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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May 19. 2022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세요

만난지 5분만에 비자 보증?

 나는 파키스탄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교민이다.


 참 다행인게, 파키스탄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매우 호의적이다. 기본적으로 이슬람 국가로 국민의 97%가 무슬림이며, 방랑자에게 친절하라는 꾸란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들은 말 그대로 참 친절하다. 더욱이, 파키스탄은 세계에서 최저임금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로 외국인 신분으로 막노동으로 돈을 벌어갈 수가 없는 나라이므로, 이 나라에 입국한 외국인은 피부색에 관계없이 무조건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으로 쳐 주는 경향이 강하다. 어지간한 곳을 가도 남자 외국인을 부르는 기본 호칭이 격존칭인 "Sir" 이다. 코로나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동양인 인종비하 및 묻지마 테러가 나는 세상에 가는 곳마다 귀빈 대접이라니 참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파키스탄 재입국할 때 비행기에서 겪은 일이다. 비행기는 비교적 한산했는데, 내 옆자리에 현지 파키스탄인이 앉았다. 비행기를 자주 타 본 경험이 없는지, 고정단추를 해제해서 의자를 뒤로 젖히는 방법을 몰라서 헤매는 것을 잠시 도와주었더니, 경계를 풀고 폭풍 질문을 해댄다. 어디서 왔느냐, 중국인이냐, 왜 왔느냐, 무슨 일 하느냐, 어디 사느냐, 가족은? 애들은? 갑자기 무슨 입사 면접보는 줄 알았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본인 얘기를 해 댄다. 자기는 두바이와 카타르에서 운전기사로 오래 일해왔는데, 이번에 가족을 만나러 귀국을 한다고 했다. 급발진은 이제부터다. 대뜸, 우리 회사에 자기가 가서 일하면 안 되냐고 물어본다. 당장 빈 자리가 없을거라고 하니, 이번에는 한국에서 일하면 급여가 높지요? 하고 묻는다. 내가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라 임금이 여기보다 최소 6~7배는 높을겁니다 했더니, 한국에는 어떻게 가냐고 묻는다. 여기서 한국가는 직항 비행기는 없고 그래서 내가 도하공항에서 이슬라마바드 비행기를 타고 온 이유다 라고 했더니, 그거 말고 아무나 가서 일할수 있냐고 묻는다. 당연히 안 되지. 외국에 가서 일하려면 취업비자를 받아 입국하는게 상식 아닌가. 취업이 목적이라면 당연히 취업비자가 필요할 거라고 말해주니, 이번에는 선을 넘는다.


 "그럼 당신이 비자 보증인이 되어줄 수 있나요?"


 아니 이거 뭔가. 내가 왜? 첫 인사부터 저 말이 나오기까지 채 5분이 안 걸린것 같다. 뭔가 절박한 건 알겠지만 아무리봐도 이건 정상이 아니다. 지금부터는 방어모드. "나 역시 회사 직원으로써 이곳에 돈벌기 위해 온 사람이며, 당분간 한국에 재입국할 계획 자체가 없으므로 당신의 취업비자를 만들어 주는 것을 돕기는 어렵다. 피곤할 텐데 지금부턴 푹 쉬면서 당신의 시간을 가지세요." 하며 급하게 기내 영화서비스를 찾아 틀고 헤드셋으로 내 귀를 덮어버렸다. "더 이상 말걸지 마세요."의 바디액션.


 대단한 친화력과 붙임성이기는 한데, 나가도 너무 나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경험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나는 이곳에서 머리를 처음 올린 골프초보 골린이인데 그린에서 처음 만난 성실한 골프캐디와 편한 마음으로 전화번호를 교환한 적이 있다. 다음에 골프 칠 일 있으면 미리 자기를 찾아달라면서. 아, 그때 전화번호를 받기만 했었어야 했는데 내 번호도 호의로 알려준 게 문제다. 매 금요일 오후만 되면 먼저 문자가 온다.


"Sir, What's your golf plan in this weekend?"


 혹여나 다른 캐디 연락이라도 할까봐 철통방어하겠다는건가? 아니 왜 니가 왜 내 주말 스케쥴을 미리 알아야 하는데? 내가 필요하면 어련히 알아서 연락하겠다는데. 한번 두번은 자기 홍보차 충분히 이해하는데 세번 째 같은 문자를 받고는 앞으로 다시는 내 프라이버시인 주말 계획을 먼저 묻지 말라며 경고문자를 보내버렸다.


 어느 날 골프연습장에서 똑딱이를 하고 있는데 훤칠한 잘생긴 청년이 와서 말을 건다. 반갑다 어디서 왔느냐 이 곳 생활은 만족하느냐 어디 사느냐 등등등. 일반 서민처럼 보이지 않는 부유한 옷차림과 완벽한 영어를 쓰는 능력이 매우 신뢰감을 준 덕분에 나도 그와 명함을 교환했는데, 프리랜서 골프코치다. 그때까진 가끔 연습장에 와서 만나면 도움받을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 하고 나도 가볍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이 친구도 본색을 드러낸다. 저녁에 쉬고 있는데 왓츠앱이 울린다. 아까 그 친구다. 자기는 아마추어 골프대회에서 우승도 하고 골프논문도 써 낸 실력자니까 주변에 골프레슨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소개시켜 달랜다. 본인이 쓴 논문도 보내준다. 그리고 자기는 영어도 잘 하고 대인관계도 좋은 사람이라 무슨일이든 할 수 있으니 회사에 빈 자리가 있으면 추천해달란다. 응? 골프말고 이제 취업추천? 참 적극적인 친구다. 아니, 필요하면 내가 연락한대두...


 내 첫 골프코치는 조금 더 나갔다. 자기를 우리회사 교육강사로 채용해주면, 모든 한국직원에게 공짜로 골프코치를 해 주겠단다. 아니 이 친구야, 그게 왜 공짜니. 그리고 나 이 회사 사장 아님. 내 직권으로 회사 직원으로 골프강사를 채용했다간 내가 먼저 잘리고도 남을 판이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무척 살갑고 친절하다. 그런데, 때로는 그 친절의 목적이 무엇인지 경계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겠다. 방어않고 넋놓고 있다가 깜빡이도 안 키고 훅 들어오면 심히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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