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대문자)와 k(소문자)의 결정적 차이점
해외를 다니면 말이 통하지 않아 참 갑갑하다.
생존영어를 조금은 할 줄 알아서 죽을 것 같지는 않지만, 복잡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기엔 여전히 벅찬 영어실력을 가진 나는 세계인이 처음부터 "문법 예외 없는" "배우기 쉬운" 세계공용어를 배워서 소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게 진짜 있다. "에스페란토". 하여간 내가 생각하는 것들은 찾아보면 벌써 다 있다니깐.
https://namu.wiki/w/%EC%97%90%EC%8A%A4%ED%8E%98%EB%9E%80%ED%86%A0
에스페란토를 얘기하고자 하는 시상이 아니니까 너무 딴 산으로 가기 전에 인공 세계공용어는 이쯤에서 접어두고, 외국에 가도 다시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국제언어가 있긴 있다.
바로, 1234.... 아라비아 숫자.
그리고, SI Unit.
한국에서 배운 걸 바로 써도 세계 거의 어디에서도 통하는 마법의 언어. 누가 발명하고 통일했나 모르겠지만 참 편한 틀이다. 그런데, 아라비아 숫자는 문화권 예외 없이 거의 다 받아들인 것 같은데, SI Unit은 여전히 영미권에서 별로 인기가 없고 파운드, 인치, 피트가 여전히 대세다.(다행히 해당 문화권에서도 SI Unit이 뭔지 모르진 않는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5%AD%EC%A0%9C%EB%8B%A8%EC%9C%84%EA%B3%84
SI Unit은 프랑스어(Système international d’unités), 영어(International System Units)의 약칭이다. 영어 두문자만 보면 SI가 아니라 IS가 맞는 것 같은데 왠지 테러조직이 생각나고 좀 어색하다. SI가 IS가 아닌 이유는 프랑스어식 표기 때문인데 이는 국제 도량형 총회(國際度量衡總會, 영어: General Conference on Weights and Measures, 프랑스어: Conférence générale des poids et mesures, 약어 : CGPM)가 프랑스 파리에서만 개최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글 약어 표기도 전 세계 표준 통용어가 되는 날이 왔으면 하는 생각도 살짝 해본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5%AD%EC%A0%9C_%EB%8F%84%EB%9F%89%ED%98%95_%EC%B4%9D%ED%9A%8C
SI 단위계는 아래 기본 7개의 물리량을 정의한다. 이것을 SI 기본 단위라고 한다. 유도단위, 차원단위 등 들어가면 훨씬 더 복잡하지만 모든 걸 다 알 필요는 없겠다.
일반인들이야 길이, 질량, 시간 단위만 알아도 살아가는데 별 지장 없다.
다만, 오늘 주목해서 봐야 할 포인트는 K와 k.
기껏해야 대문자와 소문자의 차이일 뿐이지만 그 의미는 명확하게 다르다.
SI Unit의 기본 온도 단위는 우리가 일상생활에 흔히 쓰는 ℃단위가 아니다. 대문자 K, Kelvin이다. 0℃는 273.15K니까 ℃ 단위를 K 단위로 바꾸려면 단순하게 섭씨온도에서 273.15만 더하면 된다. 0K는 절대영도라고 해서, 이상기체의 부피가 0이 되는 온도를 의미한다.
이번에는 소문자 k, kilo에 대한 SI Unit 정의.
kilo는 훨씬 쉽다. 십진수로 1,000를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kilo는 대문자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K, Kelvin 단위와 겹치기 때문이다.
평소 애독하는 작가님의 새 피드가 올라왔다.
진솔하면서도 유머가 있고 유쾌하며 때론 묵직하고 때론 울림을 주는 생각의 깊이와 표현의 생생함이 남다른 작가님인데, 오늘은 그 글이 아닌 사진이 무척 불편하다.(그 작가님 잘못이 아닌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하다... ㅠㅠ)
불편함이 느껴지시는가?
불편함에 어쩔 줄 몰라하는 당신은 아마도 찐 물리학도 또는 공학도.
Km... 제발 이러지 맙시다. Kelvin Meter가 대체 무슨 말인가요?
km가 맞습니다. kilo를 뜻하는 k는 늘 소문자여야 합니다.
저 LCD 화면을 설계한 Lifefitness.com은 미국계 다국적회사처럼 보이던데, 하여간 영미권 국가들의 SI Unit 이해도는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사족이지만 제일 하단의 "평균 운동 속도" 표기도 잘못되었다. 속도란 어떠한 물체의 위치 변화를 뜻하는 변위를 변화가 일어난 시간 간격을 나눈 값을 말하는데, 저건 km 당 걸린 이동시간을 말하는 거라서 "속도"가 아니다. 미국 설계를 한국어로 억지번역하다 벌어진 일 같은데 디테일이 부족하다.)
마찬가지로, kg도 Kg으로 적으면 안 된다. 내가 보기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건 "국제적인 약속"이기 때문이다. Kg을 원칙대로 해석하면 Kelvin Gram이 된다. 암만 눈 감고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불편하다.
같은 의미로 KPH(kilometers per hour) 도 원칙적으로는 소문자 kph로 표기함이 맞지만, 이건 KPH라는 통 단위가 굳어진 경향이 커서 대문자와 소문자가 모두 통용되긴 한다.
언어란 사회적 약속이다.
내가 그렇게 쓰기 싫다고 내 편한 대로 임의로 쓰게 되면 사회적 약속이 무너진다.
특히 물리량을 정확히 다루는 과학과 공학의 세계에서는 민감한 문제가 된다.
한국어나 영어만 언어가 아니다. 통용되는 팬터마임, 아이콘, 단위, 숫자, 브랜드... 넓게 보면 이런 것들도 모두 사회적 소통약속을 정의한 언어의 일종이다.
자, 그러니까, 오늘부터는 K(Kelvin)과 k(kilo)의 차이점을 명확히 인지하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퍼뜨려 주시면 좋겠다.
이왕 하는 김에 "전기세"가 아니고 "전기요금"이라고도 한 마디 더 해주시면 참 좋겠다.
https://brunch.co.kr/@ragony/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