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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경'을 해야지 '경후식'을 하면 안 되는 이유

프랑스 파리에서의 첫 만찬

(이전 이야기에서 계속)


https://brunch.co.kr/@ragony/530


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런던에서 짐 싸서 떠나며 킹스 크로스 역(King’s Cross station)과 성 판크라스 인터내셔널 기차역(Saint Pancras International Station)을 잠시 둘러보고 유로스타 탑승해서 프랑스 파리 북역까지 이동하고 18구역에 있는 현지 호텔(앙글레테르 호텔) 찾아가서 체크인 후 샤요 궁(Palais de Chaillot)에 가서 에펠탑 배경으로 사진찍고 이에나 다리(Pont d'Iéna) 건너 바토 파리지앵(Bateaux Parisiens) 유람선 타고 와서 에펠탑 인근에 있던 프랑스 대중식당(Ribe) 가서 저녁먹고 온 이야기


당일 19시부터의 여행 기록.






칼바람 맞으며 유람선 타고 내렸더니 춥고 허기가 집니다.

해도 완전히 지고 깜깜한 밤입니다. 파리를 첫 도착했던 그날 공식 일몰시각은 17시 10분이었습니다.


"누야, 춥고 피곤해서 안 되겠다. 가까운 곳 아무데나 들어가요."


원래 지도에서 봐 둔 음식점이 있긴 했지만, 피곤해서 한 발짜국도 더 가기가 싫네요. 동선보고 대충 가는 길에 있는 음식점 중에서 밖에서 봤을 때 적당히 사람이 있고 적당히 분위기가 좋은 곳 낙점해서 그냥 들어갔습니다.


"대충 여기 좋겠네. 가요."


https://maps.app.goo.gl/hPadnKkCAJtYgAEE9


사실 이때 살짝 눈치를 챘었어야 했어요. 추운데 왜 다들 밖에서 서서 술잔 한잔만 들고 서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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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분위기 자체는 고풍스러우면서도 깔끔하니 괜찮았습니다. 둥근 테이블과 빨간 의자도 프랑스 느낌이 났고요.


그럼 주문을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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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목이 마르니 맥주 두 병을 시키고요.

프랑스 전통요리인 양파 수프에스카르고(달팽이 요리)를 시켰습니다.

그걸론 간에 기별도 안 갈 테니 연어 스테이크파리지앵 샐러드도 같이 시켰습니다.

주문할 땐 숫자가 별로 눈에 안 들어왔어요. 1.8을 곱해야 하는 런던(파운드 환율)도 아니고 1.5 곱하기만 하면 되는 물가가 싼(유로 환율. 런던 대비 상대적으로 싸다는.) EU 권역 프랑스에 왔으니 좀 넉넉하게 시켜도 될 거라고 방심했어요 엉엉 ㅠㅠ.


뭐 어쨌든 다가올 뒷일은 일단 모르겠고~

시켜놨으니 먹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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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네켄데스페라도 익숙한 비주얼의 맥주와 식전빵이 나오네요. 보기만 해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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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거 앞에 두고 이때까지는 행복했습니다.



겨자마요네즈는 요렇게 1회용 포장에 담겨 나오네요. 빵 발라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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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피타이저 모두 다 나왔습니다.


일단 에스카르고 부터.

https://namu.wiki/w/%EC%97%90%EC%8A%A4%EC%B9%B4%EB%A5%B4%EA%B3%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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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직한 달팽이를 요렇게 전용 집게에 잘 고정하고 길쭉한 포크로 콕 찍어 빼서 먹으면 됩니다.

달팽이 요리는 처음이지만, 우리는 한국인. 소라도 골뱅이도 전복도 많이 먹는 민족이라 백골뱅이 먹듯 익숙합니다. 맛은, 골뱅이를 마늘 버터에 넣고 볶다가 파슬리 뿌린 맛이 납니다. 저게 15유로 메뉴였거든요. 한화 대충 22,500원 쯤 되는 금액이니 달팽이 한 마리가 4천원이나 하는 셈입니다.

쫀득야들 맛있긴 했지만 양이 너무 적었습니다. 말 그대로 애피타이저 요리죠.




다음 타자. 양파 수프.

말 그대로 볶은 양파를 푸우우우우우~~~욱 고운 맛의 수프입니다.



양파 수프의 풍부한 맛의 핵심은 양파를 긴 시간 동안 버터를 비롯한 기름에 볶아 캐러멜라이징하는 것이다. 어떤 레시피들은 반 시간 동안만 요리하는 것을 추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셰프들은 양파가 설탕같은 단맛을 낼 때까지 천천히 조리할 것을 권한다. - 나무위키 일부 발췌 -



캐러멜라이징된 양파는 맛이 특별해집니다. 약간 탔나 안 탔나 싶기도 한 비주얼인데 탄 맛은 아니고 특별한 단 맛이 강해져요. 캐러멜라이징된 양파에 적당한 부재료와 함께 물을 붓고 끓인 다음, 여기에 크루통이라 불리는 주사위 같은 튀긴 빵이 올라가고 그 위에 치즈가 또 올라갑니다.

