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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Oct 11. 2024

한 달 만에 폰이 왔다

타의적으로 폰 없이 한 달 살기

 지난달, 잠시 한국에 들렀었다.


 나는 해외파견자 신분이라, 비싼 스마트폰 요금제를 유지할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 외국에서 딱 본인인증 또는 금융인증용 SMS만 받을 수 있으면 된다. 나머진 (쫌 느리긴 하지만) 현지 인터넷으로 어지간한 건 다 해결 가능하다.


 출국 직전에 기존에 쓰던 통신사를 갈아타고, 알뜰폰 요금제 중 최저가 요금제를 찾아 갈아타고 왔었다. 당시 설계했던 요금제는 약정기간 없이 월 4,400원(세금포함)에 1GB 데이터를 제공하는 SKT 망을 빌려 쓰는 요금제. 한 달에 서너 번 쓸까 말까 하는 본인인증 SMS 서비스지만 없으면 또 갑갑한 거라서 이만하면 리저너벌 대충 만족하며 쓰고 있었는데,


 이래저래 인터넷 서핑하다 말고 알뜰폰 특판 요금제가 눈에 팍 띈다!



 LG텔레콤 망을 빌려 쓰는 알뜰망이고, 요금은 심지어 월 110원!(세금포함)에 데이터를 무려 5GB나 준다. 단, 기존 요금제처럼 기간 무제한이 아니라 1년 뒤에는 16,500원으로 청구되는 함정이 존재한다. 괜찮아 괜찮아. 그전에 또 갈아타면 되지 뭐.


 짧은 한국 휴가기간 중에 갈아타고 가야 하니 마음이 급하다.


 택배로 유심을 배송해 준다는데 그거 기다릴 시간이 없다. 마침, 나처럼 기다리는 거 싫은 사람을 위한 "지금배송" 서비스가 있다. 신청만 하면 최장 2시간 안에 택배기사님이 집까지 유심을 가져다주는 서비스. 역시 한국이야. 뭐든 빠르고 좋구나.


 택배로 시키면 2,200원이면 되는데 이틀 사흘이나 기다리기 싫어서 8,800원이나 하는 "지금배송" 서비스를 선택해서 유심을 배송시켰다. 우와, 시킨 지 30분 만에 번개같이 진짜 유심이 배달된다. 빠르긴 빠르구나.


 알뜰폰 홈페이지 들어가서 다다닥 정보 넣고 유심번호 넣고 번호이동 신청하니 번개같이 이동개통 완료. 이제부턴 월 110원만 들이고도 SMS 다 쓸 수 있고, 가끔 한국에 휴가 나와도 5GB 데이터를 넉넉하게 쓸 수 있겠다. 완전 럭키비키!


 고렇게 번호이동 후 한 사흘 잘 썼나?


 주말에 가족 동반 나들이를 가려는데 아침부터 폰이 이상하다.

 폰 상단에 뜨는 에러메시지.

"SIM 카드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일? 새 SIM 끼운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환장하겠네.

 마침 고장메시지가 뜬 날이 토요일이라 정말 아무 조치를 못 했다.

 갑갑한 상태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9시 업무개시 시간이 되자마자 1번으로 고객센터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요새 불량 SIM 문제가 간간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새로 구매한 SIM이 불량인 듯한데, 새 걸로 보내드릴게요."


"저기, 잠시만요. 저 수요일에 해외출국 해야 하는데요. 오늘 SIM을 보내면 내일 오나요?"


"그건 확답드리기 어렵습니다. 고객님 계신 장소에 따라 최대 3일이 걸릴 수 있습니다."


"아, 안되는데. 그럼 제 돈을 다시 내더라도 '지금배송' 유심을 한 번 더 이용할게요."


"네. 그것도 가능합니다. 그럼, 유심을 구하신 다음에 유심 번호를 홈페이지에 재등록해주고 전화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제 다시 지난주에 했던 유심 주문을 또 하고, 유심이 오기만 기다렸다.

