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례자 현황 Aug 06. 2021

더 지치기 전에 순례길#16. 어글리 코리안과 비빔밥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15일 차,  부르고스 ~ 카스트로제리즈 40km


부르고스 ~ 카스트로제리즈
Burgos ~ Castrojeriz





어글리 코리안, 어디에나 언제나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단지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특정하여 비난을 하고 싶지 않다. 어느 국가에서나 또 어느 곳에서나 항상 지킬 것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니까. 다만 이 길은 조금 다른 색깔의 장소라 생각해서였을까? 기대치가 조금 높아졌을지도 모른다.


 보통 알베르게는 10시에 소등한다. 이후에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다른 순례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조심조심 또 조용히 움직이며 누군가의 숙면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다. 그런데 오늘 이 밤, 부르고스에서 연박하며 공립 알베르게에 홀로 머물러 있는 밤에 문제가 생긴다.


 "건배~!" " 짠~!" 그리고 뒤 위이어 들리는 "생일~ 축하~합니다~" 하는 노래까지.


시간은 10시가 조금 넘었다. 아직은 다들 이해하는 눈치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니 곧 정리하고 마치겠지 하는 생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11시가 조금 넘었다. 알베르게 내부 야외 빨래터인지 어딘지 모를 가까운 곳에서 한국인들이 술자리 겸 생일 축하 자리를 마무리 짓지 않고 있다. 숙소 내부에선 욕하는 소리까지 들린다. 다들 이 소리가 한국인의 말소리란 걸 알까? 괜히 눈치 보이고 미안하고... 아니 알베르게 스태프들은 이런 관리는 하지 않는 걸까?


약 12시가 다 되어갈 때쯤 술자리는 정리되는 듯했다.  잠시 병과 캔 정리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더니 조용해졌다. 국적을 떠나 어디서든 TPO (Time, Place, Occasion) 매너는 지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와 함께 숙소에 머물고 있는 순례자들이 이 소리가 한국인들의 소리란 걸 눈치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잠에 들었다.


 


나는 또 잊었다. 물을 챙겨나가야 할 것을! 또!!


 전날의 소음에 스트레스로 잠에 들어서일까, 오전 5시부터 사람들의 인기척에 일찍 잠에서 껬다. 그렇지만 역시 난 야행성! 비록 5시에 일어났지만 몸만 일어났을 뿐 정신은 여전히 수면 세계에 있었다 :-) 차마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가수면 상태로 누워 질 낮은 수면을 즐기다 7시가 되어서야 몸을 일으켜 나갈 채비를 했다.


 아침엔 내 머리는 나의 머리가 아니다. 두뇌회전 없이 습관적으로 몸을 움직여 나오는데 걸으며 오늘 걸어갈 길 지도를 보니 오우 맙소사!  다음 마을까지 약 12km를 가야 해! 사실 이건 문제가 아니라 더 큰 문제는... 마실 물을 전혀!! 챙겨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Oh my gosh! 거리야 그렇다 쳐도 물이 없다는 건 정말 큰 문제다. 분명 며칠 전에도 이런 상황이 있어서 꼭 물을 잘 챙겨 나오자 생각하고 금붕어처럼 다시 까먹고 같은 실수를 반복해버렸.... ( 금붕어 모욕 아님 ㅋㅋㅋ )


 정말 오랜만에 (어쩌면 처음?) 아침 7시에 나와서 걷고 있다. 그래 물도 없는데 한창 더워지기 전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움직이자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이 오전에 트래픽 잼을 겪어보지 못해서일까- 마을에 도착해 지나는 Bar 마다 일찌감치 도착해있는 순례자 동지들로 가득했다. 굳이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만들면 같이 한 끼 해결할 수 있는 정도랄까? 그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가득했다. 역시 다들 아침부터 나와서 걸어가니 이렇게 아침 식사시간에 만나겠구나- 나는 항상 8시가 넘어서야 출발했으니 이렇게 북적이는 아침식사시간은 사실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첫 번째 마을을 패스- 기왕 더 걸어가는 거 오늘 일정 중에 한 성당에서 수녀님이 순례자들을 격려하고 포옹하며 기도해주는 곳이 있다고 들었다. 또 그곳에서 마리아 목걸이를 받을 수 있다고 하여 그곳을 목적지로 하여 계속 걸어 나갔다.



