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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Mar 30. 2023

"포기"와 "기회", "도전"은 사실 같은 편이다

"포기하지 마"를 강요하지 말자

 며칠 전 오랫동안 재밌게 즐기던 액션 어드벤처 게임을 과감하게 때려치웠다.


https://brunch.co.kr/@ragony/235


 딱히 특별한 심오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다. 내 실력과 키워온 캐릭터로는 갑자기 등장한 중간보스를 이길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뿐이다.

 즐기라고 만든 게임이니까, 당연히 이길 방법이 있겠지. 그리고, 내 비록 둔한 운동신경의 소유자지만 끈기를 가지고 찾아 배우고 익히면 언젠가는 이기겠지.


 그런데 그렇게 죽어라 게임만 하다가 갑자기 현실자각타임이 왔다.

 취미로 재밌자고 하는 게임에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그깟 중간보스 못 이기면 어때. 이거 말고도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이쯤에서 깔끔하게 포.기.


 여기까지가 지난번에 올린 내 글의 줄거리와 감상.




 이제 좀 철학적으로 접근해 보자.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다" "내 인생에 포기란 없다" 등등 포기를 죄악시하는 사회분위기가 있고, 학생 때부터 "끈기와 성실"이 "포기"의 반대말인 것처럼 교육받고 자라왔다.



 그런데, "포기"할 때는 과감하게 "포기"해야 인생에서 성공한다. 그러니까, 저 급훈은 "포기는 배추를 셀 때에도 쓰는 말이다"로 바뀌길 희망한다. 나는 끈기가 유독 약한 인간군상인데, 한편으론 끈기가 약한 덕분에 "포기"를 또 잘해서 이 험난한 지구행성에서 지구인의 모습으로 아직까지 생존해가고 있다.


 글친 브런치스토리(아 진짜 성가시네) 작가님들은 잘 아시겠지만 내 인생 모토는 "무계획 상팔자". 그날 그날 하고픈 거 하고 즐겁게 살자는 아주 가벼운 철학의 소유자. 거창한 목표나 타이트한 계획 자체가 없는 사람이라서 끈덕지게 뭘 하는 게 체질에 안 맞다. 대신 그래도 사회낙오자가 되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해야겠다 마음을 먹을 때는 또 하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이게 "포기없이" "꾸준하게" 한 우물만 열심히 판다는 뜻은 또 아니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성공할지 말지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한 우물만 꾸준하게" 파는 행동이 과연 합리적인가? 파고 팠는데 결국 물이 안 나오면? 그간의 성실한 노력에 무슨 보상과 가치가 있나? 그래도 과정은 아름다웠다 말할건가? 아냐. 정말 그냥 삽질한거야. 한 우물을 열심히 파다가 물이 안 나올 것 같은 정황이 발견되거나 촉이 오면 빨리 포기하고 물이 나올 것 같은 곳을 재분석해서 다시 도전하는 게 맞다. 그리고, 근거와 확신이 있다면 될 때까지 도전하는 거지.


 포기와 기회, 도전은 같은 면에 있다.

 포기를 하지 않으면 새로운 시도를 해 볼 기회조차 없다.

 비전 없이 쓰러져가는 회사 주식을 "포기하지 않고" 들고 있으면 돌아오는 건 "상장폐지" 뿐이다. 지속성장을 담보하는 회사에 가치투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빠른 손절매"가 답이라는 건 주식시장 격언이자 상식이다.  비전 없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면 미래가 촉망되는 회사에 입사할 수 없고, 내 사업을 운영해 볼 기회도 없다.

 카메라 필름회사로서 세계적 명성을 떨치던 코닥이 망한 이유는 필름사업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넘어가는 전환기에서 누구보다 먼저 디지털 카메라 관련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침몰해 가던 사양사업을 포기하지 못해 회사가 망해버렸다. 이미 망해가는 사업영역에 포기하지 않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필름 제조비용 10% 원가절감하고 필름품질 30% 해상력 증가시켜 본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포기를 할 때는 과감하게 포기를 해야, 새로운 기회가 보이고 도전할 수 있다.


 포기 없이 정말 꾸준하게 열심히 해야 할 때가 있다.

 그건, 미래 비전에 대한 확실한 신념과 자신이 있을 때이다. 그리고 포기 없이 투입하는 열정과 시간, 에너지에 대해 미래에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산업 불모지에서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신화나 2차 전지 개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한국인 정신"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그건 그 회사의 경영진이 "확고한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유능한 기술진들이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미래비전이 보이지 않고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의 무모한 도전은 그냥 확률게임일 뿐이다. 어쩌다 잘 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잘 안 될 수도 있지. 그런데, 잘 안 될 경우 누가 책임져주나?



"포기하지 마"를 강요하지 말자.


"포기"를 하는 것이 합리적 상황일 때 포기를 잘해야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도전"할 수 있다.


"포기""기회", "도전"은 사실 같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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