 한 시간 후쯤, "띵동" 아, 왔구나. 감사합니다.

 그런데, 유심을 열어보려니 뭐가 좀 이상하다. 내가 주문한 통신사가 아닌데?



 다시 한참을 기다려서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다.




"유심이 오긴 왔는데, 000 모바일이라고 적혀 있어요. 이거, 공용으로 사용되는 건가요?"


"아, 고객님, 그건 저희 통신사에서 쓸 수 없어요.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다시 바꿔드릴게요."


"아.... 네...... 에............"




 이미 여기 몇 시간째 잡혀있는겐가. 나도 하루 바쁜 사람인데.

 또 하염없이 한 시간쯤 더 기다리니, 아까 배송 왔던 택배기사님이 다시 오셨다.




 "아, 죄송합니다. 급히 오다 보니 실수했어요."


 "네..... 에........ 고맙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죄송하다는데, 공짜로 바꿔줬고 두 번씩이나 왔는데 어떻게 화를 내냐. 황금 같은 한국 휴가시간을 벌써 반나절 이상 날려먹은 게 부글부글 화나긴 하지만 뭐 어떡해. 수습부터 해야지.


 다시 통신사 홈페이지 들어가서 깨알같은 유심번호 등록하고, 고객센터 몇 십분 대기 탄 후 겨우 연결돼서 재개통 승인을 받고 폰을 살렸다. 휴우.


 주말 이틀 폰 없이 살다가 이제 좀 세상에 연결된 것 같네.


 이제 설마 또 퍼지진 않겠지.


 두 번째 바꾼 유심을 들고 한국 휴가 종료 후에 일터가 있는 파키스탄으로 돌아왔다.




(이때만 하더라도 휴대폰 두 번째 유심에 아무 문제가 없었음...)

https://brunch.co.kr/@ragony/441




 이번 유심은 파키스탄 현지에서도 로밍도 잘 되고, 문자도 잘 오고 잘 동작한다.

 복귀 후 한 열흘쯤 로밍을 썼나. 그런데. 그런데에.


"SIM 카드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왓 더.


 아니 여보세요. 여기 외국이란 말입니다. 나보고 어떡하라고.


 무언가 찾아보면 답이 있을 거야. 미친 듯이 구글링 시작.

 그리고 알게 된 진실.


 K3630 시리즈 유심은 딱 두 종류가 있습니다. "고장 난" 유심과 "고장 날" 유심


https://blog.naver.com/m00a/223571905454


 내 유심이 뭐였지?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K3630" 시리즈.


"쓰레기 같은" K3630 유심이 아니라 그냥 "쓰레기" 임


 나도 참 운이 지지리도 없는 게, 이게 "바로배송 유심" 서비스에 많이 뿌려진 유심이었는데 시간이 없다고 "바로배송" 서비스만 두 번 연짱으로 시켜 먹어서 이 사달이 난 거다. 흑흑. 두 번 다 K3630.


 나 말고도 정말 무수히 많은 피해자들.

 복구하는 방법은 K시리즈가 아닌, 신뢰성 높은 새 유심으로 갈아 끼워 재개통하는 방법뿐.


 그런데, 여긴 파키스탄이란 말이다. 여기서 LG텔레콤 유심을 어떻게 사?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지, 마침 2주 후에 한국에서 복귀하는 파키스탄 파견자가 있음을 알았다. 급히 한국에 SOS를 친다.



"저기요, 요만코 저만코 한데, 파키스탄 올 때 유심 하나만 좀 업어다주심 안 될까요? 제가 집으로 배송시켜 둘게요. 정말 몇 g 안 해요.(파견자는 짐 무게에 매우 민감하다. 먹거리 하나라도 더 담아와야 하기 때문에.)"



 폰이 퍼진 채로 2주를 기다렸다가 드디어 새 유심을 받았다.

