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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May 24. 2022

금주국가 파키스탄에서 술을 사보자

궁하면 다 통하나니

 내가 살고 있는 파키스탄은 국교가 이슬람교 나라로서, 국민의 97%가 무슬림이고 금주국가다. 술 없이는 못 사는 한국인에게는 매우 가혹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금주국가. 말 그대로 술을 안 마시는, 못 마시게 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공식 금주국가 답게, 입국 시 단 한병의 술도 통관이 되지 않는다. 입국 시 가져온 술은 세관에서 압류당하고 대신 출국 시 다시 돌려준다. 시중에는 마트에서도 술을 팔지 않으며, 호프집이나 와인바 같은 술집도 당연히 없고, 음식점에서도 전혀 술을 팔지 않는다.(차이나 레스토랑 등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음성적으로 불법으로 매우 비싼 가격에 술을 파는 경우가 있기는 한다. 5성급 호텔 등 아주 일부 식당에서 공식 허가를 받고 식당에서 술을 판다고는 하는데 나는 못 가봤다.)


 하지만 이 나라도 나 같은 외국인은 있으니 그렇다고 완전히 술이 없지는 않다. 심지어 나라에서 허가받은 양조시설도 있고 맥주공장도 있다. 그럼 여기서 의문. 만든 술은 어떻게 파나? 마트도 식당도 술 안 판다며?


 마트하고 식당에서 술을 안 판다고 했지, 아예 안 판다고 하지 않았다. 술은 술 구매 허가증을 받은 외국인 또는 비 무슬림 내국인을 대상으로 일부 호텔에서만 판다.


 자, 배경은 대충 얘기했고... 이제 본격적으로 구매절차를 알아보자.


1. 주류 구매 허가증(Liquor Obtain Permit)을 먼저 발급받는다.

 - 술 판매가 허락된 특정 호텔의 프론트 오피스 또는 지역 세무서를 방문하면 신청 양식을 받을 수 있다.

 - 경우에 따라 세무서에서 인터뷰가 진행될 수도 있다. 진짜 무슬림이 아닌지 확인하는 절차라고 하는데, 인터뷰를 생략하고 허가증을 받아오는 경우도 있어서 어떻게 하면 인터뷰 면제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 허가증 발급 수수료는 이슬라마바드 기준 약 5,000 루피 (지자체마다 다를 수 있다. 펀자브 세무서 홈페이지는 월별 50 루피로 안내하고 있다.)

 - 매 월 살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다.(다음은 펀자브 주 기준임)

모든 종류의 1쿼트(약 1.14리터) 짜리 병

3쿼트 크기의 와인 병

맥주 20병(각 500ml)


이슬라마바드 주류 구매 허가증은 이렇게 생겼다. 개인정보는 삭제.


이슬라마바드 주류 구매 허가증 주요 내용 대충 번역

발행일 : 2022.1.25
유효기간 : 2022.6.30
종교 : 무슬림이 아님
(i)이 허가는 이슬라마바드에서만 유효합니다.
(ⅱ)이 허가는 술의 소지와 소비를 위한 것입니다.
(ⅲ)이 허가증을 가진 이는 PR-II 허가증을 가진 주류 소유자에게 접대할 수 있다.
(ⅳ)술의 소비는 허가증 소지자의 개인 집에서만 허용합니다.
(v)술을 살 수 있는 한도는 허가된 양을 초과할 수 없습니다.
(vi)한 단위라고 하는 것은 1 쿼트(1.14리터)의 증류주 또는 맥주 스무 병을 말합니다.
(vii)이 허가증으로 소유하게 될 술은 허가받은 곳에서만 사야 합니다.
(ix)이 허가는 다음과 같은 종교 행사를 위해 발행되고 있으며 각각의 유효한 날짜를 명기해야 합니다.
이 허가증은 2022년 6월 30일까지 유효합니다.


2. 공식적으로 펀자브 지역에서 주류 판매가 허락된 곳은 아래와 같다.

