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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Jun 19. 2022

파키스탄 금융생활

돈이 최고는 아니지만 돈이 최고다.

 단기간 놀러 온 곳도 아니고, 2년 기한으로 회사에서 파견 나온 파키스탄.

 이곳 지사의 급여는 파키스탄 루피로 지급된다. 여기서 먹고살고, 급여받고 세금 내고 하려면 당연히 현지 은행 계좌가 있어야 한다.

 

[미션 1] 현지 은행 계좌를 개설하자.

 뭔가 자세히 쓰고 싶지만, 오자마자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거 기록해두지도 못했고 별로 아는 것도 없다. ㅠㅠ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실무는 실무자가 다 하며 고위직은 의사결정만 하면 되니까 손발은 점점 편해지고 대신 머리는 점점 아파지는데, 이런 일이 오래 반복되면 실무자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가 된다.(혼자 어디 가지도 못하고, 집세도 못 내고, 쇼핑도 못하고, 밥도 못 먹는 아기가 될 수 있다.)


 파키스탄 오자마자 바로 그다음 날 계좌부터 만들었는데, 내가 한 일은 숙소에 가만있다가 찾아오는 은행 직원이 들고 온 신청서에 서명한 일이 끝. 은행 매니저처럼 보이는 사람이 직원을 대동하고 두 분이나 나를 찾아오다니. 이런 황송할 데가 있나.


 이게 일반적인 건가요? 물어보니, 당연히 아니란다. 지사에서 파트너 은행과 거래하는 현금이 연간 수백만 달러가 넘는데, 내가 그걸 책임지는 책임자니까 은행 입장에서는 내가 VVIP라서 특별 서비스해 주는 거라고. 뭐 뭔가 우쭐해지긴 한데, 내가 그런 게 아니고 내 보직이 그런 거니까, 겸손해야지 겸손해야지 주문을 또 왼다.


 어쨌든, 절차를 대충 복기하면, 외국인이라고 아무나 계좌를 만들어주는 게 아니고, 취업비자, 재직증명서, 여권사본, 부모성명, 현 거주지 주소 및 비상연락처 등을 증빙하는 제반 문서를 꼼꼼히 갖추어 제출해야 하며, 승인심사까지 거의 3주가 걸려서 계좌가 발급되고 현금카드가 지급되었다. 관광비자로 입국하는 외국인이나 소득증빙이 없는 중하위층 자국민은 자국 은행에서 계좌 만드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끝이 아니고,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서 어려운 영어로 "개인 확인" 정보를 묻고 답하는 미션을 통과해야 현금카드가 활성화된다. 토익 성적도 파견자 최저점으로 겨우 통과했는데 오자마자 또 영어 듣기 시험을 치는 것 같아 무척 쩔쩔 메었다. 파든?을 몇 차례나 시전 한 끝에 겨우겨우 통과. 개인정보 일치를 확인한 후 현금카드 비밀번호를 전화통화 미션에서 등록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건 금융법 상 "본인 목소리" 녹취가 되는 제한이 있는 관계로, 옆에서 못 도와준다.


 인터넷 계좌로 개설해서 통장은 따로 주질 않고, 대신 언제든 현금인출이 가능한 체크북을 발행해준다. 백지수표 책이라니, 신기해 보인다. 돈은 없지만 무언가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어쨌든 직원 도움으로 1차 미션 무난히 성공.


[미션 2] 현금 카드를 ATM에서 써보자

 고액권을 너무 많이 집 또는 몸에 지니고 있는 것도 위험한 일이고, 늘 수중에는 적당한 현금만. 그렇다고 매 번 은행 지점을 찾아가는 것은 무척 귀찮은 일. 다행스럽게도 내가 살고 있는 센터로스 아파트 1층 쇼핑몰 로비에는 해당 은행 ATM이 있다.

