예민하고 깐깐한 환자 취급을 받고 있는 게 억울했다. 내가 알고 있던 금액은 400만 원. 의사가 내민 서류에 적혀있던 금액은 750만 원. 나는 400만 원도 너무 큰돈이라 생각했는데 그들에게는 그게 큰 금액이 아니었나. 세상 사람들에게 이 돈은 당연히 누구나 통장에 가지고 있는 돈인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몫을 하며 잘 살아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잘 산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다다르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렇게까지 생각의 회로가 급하게 바닥을 향하진 않는데 ‘입원’이라는 상황이 나를 극한으로 몰아넣는 기분이었다.
나를 책임진다는 무게. 400만 원. 병원인간이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돈의 무게였다. 연말 정산을 할 때마다 늘어나는 의료비를 보며 ‘돈은 얼마나 모았냐’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스쳐 지나간다. 다른 사람들은 월에 50씩 넣어 모았을 돈을 나는 그대로 몸을 위해 쓰고 있었다. 채워지지 않는 통장 잔액을 바라보는 일이 병원인간으로 살아가는 삶의 무게였다.
병실에 돌아왔다. 챙겨 온 걱정인형을 꼭 껴안고 눈을 감았다. 내가 지금 누워있는 곳에서 익숙한 것은 이것뿐이었다. 몸에 대한 걱정만 하기도 마음이 바쁜데 현실세계에서 몰려오는 돈, 서류, 효능, 효과의 것들이 다음 순서로 줄줄이 서 있었다. 실은 내가 짊어진 무게는 단순히 금액의 문제는 아니었다. 감기로 병원에 가서 처방받은 6천 원짜리 처방전도, 미끄러져서 찾은 정형외과에서 받은 2만 원짜리 엑스레이도, 6개월에 한 번씩 맞는 20만 원짜리 골다공증 주사도 모두 값은 달랐지만 무게는 같았다. 치료를 받아야만 일상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주는 마음의 무게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이벤트처럼 겪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져야만 하는 일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무게.
치료를 모두 마치고 병원을 나서며 남은 공간 따윈 생각하지 않고 냉큼 집어넣은, 배낭의 절반을 당당하게 차지한 걱정인형을 생각했다. 익숙하지 않은 병원인간의 일상에 마음을 기댈 걱정인형을 챙길 생각을 해서 정말 잘했다고, 병원인간이 겪어야만 하는 외로움을 이번에도 견뎌내서 참 잘했다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병원인간이 되었다고 믿으며.
+
'비급여 사전 설명 제도' 불충분에 대한 일련의 사건에 대해 저는 정식으로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그리고 해당 병원에 문의를 넣을 예정입니다. 병원인간들이 더 편안히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어제보다 조금 더 단련된
병원인간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가끔은 노약자석에 앉고, 아주 가끔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서른두 살.
대학교 입학, 졸업, 취업 그리고 퇴사까지 나의 의지만큼 의사의 소견도 중요한 몸을 가졌지만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사람. 커리어와 함께 병명도 쌓여가는 삶을 살고 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한 사람이라 스스로를 '병원인간'이라 부른다.
늙음은 아픔이 용인되지만 젊음에게는 아픔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에서 병원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천천히, 꾸준히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