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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의 종탑에 오르다

물안개 피어나는 피렌체 석양 풍경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 다시 두오모로 발길을 돌렸다.

골목 사이로 짜쟌~ 하고 다시 나타나는 두오모는 마치 초거대 로봇 같은 위압감을 준다.



석양을 받으니 건물 색상이 또 달라 보인다. 또 다른 분위기. 왼쪽은 오후 4시 13분 해 넘어갈 때 색감이고, 오른쪽은 오후 1시 반 해가 중천일 때 색감. 느낌이 달라요.



아까 박물관에서 촤라락 펼쳐놨던 부조가 다 여기 외벽이구나. 박물관에 있는 것이 진품, 여기 있는 것이 복제품이라고 한다. 저 잘빠진 각선미를 보라... 영롱하고 오묘한 색감과 기하학적 무늬를 보라... 미술이고 예술이고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와~ 예쁘다~ 하는 생각이 든다.


조토의 종탑은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화가이가 건축가인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가 설계한 종탑이라고 한다. 1334년 제작에 착수한 이 탑은 아쉽게도 조토 살아생전에 완성하지 못했고 그의 제자 안드레아 피사노와 탈렌티가 1359년 완성한 탑이다. 착공부터 준공까지 25년 걸림. 건축기간이 수백 년씩 걸리는 대성당에 비하면 이 정도는 엄청 짧은 공기인 셈.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D%86%A0%EC%9D%98_%EC%A2%85%ED%83%91


우피치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피렌체를 빛낸 인물상이 좍~ 늘어서 있는데 거기에 조토의 석상도 있다. 조토는 건축보다 회화사의 새 장을 연 혁신적인 화가로 더 명망이 높던 인물이었다. 당대 최고 예술가가 설계한 종탑이니 기하학적으로도 심미적으로도 더 더하고 뺄 것 없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모양이다.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조토의 석상. 손에 든 건 아마도 종탑의 설계도?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D%86%A0_%EB%94%94_%EB%B3%B8%EB%8F%84%EB%84%A4


비수기의 장점. 일몰에 올라가는 황금시간인데 줄 같은 거 없다. 그냥 입장.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큰 가방은 맡기고 몸만 올라갈 수 있다.



피사의 사탑처럼 목적은 종탑이니 가운데는 뻥 비어있고 사각 벽면을 뱅뱅뱅 감아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올라갈수록 계단은 매우 좁아져서 두 사람이 엇갈려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폭이 좁아진다. 종탑의 높이는 85미터로 두오모 쿠폴라보다 살짝 낮다.


오르는 중간쯤 창으로 내다본 석양받는 두오모 쿠폴라
중간쯤 쉬어갈 수 있는 휴게 공간이 있고 올라갈수록 계단 폭이 좁아진다
해지는 베키오 궁전 전경. 오~ 느낌 있네 느낌 있어
세례당 지붕도 장엄하고
막 넘어가는 태양도 장엄하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종이 놓여있는 두 번째 중간층이 나오고,



힘을 내서 한 번만 더 쫙~ 올라가면 드디어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탑 정상에 올랐을 때는 해가 막 뉘엿뉘엿 넘어가기 직전.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시간이라 물안개도 촤악 깔리기 시작한다.



종탑 전망대는 이렇게 새장처럼 촘촘하게 철망이 가로막혀서 사진 찍기가 무척 힘들었다. 안전도 좋지만 간격을 조금만 좀 넓혀놨어도 좋으련만.


그래도 기념이니 넘어가는 해와 두오모를 배경으로 인증샷도 남겨주시고...



두오모 전망대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이미 마감시간이 지났나 보다.



종탑 정상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민박 룸메이트 청년. 피렌체는 좁아서 대충 다 다시 만나게 되어있다.


"와아, 여기서 다시 만나네요? 이것도 인연인데 혹시 괜찮으시면 저녁 같이 드실래요?"

"아, 저도 우연히 만난 여행객과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는데 그 친구만 괜찮다면 저는 괜찮아요. 연락해 볼게요~"


역시 이번 모임도 내가 나이가 제일 많긴 했지만 무탈하게 끼는 걸로. 다행이다. 혼밥은 피할 수 있어서.



이곳저곳 종탑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히기 시작하고



마치 그림처럼 몽환적으로 물안개가 화악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현대적 고층빌딩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서 더욱 예쁜 피렌체 석양 풍경.

실제로는 철조망 사이로 조망해야 하는데 저 갑갑한 철조망만 없었어도 훨씬 더 좋았겠구만. 안전도 문화재 보호도 필요하겠지만 좀 절충할 수 없었을래나.



해는 실시간으로 저 편으로 떨어지고 건물 조명은 더 더 도드라지기 시작한다. 이젠 슬슬 내려가야 할 시간.



가파른 종탑 계단 조심조심 내려가자. 헛디뎌 구르면 정말 답도 없다.

마지막 출구 측 계단이 입구 측과 다른 길인데, 조심해야 한다. 키 큰 사람은 천장에 머리 콩 찧는다. ㅠㅠ (아무도 경고해주지 않아서 콩 찍혔다. ㅠㅠ)



오후 5시 20분밖에 안 되었는데 해는 이미 넘어갔고 벌써 밤. 아까 탑 정상에서 만났던 룸메 청년과 이따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는 좀 더 도시를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이야기 : 피렌체 밤거리 관광 및 Osteria Pastella Restaurant에서의 저녁 만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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