 ATM 사용방법은 한국과 유사하다. 먼저 현금카드를 기계에 넣고, 비밀번호를 넣고, 현금인출 메뉴를 눌러 원하는 현금을 수령하면 된다. 단, 1회 인출 최대 금액이 20,000루피(한화 약 12만 원)로 제한되어 있어 매우 불편하다. 유독 내가 거래하는 현지 은행은 ATM의 반응속도가 느린데, 때때로 통신 두절되어 먹통으로 있거나 잘 되는 날도 1회 거래에 3~4분 멍하니 모래시계가 돌아가고 있는 일이 예사다. 그래도 금융거래가 있으면, 등록된 휴대폰으로 출금 문자는 꼬박꼬박 잘 보내준다. 

 어쨌든, 10만 루피 이상이 필요하면 그냥 지점으로 직행하시길 권한다. 그게 정신건강에 좋다.

기다려주세요 "제발~" ㅠㅠ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건데?


[미션 3] 인터넷 뱅킹, 폰 뱅킹을 해보자.

 이 나라도 인터넷 뱅킹, 폰 뱅킹이 된다. 우리나라처럼 보안카드, OTP, 인증서 개념은 없지만, 그래도 등록된 스마트폰의 보안코드를 바탕으로 확인받고 입출금을 승인해주니까 보안 개념이 아주 없지는 않다.(그래도 쫌 불안키는 하다. 좀비 어플이 폰에 깔리면 중간에 보안 문자코드 해킹하는 건 일도 아닌 세상이다.)

 앱스토어에서 해당 은행 이름을 치면 은행 어플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인터넷 뱅킹 역시 최신 보안규정에 맞게 https 표준규격으로 열린다. 생각보다 잘 갖추어져 있고, 은행 내 계좌는 물론 타행 이체 역시 딜레이 시간 거의 없이 실시간 입출금을 지원한다. 의외로 실시간 입출금이 안 되는 국가가 많은데, 파키스탄은 실시간 입출금은 잘 되는 국가이다.

현지 은행 인터넷 뱅킹 화면. 어지간한 건 다 된다.



[미션 4] 환전을 해보자.

 현지 은행에선 환전 서비스를 안 해 준다. 첫 월급이 나오기 전 까지는 가져온 달러로 먹고살아야 한다. 환전을 하려면 사설 환전소를 가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센터로스 쇼핑몰에는 환전소가 있다고 했다.

 센터로스에 환전소가 있다고 안내받았는데, 어디 있는지 도통 찾지를 못했다. 1층 안내데스크에 가서 환전소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2층으로 가랜다. 2층을 샅샅이 두 번이나 뺑뺑 돌았는데, 없다. 어? 망했나? 이상하다? 골똘히 생각하며 안내판을 보니 "1층" ㅡ_ㅡ;;; 뭐야. 아, 여긴 영국식 문화권이지. 한국으로 1층이 그라운드 플로어, 2층이 1층, 여기서 말하는 2층은 한국식으로 3층... 한 층을 더 올라가니 올라가자마자 조그만 부스 두 개가 보인다.


저기 보이는 두 개의 하얀 부스가 사설 환전소. 나는 왼쪽으로 갔었다.


 조금이라도 덜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있는 왼쪽 부스를 택해서 말을 건다.


 "I want to exchage this Dallar to Ruppees~"


 무뚝뚝하게 여권과 비자를 달랜다. 헉. 둘 다 안 가져왔는데. 아차 여긴 외국이지. 돈만 있다고 안 바꿔주는구나. 다행스럽게도 여권, 비자를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사진 보여주면 안 되냐고 물어보니 상관없단다. 그렇게 환전 요구자 정보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확인서명을 받고, 웹캠으로 내 얼굴 사진까지 찍고 나서야 루피를 건네준다. 환율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환율창 시세대로 잘 쳐주며 잔돈을 떼어먹거나 속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2021년 12월만 해도 178루피/1달러로 환율이 괜찮았다. 2022년 6월 19일 현재 209루피/1달러. 루피가 녹았다.


 환율은 네이버 들어가서 확인한 환율보다 살짝 더 유리해서 믿을 만했다. 나름 큰 현금을 들고 와서 조마조마했는데, 무사히 환전해서 집까지 사고 없이 잘 들고 왔다. 오늘의 미션도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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