양파수프는 우리가 콩나물국으로 해장하듯, 해장을 담당하는 대표적 요리 중 하나라고 해요.


https://ko.wikipedia.org/wiki/%EC%96%91%ED%8C%8C_%EC%88%98%ED%94%84


양파수프는 달달하고 속이 따끈해지는 느낌이 듭니다만, 깔끔하고 담백하게 먹는 건 한식이 최고인 듯싶네요. 한 번 먹어봤으니 됐다~ 싶은 정도의 크게 애착이 안 느껴지는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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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앵 샐러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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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을 예쁘게 낸 치즈와 햄, 양상추, 토마토, 버섯 등등 골고루 들어가 있습니다.

이만하면 비주얼도 맛도 합격이긴 한데 역시나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버리는 가격이 문제죠. 이거 한 접시가 21유로.(=31,500원)


오늘의 메인 요리, 연어 스테이크도 연달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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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싼 가격인데도 다른 플레이트 비해선 별로 예쁘지가 않네요.

잘 구워진 연어 필렛 한 덩이, 밥 한 컵, 종지 소스, 레몬 반 개 줍니다. 29유로(=43,500원).


본격적으로 먹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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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모두모두 합격입니다.

뼈 하나 없이 입에 살살 녹는 연어살 잘 넘어갑니다. 너무 텁텁하지도 않고 적당히 촉촉하게 지방도 잘 살아있고 고소하고 담백한 풍미도 잘 살아있습니다. 가장 비싼 이유가 있긴 있네요. 하지만, 유럽에서 연어가 그렇게 고급 어종도 아니고 대중적으로 가장 쉽게 즐길 수 있는 어류 중 하나인데, 요 한 덩이에 저 가격은 납득하기가 어려워요. 비싸요 비싸.



공포의 계산서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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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수프 : 15유로(22,500원)

에스카르고(달팽이 6마리) : 15유로(22,500원)

연어 스테이크 : 29유로(43,500원)

파리지앵 샐러드 : 21유로(31,500원)

하이네켄 1병 : 9.5유로(14,300원)

데스페라도 1병 : 10.5유로(15,800원)


합계 : 100유로(정확히도 맞췄네. 15만원)



이게 끝이 아닙니다.

세상에. 웨이터가 팁을 강요합니다.


"팁은 얼마로 하시겠습니까? 10유로? 20유로?"


프랑스는 팁이 의무인 사회가 아니거든요. 저 가격도 심하게 바가지 같은데 여기에 또 팁까지. 유도질문엔 넘어가지 않고 5유로만 더 얹어주고 왔습니다. 분위기상 팁을 건네지 않기는 어려웠어요.

ㅠㅠ






만찬 총평.


음식의 맛이나 식당의 분위기는 괜찮았습니다.

아주 정갈한 고급 레스토랑 느낌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현지 느낌이 나면서도 깔끔한 고풍스러운 식당이었어요. 이 날 프랑스식 음식이 처음이라 양파수프나 에스카르고의 맛을 비교평가할 입장은 아니었지만, 음식에는 정성과 기품이 들어가 있었고 메뉴 모두가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아, 진짜, 비싸도 너무 비싸군요.

여기가 드레스코드 있고 한 달 전부터 예약이 필요한 고급 레스토랑이면 저 가격도 착하다 소리 한단 말이에요. 근데 특별할 것 없는 일반 서민요리 조금 시켰다고 저렇게나 비싼 건 좋은 소리 못 들어요. 이래서 여행계획은 아주 촘촘해야 합니다. 첫날 식당을 꼼꼼하게 골라놓질 않아서요.


그리고.

먹는 건 뒷전이고 관광이 늘 우선되던 일정이다 보니 '식후경'이 아니라 '경후식'이 되어버렸는데 그래서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ㅠㅠ 그래서, 평정심 유지를 실패하고 평상시면 저지르지 않을 4개 요리코스를 질러버리는 대실수를. 그것도 이리도 비싼 식당에서. ㅠㅠ


첫날 저녁계획이 엉성하다 보니 실수를 좀 해 버려서 아직까지 맘에 걸려요. 이 식당 구글별점이 4점이 안 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죠. 에펠탑 인근의 식당인 이유로 다른 번화가 식당 대비 지나치게 비쌉니다. 거의 모든 기본메뉴가 타 프랑스 식당대비 1.5배나 비쌌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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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식당이 배짱장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에펠탑 최근접 식당이라 저 같은 어리숙한 여행객이 끊이질 않고 많이 찾기 때문일 겁니다.


손님 복작복작. 장사만 잘 되는 Cafe Ribe. 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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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거고 여전히 아름답고 존재감 넘치는 에펠탑.


그러니까, 에펠탑이 이렇게 잘 보이는 곳에선 가급적 노점도 식당도 이용하지 마시고요, 어지간하면 버스 서너 구간 타고 가서 괜찮은 곳 골라보세요. 비슷한 퀄리티라면 30% 이상 쌀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다음 생애에는 금수저나 다이아몬드 수저로 태어나세요. 흑흑 ㅠㅠ


암튼 먹긴 잘 먹어놓고 비싸다고 징징대는 오늘 작가의 파리 첫 만찬이었습니다.


어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빨리 끝난, 2025년 11월 14일 목요일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 다음 이야기 : 2025년 11월 15일 아침.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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