  [자료 출처 : MURREE BREWERY(파키스탄 현지 맥주회사)]

LAHORE
i. Pearl Continental Hotel, Mall Road. 042-36360210
ii. Holiday Inn, Egerton Road. 042-36310077
iii. Ambassador Hotel, Davis Road. 042-36316820-32
iv. Avari Hotel, Mall Road. 042-36366366

RAWALPINDI
i.     Pearl Continental Hotel, Mall Road. 051-5566011

MULTAN
i.      Ramada Hotel, Abdali Road. 061-4587777-95

FAISALABAD
i.      Serena Hotel, Club Road. 041-2600428

MURREE
i.      Pearl Continental Hotel, Bhurban. 051-3355651

IN CAPITAL TERRITORY LIQUOR CAN BE PURCHASED FROM
i.      Marriot Hotel, Islamabad. 051-2826121
ii.     Serena Hotel, Islamabad. 051-2874000
iii.    Best Western Hotel, Islamabad. 051-2277460-8

 대부분 5성급 호텔이다. 아마 다른 주 사정도 대충 비슷하지 싶다.


3. 이제 술을 사러 가보자.

매리어트 호텔 Liquor Store. 아니 아무리 그래도 간판 하나가 없니.
대충 이런 류의 술을 판다. 종류가 많지 않다.


학교 구내매점보다 작아 보이는 곳에 머리를 들이밀고 술을 달라고 해야 한다. 허가증이 없이는 안 판다. 한국인 신원보호 차 자체 검열 시행.


 - 호텔 로비가 아니고 잘 안 보이는 뒤편으로 돌아가면 부속 매점 같은 곳이 있다.

 - 술은 일과 중 짧은 시간에만 판다.

 - 술이 언제 입고될지 모르고 재고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가도 허탕 칠 수 있다는 뜻.

 - 살 수 있는 술의 종류 : 사진 참조

 - 사 본(먹어본) 술의 종류

  * 머리 맥주(밀레니엄 브루, 밀맥주), 머리 위스키

  * 홍치 맥주(중국산)


4. 샀으면 마셔 보자.

맥주류는 주류 판매점에서 이 이상 구하기 힘들다. 나는 기네스 흑맥주가 먹고싶은데.


 - 머리 맥주, 홍치 맥주 : 둘 다 맥주 맛은 맞는데, 한국식의 시원한 목넘김은 아니다. 조금 깔깔하다고 해야 되나, 암튼 물맛이 그렇게 깔끔한 느낌이 안 든다. 맥주만 마시고 자도 다음날 머리가 아프다. 한국 맥주는 다음날 숙취로 고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얘네들은 발효 과정에서 뭐가 좀 더 들어간 듯? 어쨌든 술도 한국 술이 맛있다. 둘 다 맛 차이가 있긴 한데, 동시에 놓고 비교하며 먹은 게 아니라 어떻게 다른지 기억이 안 난다. 한국 대표 맥주인 하이트, 카스 등이 4~4.5% 도수임에 비해 머리 맥주는 6.5%로 조금 진한 느낌이 있다. (술 마시느라 바쁜데 술맛까지 세부적으로 기억할 거라고 기대하시면 안 된다. 술 드시는 분들은 공감해주시리라 믿는다.)

 - 머리 위스키 : 이건 진짜 너무했다. 위스키=고급 증류주 아닌가. 독하긴 한데, 다음날 숙취가 장난 아니다. 마실 때 깔끔한 목넘김도 없다. 공짜로 주면 아쉬워서 먹긴 먹겠는데, 절대 돈 주고 안 사겠다고 다짐을 했다.

 - 머리 보드카 : 그나마 낫다는 평가가 있다. 맹 보드카는 써서 입맛에 잘 안 맞아서 과일즙하고 섞거나, 감미료를 타서 적당히 소주 느낌이 나도록 칵테일 제조해서 드시는 전문가들이 계시다.


 내가 그리 술꾼은 아닌데, 가끔씩 시원한 막걸리 하고, 향기가 달콤한 와인하고 생각이 나긴 한다. 우연히 알게 된 Mulgogi 작가님의 기네스 맥주글 보고 난 이후부턴 기네스 흑맥주도 땡긴다. 막걸리는 여기선 정말 구하기 힘든 술인데, 인근 다른 사업장에서는 한국 누룩을 들여와서 몰래 밀주를 빚어먹는 곳도 있다.


 궁하면 다 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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