 이번 유심은 불량이 거의 없다는 U8800 시리즈. 설마 또 고장 나기만 해 봐라.



 이제 세 번째 홈페이지 유심 등록. 많이 해봐서 유심 등록 생활의 달인 되겠다. 바람 같은 속도로 후다닥 입력하고 인터넷 국제전화로 고객센터 전화해서 개통주문하고 새 유심을 전화기에 끼워서 개통 시전.


 어.


 어어어...


 안 된다. ㅠㅠ

 재개통 로밍 문자가 안 온다.


 뭐가 문제야?


 또 폭풍검색.


 LG텔레콤 유심은 해외에서 유심 다운로드가 안 되니, 반드시 국내에서 개통 확인 후 해외로 가져가야 로밍이 된단다.


 ㅠㅠ


 ㅠㅠㅠㅠㅠㅠ


 정말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니. 이거 또 한국에 가져가야 하네?


 하아, 그럼 이걸 페덱스로 보냈다가, 한국에서 누군가 껐다 켰다 했다가, 다시 나한테 보내야 하는데. 아흑. 생각만 해도 그 비용과 과정이 끔찍할 정도로 귀찮게 느껴진다. 안해안해.


 그래도 다행히 정말정말 다행히, 다음 달에 한국으로 중간휴가를 가는 다른 파견자 일정이 있어서 또 어렵사리 부탁을 했다. 이 유심 가져가서 한국 가서 유심 개통 좀 해주세요 흑흑... 딱 제 폰 이 상태로 껐다 켰다 두세 번만 해 주시면 돼요. 대체 모양 빠지게 몇 번째 부탁하는 거냐.


 그리고, 오늘 드디어. 한국에서 개통된 유심과 폰이 왔다.

 ㅠㅠ 로밍 문자가 된다.





 본문은 각색해서 간단히 썼지만, 실제 고장내역 정확히 인지하기까지 무수한 삽질과 인터넷 검색, 고객센터 통화 연결되기까지의 끊임없는 기다림, 폰 없는 상태에서의 불안한 외출과 약속 등 내가 유심 두 번 퍼지고 당한 마음고생 몸고생 시간낭비 돈낭비 생각하면 진짜..... 아흑....


 쓰레기보다 못한 K3630 유심 불량 제품을 제조 유통시킨 제조사 코나아이는 정말 반성하고 정신 차려야 한다.


 요즘엔 지금배송 어떡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봤더니...



  에효. 진작에 좀 조치할 것이지. 꼭 사고는 사고대로 치고 돈은 돈대로 다 물어주고 욕은 욕대로 먹고 이런대냐.




 폰 없이(정확히는 한국 유심 없이) 한 달 살아본 소감.

 사실 한국 전화번호 없어도 여기서 살아가는 건 큰 지장 없다.

 다만, 본인 인증문자를 받지 못하니 각종 민감한 사이트 이용이 어렵고, 주요 금융거래 시 막히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마누라님이 이용하시는 내 카드 내역서가 실시간 문자로 안 날아와서 뭘 어떡하고 사는지 완전 깜깜이 상태였음.


 그거 말고는 뭐, 급한 연락은 여전히 카톡이나 왓츠앱을 통해 인터넷으로 주고받고 문제없었고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해외 3년 차 거주 중으로 한국에선 아무도 내 전화번호로 전화를 거는 사람이 없어서 한국 전화번호 없는 한 달이 그럭저럭 살만 했다.


 그래도 온라인상에서의 본인 인증은 한국 전화번호가 있어야만 가능한 경우가 태반이니, 외국에 파견생활 하더라도 한국 전화번호가 없으면 안 된다.


 월 4,400원 고정비 지출을 월 110원으로 바꿔보려다 너무 많은 비용과 시간을 날렸다. 벌써 한국과 파키스탄을 두 번이나 오간 세 번째 유심은 제발 퍼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나 정말 피곤하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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