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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Dec 14. 2022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에 오르다

이때 아니면 언제 올라가 보겠어

(이전 이야기에서 계속)


https://brunch.co.kr/@ragony/199



 반갑구나 "피사의 사탑".

 높고, 아름다운 데다 위태위태 "기울어진" 중세 탑이라니, 어찌 안 유명할 수가 있겠나.


 돈도 시간도 두 배를 들여오긴 했지만, 역시 와 보길 잘했다. 느낌과 기억이라는 건 직접 가서 본 것에 비할 수 있는 수단이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아름답고 웅장하다.


 피사의 사탑은 그냥 기운 건물이 아니다. 자세히 보면 바나나처럼 조금 휘어있다. 전쟁 등의 이유로 여러 번 공사가 지연되면서 착공부터 준공까지 200년이나 걸렸다. 이런저런 사료를 바탕으로 건축 과정을 상상해보자. 피사의 탑은 사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부실공사 스토리랜다. 후속 고층건물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고.(이렇게 하면 망한다 보여 줌. 아니지, 스토리텔링으로 흥하디 흥했지만.)




 1173년, 군주님이 대성당을 짓겠다고 하셨다. 성당이 있으면 종탑도 있어야지. 먼저 기초를 파자. 기초가 암반이면 좋겠지만 여긴 지반이 약하니까 땅을 좀 파긴 해야 할 거야. 얼마나 파면되려나? 한 3m만 파자. 너무 깊게 파면 공사비도 많이 들고 공기가 지연되면 군주님이 싫어할 거야. 기초를 파고 주춧돌을 넣고 벽돌을 쌓아가며 한층 한층 올라간다. 한 3층쯤 올렸나? 어, 뭔가 기분이 좀 이상하다. 아뿔싸, 지반이 기우는구나. 이봐, 안토니오 실장. 이거 어떻게 좀 해봐. 베사토 반장님, 이거 다 허물고 처음부터 짓는 수밖에 없겠는데요? 아니 지금 공정률이 30%나 왔는데 어떻게 허물어? 방법이 없나? 기초 기울어진 건 인정하고 여기서부터 기울어진 걸 보정해서 그냥 올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차피 용도는 종탑이잖아요. 아, 어쩌지. 내 군주님한테 보고하고 올 테니 대안도 생각해 봐요. - 군주님이 일단 빨리 올리래신다. 그냥 계속 짓자. - 대신 쓰러지면 안 되니까 아까 얘기한 것처럼 기울어진 것 감안해서 수평으로 만들어가며 올려야겠어. 아, 반장님 - 전쟁이 났답니다. 우리도 피난 갔다가 다시 하죠. 어, 그래그래 일단 철수. 살고 봐야지. -20년 후- 자, 공사 다시 시작합니다. 아, 반장님 이거 지난번보다 더 기울었어요. 으음... 더 기운만큼 더 보정해서 올려야겠군요. -30년 후- 우린 너무 늙었어. 다음 세대가 어떻게든 마무리하겠지. 잘 부탁하오. 아니... 이렇게 인수인계해주시면 어떡해요... 아, 모르겠다 벌써 100여 년이나 지은 걸 다시 허물 수도 없고. 대충 마무리해야겠다. 이렇게? 저렇게? 응? 또 기울어? 그럼 또 보정. 또또 보정. 또또또 설계변경 - 마테오 반장님, 작업자들이 스멀스멀 아프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좀 아파요? 뭐? 왜? 무슨 일이야? 아... 흑사병이라는 전염병이 돌고 있어요. 인부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또 공사 중단. 50년 후- 자, 이제 우리 손에서 끝내자. 준공은 해야지, 이러다 영원히 미완으로 남을라. 대충 올라갔으니 높이 너무 욕심내지 말고 마무리하자고. 1372년, 착공 200년 만에 드디어 완공.


