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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May 22. 2022

한번 맛 본 편리함은 내려놓기 힘들다

파키스탄에서 디지털 도어록 설치했던 고군분투기

 나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수도의 대표적인 주상복합타워인 센터로스 아파트에 산다. 파견 한국인들을 위한 주거 옵션은 이곳과 외교단지 안에 위치한 카라코람 아파트로 대표되는데, 외교단지는 블록 전체가 철통 보안구역이라 인가받은 자가 아니면 거리 자체를 들어갈 수가 없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며, 센터로스 아파트는 아파트 입구에서 24시간 무장 보안요원이 지키며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도록 건물 전체가 경호 관리를 받고 있다. 외교단지가 아이들이 집 밖에서 뛰어놀고 산책이나 조깅 등 외부활동이 자유로운 반면 쇼핑몰이나 음식점 등과 거리가 있어 편의를 누리기가 좀 불편한 단점이 있고, 센터로스는 도심의 섬 같은 느낌이라 모든 생활이 건물 내에서만 이루어지니 특히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은 다소 갑갑함을 느낄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어쨌든 상기의 안전 관리상의 이유로 파견 한국인들은 대부분 센터로스 아니면 카라코람에 살고있다. 외곽 서민주택을 빌려 살 수도 있지만, 24시간 보안요원을 따로 배치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겠다.


센터로스 주상복합타워.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제일 왼쪽의 A타워. 뒤쪽의 흰 건물은 이 나라 최대의 모스크인 파이잘 모스크.


 센터로스 아파트는 이슬라마바드 내에서도 임대료가 가장 비싼 건물에 속한다. 한국으로 치면 타워팰리스나 잠실 롯데타워 정도 되는 건물이다. 내 현지 급여보다 이 집 임차료가 더 비싸다. 이 나라 물가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고 생각하지만, 안전과 편의성을 내세워서 우리 같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임대하는 부동산 성격이라 "아니면 말고" 해도 얼마든지 수요가 있는 건물이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비싼 임대료 시장이 유지가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무조건 매입사택으로 운영하는 게 장기적으로 회사에 득이 될 텐데, 당장 현금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 회사 사정 상 해외 부동산 매입 건의가 통할 거라고 기대하긴 힘들다.


 올 초 집주인과 임대차 재계약을 하면서, 몇 가지 수리를 요구했다.

 집이 영국풍이라 실내조명이 너무 어둡다. 한국식 직사 조명이 아니라 모든 조명은 반사 조명식이라 분위기는 부드럽지만 밤이 되면 침침하다. 그래서 조명 보강공사를 요청했다. 그리고 현관문이 당연하게도 열쇠-자물쇠 아날로그 방식이다. 매 번 열쇠를 챙겨야 한다. 불편하다. 그리고 잃어버릴까 늘 불안하다. 한국에서 이미 디지털 도어록의 편리함을 몸으로 익히고 살아왔는데 다시 20년 전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현관도 디지털 도어록으로 바꿔주세요." 라고 요구했다.


 돌아온 대답은 "그게 뭔데요?" ㅡ_ㅡ;;;

 아. 그렇지. 여기는 파키스탄. 생각해보니 내가 이 나라에서 현재 한인들 집 말고는 디지털 도어록을 본 적이 없다. 이미 설치된 집에 가서 어떻게 여기엔 디지털 도어록이 있는지 물어보니, "아, 이거 한국에 갔을 때 물건만 사 와서 여기 열쇠공 불러서 설치했어요."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디지털 도어록이 아닌 곳을 찾기가 이제 더 어려운데, 이런 나라가 거의 세계에서 유일하댄다. 유럽이나 미국도 디지털 도어록이 보급된 곳이 있기는 하지만, 보안성에서 신뢰하지 않아 국민들의 다수가 전통적인 열쇠 방식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보안과 직결된 상황이니 레몬법 등에 엄격한 미국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분석글도 있다. 이런 거만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신기술 신문물을 국가적으로 받아들이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나라다. 전 세계 메이커들이 테스트베드 시장으로서 우리나라를 주목하는 이유가 그 이유다. 다른 나라는 없던 기술의 신문물이 시장이 생소해서 안 팔리는데, 우리나라는 국민 전체가 얼리어댑터 아닌가. 신기한 민족이다.


