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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Apr 28. 2023

카라코람 하이웨이 답사기 3

염소떼와 유령마을

[Mission 4 : 염소떼 여러분, 조금만 비켜주세요]

- 2023년 4월 22일, 점심 무렵 이야기



 자연과 공존하는 카이베르 파크툰와(Khyber Pakhtunkhwa) 사람들.

 풀도 드물고 나무도 보기 힘든 이런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 이런 염소들을 잘 키우는지 모르겠지만, 도로 곳곳에 염소떼들이 출몰한다.


 나는 나의 길을 갈 테니, 너는 너의 길을 가라.



 차 두 대가 겨우 비껴갈 만한 너비의 가드레일도 없는 위험한 길인데(길 이름이 여전히 하이웨이임을 잊지 말자) 여기에 염소떼까지 더하니 아주 대환장파티구만 목동도 운전사도 염소들도 다들 그러려니 하고 알아서 정리가 된다.


 나는 여기선 도저히 운전하지 못할 것 같다.








[Mission 5 : 이 유령마을의 정체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안 보이는 이 마을의 정체는???

 주변에 풀도 나무도 없고, 전신주도 없고 수도관이 있을 리가 없고, 차가 들어갈만한 도로도 없는 곳에 대체 누가 집을 지었나? 물이야 아래 강물을 떠서 어떻게든 산다고 쳐도 풀도 나무도 아무것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사나???


 잘 안 보이시는 분들을 위해 조금만 더 확대.


 지붕을 알록달록 색칠했더라면 그리스 산토리노나 이탈리아 친퀘테레 느낌이 들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대체 이 유령마을의 정체는 무엇인가? 힘들게 왜 이렇게 척박한 곳에 집을 지었으며, 왜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안 보이는 걸까?



 심지어 이렇게 규모가 꽤나 되는 마을도 나오는데, 정말 사람이 한 명도 안 보인다. 번화하다 멸망한 폼페이도 아니구만 대체 왜? 정부에서 집단 이주라도 시킨 걸까? 그러고 보니 강물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는 집들이라 수몰지구라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마침 강 하구에 Dasu Dam 및 4,320MW 규모의 초대용량 수력발전소 공사가 진행 중이기도 하니까.


https://en.wikipedia.org/wiki/Dasu_Dam

(Dasu Dam을 찾아보니, 수몰마을 보상에 관한 얘기와 수몰 카라코람 하이웨이 구간 변경에 관한 내용이 짧게나마 언급되어 있다.)



 다음 날 훈자에 사는 관광가이드 분에게 살짝 여쭤봤더니, 아마 쉐르파들이 집단 거주하는 구역일 수 있다고 의견을 준다. 성수기 때는 유명 산 언저리에 살면서 등반객들의 등산을 도와주며 돈을 벌고, 일감이 떨어지는 겨울에 본거지로 돌아와서 겨울을 난다는 것. 음? 그럼 아내와 자식들은 어쩌고??


 직장에 복귀한 후 이 지역을 좀 아는 현지인에게 좀 더 디테일하게 물어보니, 처음의 단순해 보이는 집들 사진은 구자르 유목민(Gurjjar tribe)이 사용하는 겨울 헛간(shed) 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마지막의 규모가 좀 되는 마을 사진은 Dasu Dam 건설공사로 수몰예정 마을이라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받고 이미 이전한 마을이라고 한다. 아, 수몰지구 맞구나. 내 짐작이 맞았네. 아, 저 풍경은 몇 년 뒤에는 영원히 볼 수 없는 광경이겠구나. 차를 잠시만 세우고 사진과 영상을 좀 더 담아 올걸 그랬다.


 구자르 족 중에서는 쉐르파도 있겠지. 어쨌든 전선 가설도 안 되어있는 저 단순한 집들은 유목민의 겨울 대피소 느낌인 거구나. 공부하는 김에 구자르 유목민에 대해 조금만 찾아보고 갑시다.



구글에서 Gurjjar tribe이라고 쳐 보면 나오는 이미지들



구자르(Gurjar)는 주로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는 유목민, 농업 및 목가 공동체로, 내부적으로 다양한 씨족 그룹으로 나뉩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농업과 목축, 유목 활동에 참여했고 큰 동질적인 집단을 형성했습니다. 구르자의 역사적 역할은 사회에서 꽤 다양했습니다. 한쪽 끝에는 그들이 여러 왕국과 왕조를 세웠고, 다른 한쪽 끝에는, 일부는 여전히 자신의 땅이 없는 유목민입니다. (아래 위키백과 부분발췌 번역)


https://en.wikipedia.org/wiki/Gurjar




 문화적 동질감을 가진 한 민족으로 분류되지만, 고유의 나라가 없는 민족은 참... 뭐랄까 애잔한 아픔이 느껴진다. 어딜 가나 "소수민족"이라고 박해당하고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는 변두리의 삶. 부족사회로 끼리끼리 평화롭게 잘 살던 사람들인데 현대 국가 이데올로기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은 아닐지.



 소수 유목민족의 삶을 엿보고 있으니 한국말을 쓰고 한국음식을 먹고 한국문화를 공유하는 우리 한국인들도 만일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으면 은근 괄시 무시를 당하며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모국어로 사회활동을 할 수 있고, 모국문자가 찍힌 여권을 발급받으며, 주류에서 천대받거나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파키스탄 소수민족들이 보통 서너 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민족 독립에 모든 걸 바친 조상님들께 다시금 감사드린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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