 시간이 흘러 흘러 1930년대. 무솔리니 총통님, 우리나라 명물 피사의 탑이 무너지기 직전이라는데요? 뭐? 야 그게 얼마나 관광수익이 큰 알짜 건물인데. 야, 세워 세워. 근데 얼마나 기운 거야? 약 5도 기울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날마다 점점 더 심해진대요.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든 쓰러지는 거 막아봐. 알겠습니다. 무너지는 쪽에 콘크리트를 치면 좀 덜해지지 않을까? 일단 조심스럽게 해 보자. 어... 콘크리트 부으려고 땅을 팠더니 더 심해지네. 중단. 땅이 무른 게 문제니까 액체질소로 얼려보자. 앗... 이거 1년 내내 이렇게 얼리려다 국가재정 파탄 나겠네. 이것도 아냐. 아, 어쩐다, 반대편 흙을 좀 파내면 낫지 않을까? 휴.. 효과가 있군. 있어.


 1990년대. 이번에는 제대로 고쳐봅시다. 11년 동안 426억 원 상당의 비용을 들여 다시 보수공사를 시행. 2001년 공사 최종 완료. 이제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엇... 안 무너지는 건 좋은데, 이번엔 공사를 너무 잘했나? 이번에는 탑이 똑바로 서기 시작한다. 피사 시장 왈 "아니 이보쇼들, 탑 무너지는 거 막아달라 그랬지 누가 똑바로 세워달라 그랬소?". 이 속도라면 2~300년 안에 탑이 완전히 직립하겠는걸? 그럼 이름을 바꿔야 하나? "피사의 직탑"? 원래 좀 휘어있으니 "피사의 곡탑"? 몰라몰라 그때 가서 고민하라 그래. 나 없을때잖아.




 어쩐지... 온갖 매체에서 보던 것보다 사탑이 좀 덜 기울었다고 느끼긴 했어. 점점 바로 서고 있구나.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을 보기 위해선 하루라도 먼저 가야 하겠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똑바로 서 있을 테니.

 


 거의 아침 9시경 도착했는데, 피사의 사탑 입구에 열댓 명의 줄이 늘어서 있다. 응? 이건 무슨 줄? 피사의 사탑에 오르는 줄이다. 생각보다 한산하고 사람들이 별로 없다.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보니, 저 뒤쪽 매표소 가서 표 사서 오란다. 원래 탑에 오를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짧은 줄과 화창한 날씨를 보니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올라가 보겠나 생각이 든다. 아, 나보고 피사의 사탑에 한 번 올라가 보라고 어제 버스를 그냥 보내버린 거구나. 다 그런 뜻이 있었던 거구나. 그렇지, 어제 계획대로였다면 사탑과 성당 "껍데기"만 보고 복귀했겠지. 그랬다면 여행기가 무지 심심해졌겠지. 다 그게 하늘의 뜻이었구나. 그럼 그렇지.


오~ 전 슬롯이 비어있다. 가장 빠른 시간으로 주세요~ 09시 15분 입장티켓 구매.


 사탑 입장권은 20유로. 탑 한번 올라가는데 2만 8천 원이나 받다니 무진장 비싸지만... 성수기에는 못 구해서 못 가는 입장권이고 대성당 입장권 통합권이니까 이해하는 걸로.


그럼 제가 한 번 올라갔다 와 보겠습니다. 아래서 바라보면 꽤나 높다.



 사탑은 우물처럼 가운데가 동공이며 내벽과 외벽 사이에 나선 계단이 있는 구조이다. 약 800여 년 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길 오르락내리락했는지 저 닳아버린 돌계단을 보라. 영겁의 세월이 느껴진다.


오르는 와중에 찍어본 바깥경치. 매표소 앞 잔디밭 / 대성당
기둥과 지평선이 수직이 아님. 딱 요만큼 기울어짐.
거의 끝까지 올라가면 계단이 매우 가팔라지고 좁아짐.
요게 사탑의 꼭대기. 당연히 수평이 아니라서 좀 어질어질.
파노라마 긁었더니 더 어질어질. 어쨌든 올려다본 하늘은 이런 느낌.
탑 망루에는 종이 한 두 개가 아님. 파노라마 촬영 사진으로 실제론 이렇게 넓지 않아요.


탑에서 내려본 피사 시내 전경

꼭대기에서 바라본 매표소 건물 및 잔디밭.

망루까지 왔으니 그래도 인증샷 하나 남겨주시고...