혼자 걷는 길, 마리아 목걸이를 받으러


이 성당이 아닌가벼....


수녀님이 기도해주고, 마리아 목걸이를 걸어준다는 이야기는 나도 걷다 전해 들은 소식이었다. 따라서 정확한 정보 없이 들르다 보니 걷다 나오는 모든 성당에 들어가 봤다. 갈 때마다 이 성당이 아닌가벼... 하고 나왔다. 두 번째 성당을 나와 아무래도 내가 이미 지났거나 오늘 일정이 아닌가 보다... 하고 걸어갔다. 카카오 단체 톡방에 이런 정보들이 공유되기에 채팅 기록을 찾아봐도 됐었지만 인연이 아닌가 보다 싶었다.



 그리고 다음 마을을 빠져나갈 때쯤, 마을 마지막 즈음에 누가 봐도 ' 나 성당이야!!!' 하게 생긴 건물이 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모습이었다. 잠시 쉬었다 갈까... 하는 맘으로 안에 들어가자 오른편 구석에 수녀님 한분이 앉아 기도 중이셨다. 예배석 뒤편에 땀도 식힐 겸 잠시 앉았다 나가려는 때에 수녀님이 부르시는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 물으시곤 내가 기도해도 될까? 하시기에 당황...


그렇게 나를 포옹해주시고 조용히 기도를 해주셨다.


나한테 땀냄새가 많이 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어 살짝 몸을 떼려 했지만 수녀님은 아랑곳 않고 나를 더욱 포옥 안아주시고 기도해주신다. 나도 가만 눈을 감고 수녀님을 안고 그 마음을 느끼며 기도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성스러움과 수녀님의 포옹은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이렇게 하루에 한 두 명이 다녀가는 게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수백 명의 순례자들이 다녀갈 텐데 이렇게 매번 땀냄새와 흙투성이의 순례자들을 잡고 포옹해주고 기도해주기까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백발의 수녀님에게 참 감사하고 또 내 마음을 만져주심에 뭉클함을 느꼈다.  뒤이어 내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마리아 목걸이를 걸어주신다.


아-! 이곳이었구나... 내가 그렇게 찾던 성당이 이곳이었어!

그렇게 매달게 된 마리아 목걸이는 오늘까지도 바로 내 침대 옆에 잘 걸려있다.



메세타 평야, 드디어 만나나??


부에나스 타르데스 !


 뭉클한 마음을 안고 수녀님에게 인사하고 나왔다. 다시 걸음을 시작한다.

Buen Camino 앱을 켜서 다음 마을까지의 거리를 보고 구글맵을 통해 지형을 살펴보니 음? 조금 이상하다. 아무것도 없다. 그저 초록색의 논과 밭이 다른 지역들보다 훨씬 크게 있는 것이다.


그래, 여기가 그 유명한 메세타 평야 구간이었다.

나무 그늘 한점 찾기 힘들고, 지루한 길의 끝판왕. 많은 순례자들이 이 구간을 점프한다고들 한다. 끝없이 지루한 길이라고들 평한다. 30도가 넘는 여름의 기온은 그 지루함을 더해준다. 웁스- 말로만 듣던 평야를 드디어 겪어보나 했는데 시작부터 정말 수평선만 보인다. 논과 밭 그리고 과수원.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늘 찾기도 힘들어 보인다. 다음 마을에서 간단한 식사와 수분 보충을 반드시 해야지! 마음먹는다.



그리고 산볼 마을 도착 !

아~무것도 없다... 알베르게 하나....

