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고 사람들하고 어울리면 에너지가 솔솔 빠져나가는 타입이다.
혼자 있어도 외로움 같은 거 잘 못 느낀다.
학생 때도 다들 공부가 잘 되는 도서관이나 전용 독서실을 끊어 이용하는데 나는 무료 도서관엔 곧잘 갔었어도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유료 독서실을 이용해 본 적이 없다. 집이 더 편한데 왜.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한동안까지 카페 커피가 왜 그렇게 비싸야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100원주고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 되지, 3,000원씩이나 하는 밥보다 비싼 커피를 카페에서 사 마시는 일은 사치 중 사치라고 여겼다.(가격은 대충 당시 기준)
카페가 커피만 파는 곳이 아니라는 걸 인식하기 시작한 건, 사회생활을 한참 하고 결혼을 하고 난 다음이다. 카페는 사람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할 편한 공간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혼자라도 아늑한 공간에서 주변 사람들과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영감을 얻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을 파는 곳이다. 순수 이과적인 내 사고로 제안하면 사용시간에 따른 카페 "입장료"를 받고 음료나 먹거리는 저가에 파는 게 맞겠다.(생각해 보니 키즈카페는 이미 이러고 있다.)
카페가 공간을 판매하는 곳이다 보니, 컨셉과 이미지 메이킹이 매우 중요하다.
카페인 민감증이 있어 커피를 매우 조심해 가며 마시긴 하지만, 나도 해외여행 가면 "스타벅스" 커피숍이 반갑다. 어느 국가를 가든, "스타벅스" 내부는 늘 비슷한 컨셉과 인테리어, 운영규칙(무료 화장실, 무료 콘센트 등)이 있어 여행객에게 공간 선택의 고민거리를 덜어주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같은 다국적 프랜차이즈 카페와 경쟁하려면 무언가 특별한 경쟁력이 필요하다. 커피의 맛이 월등히 신선하고 맛있거나, 아니면 그 공간에 대한 특별함을 제공해줄 수 있거나, 아니면 특별히 친절하거나 등등.
공간의 특별함에 집중하자면, 숲 속 느낌의 카페, 유럽 노천카페 느낌의 카페, 제주도 해안가 느낌의 카페, 도서관 느낌의 카페, 우주선 내부 같은 카페, 캐리비안의 해적선 같은 카페, 기차 안 같은 카페... 나도 일일이 다녀보진 않았지만 지금도 다양한 컨셉을 개발하며 창업을 꿈꾸는 카페 예비사장님들이 계실 것이다.
지금껏 시도되었다고 들어본 적 없는 카페 컨셉이 생각나서 구체적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해 본다.
이름하야 한국식 "욕쟁이 할머니 카페" 버전.
타깃은 구수한 시골 인심과 인간적 친밀감, 아늑한 골방 느낌을 바라는 중장년 아저씨 층.
일단, 인테리어는 짚과 황토를 개어 만든 흙벽에 왕골과 대나무로 만든 각종 살림살이들이 대충 매달려있고, 하루에 한 장씩 뜯어내는 "농협" 달력이 있어야 하겠다. 대청골 마루를 연상시키는 바닥에 완전 원목 앉은뱅이 식탁이 여기저기 줄을 맞추지 않고 색동방석과 함께 널려있는거다. 이 집의 시그니처는 "누룽지 커피". 숭늉에 원두커피를 섞은 맛인데 누구는 "밥말아먹는 커피 맛"이라고도 한다.
"할머니, 여기 아메리카노 뜨겁게 한 잔이요."
"염병, 니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저기 설명서 읽어보고 니가 니 취향대로 내려먹어!"
"......"
"할머니, 오늘 너무 더운데 에어컨 온도 좀 낮춰주세요."
"아 여름인데 덥지 그럼 추울까? 저 옆에 부채 있으니까 그거 써. 전기세 비싼 거 몰라?"
"...할머니, 전기는 세금이 아니라 요금이에요."
"이눔이 어른한테 꼬박꼬박 말대꾸네. 알아들으면 된거지 이 늙은이 그리 일일이 가르치고잡냐?"
"......"
"할머니, 잘 지내셨죠? 오늘은 커피말고 뜨거운 자몽차 한 잔 부탁드릴게요."
"할미 손목이 뻐근해서 자몽을 못 깠다. 자몽 하나 줄 테니까 반의 반만 너 잘라서 타먹고 나머지는 껍질 벗겨서 통에 넣어놔. 어여 일루 들어와서 앞치마 입고 손부터 씻어. 대충 씻지말고 깨끗하게 씻어 이눔아."
"......"
......음. 생각해 보니 내가 중장년인데 전혀 안 가고 싶네.
"욕쟁이 할머니 카페"는 시도하지 않는 걸로.
하지말자. 망하겠다. ㅡ_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