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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May 24. 2024

"밥솥을" 소리내서 읽어봅시다

한글 제대로 못 읽는 한국인이 왜 이리 많은건지...

 언제나 시험쳐서 뽑힌 아나운서가 읊어주는 방송만 보며 살다가 이국땅에서 주로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느끼는 게 하나 생겼다.


 아니... 한국어가 모국어일 텐데, 왜 이렇게 잘못된 발음을 하는 공인들이 많은걸까.


 주의깊게 잘 들어보면 전문 발음교육을 다시 받고 시험쳐서 뽑힌 아나운서들 빼고는 "닭을[달글]" "흙을[흘글]" 발음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더 드문 세상인 것 같다. 비슷한 겹받침을 가진 "앉아[안자]"를 [앚아→아자], "핥아[할타]"를 [핱아→하타]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정말 단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는데, 왜 "닭이[달기]"라는 말은 [닥이→다기]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이다지도 많은 건지 모르겠다. 이 발음이 더 대세라서 차라리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 대신에 ""이 표준어 자리를 대신할 것 같은 불길한 생각도 든다.


 말은 생명력을 가진 거라 어원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관용적으로 어떤 걸 더 많이 쓰면 결국 그걸 표준으로 인정해줘 버린다. 그런데 "" 대신에 ""이 표준어가 되면 나는 참 서운할 것 같다. 나는 계란 대신 "달걀"이라는 어감이 훨씬 좋은데, "달걀"은 "닭의 알"이 어원으로 발음이 연음 되어 연음 된 글자가 표준으로 굳은 것이다(닭의 알 → 달긔알 → 달걀). ""을 [닥]으로만 읽고 연음되는 말에서 "ㄹ"받침을 무시하는 현상이 오래전에 있었다면 "닭의 알"은 [닥의알]로 발음되었을 테고 시간이 지나 [다긔알] → "다걀"이라는 이상한 어감의 단어가 지금의 "달걀"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단어 모양도 예쁘고 발음도 예쁜 ""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닭을[달글]", "닭이[달기]", "닭은[달근]" 등의 표준발음을 연습해서 주변에 널리 알려주시면 참 좋겠다. 공중파 방송이나 유명 유튜브 채널에 나와서 잘못된 발음으로 강연, 토론, 만담하시는 분들 보면 해당 발음 시 "삐~~~" 처리를 해주고 싶은 충동이 든단 말이다.


 "" 발음에 대해선 지난번에 한 번 다룬적이 있었는데 여전히 잘못된 발음 압도적 1위라서 다시 강조를 해봤다. 앞으로 700번쯤 더 꺼내면 사회에 조금 전파가 되려나... 암튼 오늘의 주제는 사실 "닭"이 아니라 "밥솥"이다.


https://brunch.co.kr/@ragony/339




 한국인이라면 이런 거 하나 집에 없을 리가 없는 밥솥.

 자, 이제 다음 단어를 읽어봅시다.


 밥솥이. 밥솥을. 밥솥만


 어떻게 읽으셨나요?


 먼저 "밥솥이"부터


1. [밥소치]

2. [밥쏘치]

3. [밥소티]

4. [밥쏘티]

5. [밥소지]

6. [밥쏘지]

7. [밥소시]

8. [밥쏘시]


어째 다 한번씩은 다 들어본 듯???


 그럼 "밥솥을"은요?


1. [밥소틀]

2. [밥쏘틀]

3. [밥소츨]

4. [밥쏘츨]

5. [밥소슬]

6. [밥쏘슬]


 어... 역시 다 익숙한 듯???


 상대적으로 좀 쉬운 "밥솥만"으로 마무리


1. [밥솓만]

2. [밥쏟만]

3. [밥손만]

4. [밥쏜만]


 사실 이건 한 소리만 들릴 수밖에 없음. 글로 적으면 다 달라 보이지만 소리내서 읽으면 한 소리로 결국 귀결.


 자, 다 정답 찾으셨나요?

 정답 공개합니다.



정답 2번. 밥솥이[밥쏘치]

 음운학상 연음되어 [밥쏘티]로 연결되는 발음이지만 "구개음화"가 일어나서 [밥쏘티]가 [밥쏘치]로 변형되는 발음. 구개음화의 다른 예시로는 "닫히다[다치다]", "묻히다[무치다]" 등이 있다.


정답 2번. 밥솥을[밥쏘틀]

 [밥쏘치]에서 변형된 구개음화 발음 탓에 쓸데없이 구개음화를 가져오지 말아야 할 단어에도 구개음화를 적용해서 가끔씩 [밥쏘츨]이라는 발음을 듣는 단어. 그냥 연음화만 적용해서 [밥쏘틀]이라고 발음하는게 편하고 이게 맞다. 


정답 4번. 밥솥만[밥쏜만]

 사실 세번째는 좀 억지 전개라 ㄷ받침은 ㅁ초성앞에서 비음화되어 ㄴ발음으로 바뀌므로 이 문제 보기의 1,2번은 저렇게 발음 자체가 안 되며 ㅅ이 경음화되어 [밥쏜만]으로 발음된다. 따로 연습할 필요가 없는 쉬운 예.




 인터넷과 통신의 발달로 요샌 누구나 개인방송을 만들 수 있는 시대라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콘텐츠를 무료로 여기저기서 즐길 수 있는 세상이다. 딱딱한 공중파 방송보다 훨씬 재미난 개인 채널도 많기도 하다.

 다만, 그에 비례해서 잘못된 발음을 쓰고 계신 성우 또는 내레이터 분들이 너무나 많다. AI 더빙 목소리를 쓰지 않고 아직은 듣기 훨씬 편안한 본인의 목소리를 녹음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오나 이왕 하시는 거 정확한 발음에 좀 더 신경 써 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 크게 중요해 보이진 않는 주제를 길게도 써봤다.


 HBAF, 바프. H는 묵음이라고 그렇게 친절하게 잘 알려주면서,

 father는 [파더] 아니고 [f화~thㅓ]라고 피를 토하며 교육하면서도


 어째 한국어 발음에 대해선 초등 국어시간에 아, 그렇구나 저런 식으로 설명하는구나 잠깐 스치듯 듣고 지나간 기억 말고 누가 자세히 가르쳐준 기억이 없다. 어차피 언어란 건 사회화의 산물인 거고 남이 못 알아들을 정도의 발성은 어차피 도태가 되니 생존이 안 되겠지만 엄연한 어원과 발음규칙이 있는 표준 한국어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한국인이 많다는 건 국어 교육 체계에 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어쨌든 그렇다고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모든 한국인이 표준 발성법에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말하는 이도 훨씬 교양 있고 고상해 보이며 듣는 이의 귀도 훨씬 편안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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