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Dec 19. 2022

조토의 종탑에 오르다

물안개 피어나는 피렌체 석양 풍경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 다시 두오모로 발길을 돌렸다.

 골목 사이로 짜쟌~ 하고 다시 나타나는 두오모는 마치 초거대 로봇 같은 위압감을 준다.



 석양을 받으니 건물 색상이 또 달라 보인다. 또 다른 분위기. 왼쪽은 오후 4시 13분 해 넘어갈 때 색감이고, 오른쪽은 오후 1시 반 해가 중천일 때 색감. 느낌이 달라요.



 아까 박물관에서 촤라락 펼쳐놨던 부조가 다 여기 외벽이구나. 박물관에 있는 것이 진품, 여기 있는 것이 복제품이라고 한다. 저 잘빠진 각선미를 보라... 영롱하고 오묘한 색감과 기하학적 무늬를 보라... 미술이고 예술이고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와~ 예쁘다~ 하는 생각이 든다.


 조토의 종탑은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화가이가 건축가인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가 설계한 종탑이라고 한다. 1334년 제작에 착수한 이 탑은 아쉽게도 조토 살아생전에 완성하지 못했고 그의 제자 안드레아 피사노와 탈렌티가 1359년 완성한 탑이다. 착공부터 준공까지 25년 걸림. 건축기간이 수백 년씩 걸리는 대성당에 비하면 이 정도는 엄청 짧은 공기인 셈.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D%86%A0%EC%9D%98_%EC%A2%85%ED%83%91


 우피치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피렌체를 빛낸 인물상이 좍~ 늘어서 있는데 거기에 조토의 석상도 있다. 조토는 건축보다 회화사의 새 장을 연 혁신적인 화가로 더 명망이 높던 인물이었다. 당대 최고 예술가가 설계한 종탑이니 기하학적으로도 심미적으로도 더 더하고 뺄 것 없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모양이다.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조토의 석상. 손에 든 건 아마도 종탑의 설계도?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D%86%A0_%EB%94%94_%EB%B3%B8%EB%8F%84%EB%84%A4


 비수기의 장점. 일몰에 올라가는 황금시간인데 줄 같은 거 없다. 그냥 입장.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큰 가방은 맡기고 몸만 올라갈 수 있다.



 피사의 사탑처럼 목적은 종탑이니 가운데는 뻥 비어있고 사각 벽면을 뱅뱅뱅 감아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올라갈수록 계단은 매우 좁아져서 두 사람이 엇갈려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폭이 좁아진다. 종탑의 높이는 85미터로 두오모 쿠폴라보다 살짝 낮다.


오르는 중간쯤 창으로 내다본 석양받는 두오모 쿠폴라
중간쯤 쉬어갈 수 있는 휴게 공간이 있고 올라갈수록 계단 폭이 좁아진다
해지는 베키오 궁전 전경. 오~ 느낌 있네 느낌 있어
세례당 지붕도 장엄하고
막 넘어가는 태양도 장엄하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종이 놓여있는 두 번째 중간층이 나오고,



 힘을 내서 한 번만 더 쫙~ 올라가면 드디어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탑 정상에 올랐을 때는 해가 막 뉘엿뉘엿 넘어가기 직전.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시간이라 물안개도 촤악 깔리기 시작한다.



 종탑 전망대는 이렇게 새장처럼 촘촘하게 철망이 가로막혀서 사진 찍기가 무척 힘들었다. 안전도 좋지만 간격을 조금만 좀 넓혀놨어도 좋으련만.


그래도 기념이니 넘어가는 해와 두오모를 배경으로 인증샷도 남겨주시고...



 두오모 전망대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이미 마감시간이 지났나 보다.



 종탑 정상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민박 룸메이트 청년. 피렌체는 좁아서 대충 다 다시 만나게 되어있다.


 "와아, 여기서 다시 만나네요? 이것도 인연인데 혹시 괜찮으시면 저녁 같이 드실래요?"

 "아, 저도 우연히 만난 여행객과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는데 그 친구만 괜찮다면 저는 괜찮아요. 연락해 볼게요~"


 역시 이번 모임도 내가 나이가 제일 많긴 했지만 무탈하게 끼는 걸로. 다행이다. 혼밥은 피할 수 있어서.



 이곳저곳 종탑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히기 시작하고



 마치 그림처럼 몽환적으로 물안개가 화악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현대적 고층빌딩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서 더욱 예쁜 피렌체 석양 풍경.

 실제로는 철조망 사이로 조망해야 하는데 저 갑갑한 철조망만 없었어도 훨씬 더 좋았겠구만. 안전도 문화재 보호도 필요하겠지만 좀 절충할 수 없었을래나.



 해는 실시간으로 저 편으로 떨어지고 건물 조명은 더 더 도드라지기 시작한다. 이젠 슬슬 내려가야 할 시간.



 가파른 종탑 계단 조심조심 내려가자. 헛디뎌 구르면 정말 답도 없다.

 마지막 출구 측 계단이 입구 측과 다른 길인데, 조심해야 한다. 키 큰 사람은 천장에 머리 콩 찧는다. ㅠㅠ (아무도 경고해주지 않아서 콩 찍혔다. ㅠㅠ)



 오후 5시 20분밖에 안 되었는데 해는 이미 넘어갔고 벌써 밤. 아까 탑 정상에서 만났던 룸메 청년과 이따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는 좀 더 도시를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이야기 : 피렌체 밤거리 관광 및 Osteria Pastella Restaurant에서의 저녁 만찬 이야기)

매거진의 이전글 단테의 "신곡"은 그 시대 최신 판타지 소설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