 디지털 도어록, 여기서 살 수 없나? 한번 찾아보자. 알리바바 등 해외 직거래 사이트에서 주문하면 통관, 해외배송비 등 제품 가격의 두세 배는 줘야 하고, 실상 언제 올지 기약도 없댄다. 파키스탄 국내 쇼핑몰을 뒤져봐도 어디서 만든 건지도 모를 허접한 것들이 제품값만 3만 루피(약 20만원) 이상이다. 아직 시장 활성화가 전혀 안 되어있구나. 허긴. 이 나라 최저임금이 월 3만 루피가 안 되는데 어떻게 디지털 도어록을 쓰겠나. 어쨌든 제품은 한국 가서 업어오는 걸로 결정. 내가 한국 가서 사 오고 영수증을 집주인에게 제출하면, 집주인이 그만큼의 대금을 나한테 주는 걸로 협상 완료.


내돈내산이지만 홍보글로 보일까봐 살짝 모자이크 처리


 사실, 한국에선 도어록이 안 비싸다. 출장 설치비를 포함하면 몇십만 원 되겠지만, 제품 자체는 쓸만한 것 골라도 10만 원 안쪽으로 충분히 많다. 나는 비디오카메라도 와이파이 연동도 필요 없으므로 딱 기본만. 디지털 번호키 되고 자동 잠김만 되면 되는 걸로 골랐다. 보강부품 포함 7만 원. 싸다. 100달러 이내니까, 통관 시에도 걱정 없다. 한국 중간 귀국 시 가서 업어왔다.


 이제 설치하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부터는 내 일 아님. 집주인이 관리인을 통해 열쇠공을 연결해주었고, 방문하더니 능숙한 솜씨로 뚝딱 설치해준다. 수고하셨어요. 슈크리아(고맙습니다). 하고 보내려는데, 뭐가 좀 이상하다. 웨이트 웨이트. 도어록 잠금 걸쇠의 스크루를 하나만 박아놨다. 아니, 이러면 조만간 풀려내려 오잖아요. 보강해주세요. 열쇠공이 난감해한다. 기존 잠금장치가 더 커서 파낸 자리에 설치했더니 스크루가 안 박힌댄다. 허공에서 놀고 있다. 아니, 그럼 더 긴 스크루를 찾아오던가, 내부를 다시 채워 양생 후에 설치하든가 알아서 해야 할 거 아닌가. 그냥 앞에서 눈속임만 해놓고 사라지면 어쩌냐고.


 더 긴 스크루를 찾아와서 제대로 박든가, 목문 접착제를 쓰던가, 내구성 있게 설치하지 않으면 돈도 안 주겠다고 하니, 그제야 움직인다. 타협한 대안은 파 낸 자리를 나무쐐기로 채워 넣고, 그 자리에 다시 스크루를 박아서 튼튼하게 고정하는 걸로.



설치 전/후. 썩 깔끔하진 않지만 그나마 내가 빡빡 우겨서 이만큼이라도 된 거임. 내려놓고 살자. 되는게 어디야.


 아니, 거 봐. 할 수 있자나. 왜 꼭 지적해야 하는건데. 이게 좀 이 나라 사람들 문제다. 일을 마감할 때 정성이 부족하다. 특히 건설현장에선 업무가 명확히 구분이 되어 있어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페인트 칠을 다 하고 그 위에 프레임을 올리는 공정이 있다면, 프레임을 올리기 전 페인트가 잘 먹었나 빈 곳은 없나 확인하고 다음 기능공이 그 일을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데, 프레임 설치 기능공은 페인트 작업에 관심이 0.01도 없다. 일 다했다고 검수를 가면, 아니 여기 페인트도 덜 되었는데 이 위를 덮으면 어떡해요?라고 물으면 그건 자기 일이 아니란다. 난간을 설치하는 파이프 용접공이 따로 있고 용접을 갈아내고 광을 내는 광택공이 따로 있는데, 난간에 용접 용입 불량이 생기면 광택공이 용접공에게 알려주고 마무리를 잘해야 할 거 아닌가. 검수하러 가보면 여기저기 곰보 투성이. 아니 이거 눈에 안 보여? 그러면 그거 자기일 아니란다. 매사가 이렇다. 내가 이런 거까지 지적해야 하냐고 현장대리인한테 뭐라 하면 첫마디가 "인샬라(신의 뜻대로)". 아 진짜. 못 해 먹겠다.


 어쨌든 100% 만족스런 설치상태는 아니지만, 한국산 디지털 도어록, 잘 동작한다. 이제 열쇠 들고 다닐 일도 없고 열쇠 잃어버렸나 불안할 일도 없겠다. 내 필명처럼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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