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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Apr 22. 2022

국제회의 같은 파키스탄 국내회의

2022.1.24.월요일 이야기

 오늘은 다국적회의가 있는 날이다.(그래 봤자 한국인-파키스탄인 회의지만)


 회사에 무언가 민감한 이슈가 있다. 내가 지사장으로 있는 이곳 수력발전소는 준공한 지 2년이 채 안 된 새 발전소인데 곧 2년을 채운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2년 만기의 하자보증기간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쉽게 말해 건설사의 A/S 기간이라 이해하면 쉽다. 하자보증기간 동안 통지된 하자 내용을 모두 클리어 시키고 떠나든지, 통지된 문제사항에 대한 보증을 추가로 하든지 하는 것들이 건설사의 의무이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은 게, 하자사항 중 어디까지가 건설사 귀책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 사용자의 운영 잘못인지, 자연재해인지, 설계 잘못인지, 시공 잘못인지, 제조 결함인지 아무도 딱 부러지게 말 못 하는 건들이 많다는 얘기다. 자동차로 예를 들면 의도치 않게 사고가 났는데, 이게 운전자는 급발전이라고 주장하고, 제조사는 운전자 과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례하고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어쨌거나 그날 하자보증 회의는 주기자재 납품사, 설계 시공사, 설비 소유회사, 설계감리사 및 내가 속한 운영지사 관계자들이 쫙 다 모이는 결전의 날이었다. 회의는 발전소를 소유하고 있는 이슬라마바드 시내 00파워 본사에서 열렸다. 


논제와 관련된 5개 회사가 모였다.


 파키스탄 내에서 각 회사를 대표하는 최고 책임자가 다 모였고, 최고 책임자를 보좌하는 현지 매니저급도 다 모였다. 5개사 관계자들이 다 모이다 보니 회의실이 꽉 찬다. 회의 진행은 건설시공사 소속인 김과장님이 했다. 유창한 영어로 안건을 설명하고 직접 키보드로 영문 요약까지 척척 해내는 모습이 신뢰감이 들었다. 아,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데. 역시 자극이 필요하다.     


논제와 관련된 5개 회사가 모였다.


 공감대가 갖춰진 안건들은 쉽게 쉽게 정리가 되었다. 문제는, 누가 봐도 문제긴 한데 해결하긴 어려운 안건들이 문제다. 수력 발전소의 동력은 물이다. 물이 잘 흘러가야 발전이 잘 되는 건 자명한 일인데, 발전소를 운영하다 보면 자꾸 방류구 주변에 침전물이 쌓인다. 이게 자꾸 쌓이다 보면 낙차가 줄어들어 발전량도 줄어들고 심해지면 배수구를 닫을 수가 없어 정비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운영을 담당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건 설계 미스다. 추가 보완책을 달라.”라고 주장하고 있고, 설계 시공 측에서는 운영 중 발생할 수 있는 자연현상 중 하나이며 방류 상황에 따라 침전물이 쌓일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고 접근하고 있어 이견을 좁히기가 힘들다. 사실 이건 시간이 더 지나 봐야 검증될 문제기도 해서 단정적으로 말하기도 힘들다. 어쨌건 이 건을 토론하면서 현지 매니저들 간에 열띤 공방이 오고 갔는데, 처음엔 회의 공용어인 영어로 논쟁이 오가다가 자꾸 열기가 오르니 언젠가부터 자기들끼리(한국인들은 쏙 빼놓고) 우르두어로 싸우고 있다. 각 회사 한국인 대표자들은 또 한국인들끼리 어설픈 영어로 얘기하다 언젠가부터 우리말로 전환해서 다툰다. 완전 시장통이다.


 파키스탄 내 공용어는 우르두어, 영어이다. 파키스탄 사람들이 모두 우르두어를 다 잘하는 것도 아닌데, 현지 모국어 중에서 우르두어 사용자가 많은 것뿐이며, 파키스탄 사람들도 영어가 제2외국어이지 모국어인 사람은 없다. 다만, 대학교 이상의 고등교육은 책자며 강의 자체가 100% 영어로만 이루어져서 기본적으로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은 영어가 매우 유창하다. 교육의 힘은 작문에서 갈라지는데,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은 영문서 작성이 가능한데, 학력이 낮은 층에서는 이 차이가 심하게 난다. 청소부, 운전사, 골프코치 등 서비스직에 있는 사람들도 영어는 유창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하고 왓츠앱으로 문자소통을 해보면 내가 알던 그 사람들 맞나? 싶을 정도로 작문실력이 회화실력 하고 차이가 너무 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완전 우리나라 하곤 반대다. 영어를 사회 전반에서 공용어로 쓰다 보니 듣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데 문서로 영어를 접하는 것은 나름 고급 스킬이다 보니 읽고 쓰는 게 안 되는 것이다. 어쨌든, 파키스탄 공용어가 “영어”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모국어는 아니며, 이곳 사람들도 흥분하면 우르두어가 먼저 튀어나오지 결코 영어가 편한 언어는 아니다. 어딜 가던 Mother Tung, 모국어가 젤 편한 거다.


 거의 세 시간을 회의실에 갇혀 있으면서 나도 나름 할 말이 많았지만 영어에 주눅 들어할 말을 다 못 했다. 회화 공부를 더 해야지 다시 한번 다짐해보는 계기가 되는 국제회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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