이제 왔던 길 조심조심 내려갑시다. 다리 힘 빠지면 큰일나겠네.


 올라갔다 둘러보고 내려오는 데까지 총 걸린 시간은 약 20여분. 총 55m 종탑이니 그리 높지는 않지만 경사가 매우 가파르고, 여행객과 같은 속도로 올라가야 하니 페이스 조절을 잘해야 함.


남들 다 찍는 인증샷도 남겨놔야지.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힘들게 부탁해서 건진 귀한 사진임. 사실 이거 찍으러 가는거 아닌감.


 이제 시간이 여유롭게 남네. 이왕 산 티켓이니 피사 대성당에도 가보자. 동절기에 대성당은 10시부터 문을 연다. 아무리 줄 길어도 시간 전에는 안 열어준다.

매우 웅장한 피사 대성당의 청동문
성당과 마주하고 있는 세례당. 역시 웅장한 자태를 자랑한다.
캄포산토(Camposanto). 우리나라로 치면 납골당 같은 건물이라고 한다.
진짜 사용하는 문 맞다. 시간 되니 열린다. 대성당(두오모) 입장.


 피사 대성당 역시 내부가 무척이나 화려하다. 성당이라기보다 통째 미술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두오모도 종탑도 모두 규칙적인 아치로 장식되어 있어 통일감이 있다.
종탑이 딱 수직으로 서 있었으면 이렇게 유명세를 떨칠 수 있었을까? 적당히 기운 것이 딱 예술이다.


 대성당을 30여분 꼼꼼히 둘러보고, 아쉽지만 바이 바이. 성당 입구 쪽에서 피사의 사탑을 바라보면 거의 똑바로 선 것처럼 보인다. 보는 각도에 따라 느낌이 상당히 다른 피사의 사탑. 그래서 명물이구만.


 입구 담벼락을 나오자마자 기념품 노점상이 가득하다. 피사를 상징하는 기울어진 탑 모양의 머그도 무척 탐이 났지만 배낭여행객이니 무거운 건 일단 사절. 기념으로 마그네트 하나만 샀다.


입구에 즐비한 기념품 노점상.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길 건너 편의점에서 버스표를 사서

  LAM Rossa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서 피사 중앙역까지 오면, 미션의 90% 클리어. 역사에 오면 영어가 지원되는 키오스크가 있으니까 가장 빠른 완행열차 표를 사서 다시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까지 오면 "피사의 사탑" 올라갔다 오기 퀘스트 완료. "경험치가 100 올라갔습니다."



 무사히 5번 플랫폼에 내려서 역사를 빠져나오려다 말고, 아침에 왜 플랫폼 정보 확인을 못 했나 곰곰이 분석을 해 본다. 지금 시각이 12시 20분. 그런데, 저 전광판의 12시 25분 기차 스케줄을 보면, 아직도 플랫폼 정보가 공지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기차 도착이 매우 임박해서야 내가 타는 플랫폼이 어딘지 알 수 있다는 말씀. 내, 이런 상식도 모르고 기차 출발 10분 전부터 플랫폼 어디냐고 발을 동동 굴렀으니 아마 현지 안내인이 참을성 없는 이상한 외국인으로 봤을 수도 있겠다. 순서 지키기 힘든 버스도 아니고, 기차 발착 플랫폼을 하루 전에 계획하는 게 그리 어렵나.....? 어려우니까 안 하겠지? 아무튼, 이탈리아에서 기차 타려면, 플랫폼 정보 모니터를 잘 보고 있다가 잽싸게 움직여야 하겠다... 까딱 멍 때리면 기차 놓치기 딱 좋겠다.



 인심 야박한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 유료 화장실. 1유로? 1.5유로?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저렇게 지하철 개찰구마냥 동전을 넣어야 문이 열린다. 유럽답게 핸드 드라이어는 디자인 날렵한 다이슨(dyson) 제품.


 어쨌든 얼렁뚱땅 급하게 다녀왔지만 나름 만족하고 온 피사 답사기.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또 후딱 잘 한다구.




(다음 편 예고 : 피렌체 두오모 박물관 관람기)



#피사, #이탈리아, #배낭여행, #피사의 사탑, #피사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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