    

 지루한 평야를 걷다 보면 그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늘 아래에서 잠시 땀을 닦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데 그늘이 나오지 않는 평야 길은 발바닥이 불타오르기 딱 좋은 날씨다. 딱 좋아~! 딱!!!! 뜨거워!!


 정말 딱 한 시간마다 걸음을 멈추고 발바닥에 차오른 열기를 빼주어야 한다. 추후의 부상을 염려해서라도 더더욱!  신발끈을 풀고 양말도 벗어던지고 ~! 가끔 뜨거운 날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고 걷기도 하는데 이는 부상의 염려가 크다. 물집 잡히기도 쉽고.. 아무리 덥다고 해도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도록!



가끔 거리에서 수공예로 만든 팔찌나 브로치를 판매하기도 한다. 때로는 어린 친구가, 때로는 할머니가 길에 나와 도네이션식으로 판매를 하는 곳도 있고 이렇게 자리를 비우고 우리들의 양심에 맡기기도 한다. 아마 오늘 만난 이 상품은 열쇠고리로 보인다. 이전에 이미 팔찌 몇 개를 샀기 때문에 오늘은 패스! :-)



왔노라 보았노라 먹었노라!! 순례길 위에 비빔밥 , 오리온 알베르게


 



CastroJeriz

카스트 로제 리즈

마을의 생긴 모습이 마치 일본처럼 생겼다. 오늘 왜 40km나 걸었느냐!? 요 카스트로제리즈에 오리온 알베르게가 있다. 이 알베르게에서는.. 두둔..!! 비빔밥이 있다! 한국분이 운영하는 알베르게에서 라면도 팔고~ 비빔밥도 제공되고 ~ 엄마야.


비빔밥! 비빔밥! 하면서 걸어온 오늘 하루, 드디어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

타다- 알베르게에 들어가면 개냥이 한 마리가 반겨준다. 이리저리 부비부비 하면서 왔냥~ 하는데 올매나 귀여운지. 밥 먹을 때도 따라다니고 야외에 나와 쉬고 있을 때도 따라다니는 개냥이. 그렇지만 슬프게도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도미토리에는 출입금지! 아무래도 누군가는 고양이를 무서워할 수 있으니 그런 거 아닐까? 헤헤





안에 들어가면


오뚜기 3분 카레, 짜파게티 너구리 신라면 그리고 소주까지!


한국의 작은 편의점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귀중한 곳을 스페인 순례길을 걷는 중 그냥 지나칠 수 있겠나? 다시 이 길을 걷더라도 오리온 알베르게엔 들를 것이다! 비빔밥 먹고 싶을 거야 또... 캐나다에 온 뒤로 비빔밥 한 번도 못 먹었네 아직 :-(


후식으로 티라미수도 따단 -! 정말 완벽한 식단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  오리온 알베르게엔 소주도 있고 맛있는 것도 있고 고양이도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는 동지분들? 지금쯤 어디를 걷고 있나요, 또 언제 떠날 생각이신가요? 나도 얼른 다시 가구 싶은 그리운 그곳! 언젠가 우리 이 길을 다시 걷는다면, 그럴 여유가 된다면 오리온 알베르게에서 비빔밥 먹으며 만납시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11

⭐️⭐️⭐️⭐️ 카스트로제리즈 , 오리온, 비빔밥. 3가지 키워드만 기억하면 된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10

⭐️⭐️⭐️⭐️⭐️ 이쯤 걸으니 알겠지? 우린 모두 다른 속도로 걸어. 누군가의 속도에 신경 쓰지 말고 "나"의 속도에 온전히 집중하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9

⭐️⭐️⭐️⭐️⭐️  휴지 챙겨!!!

언제! 어디서! 갑자기 필요할지 모른다. 항상 휴대용 휴지 챙기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8

⭐️⭐️⭐️⭐️⭐️ 기회를 만들어 야간 행군을 강력 추천. 남들과는 다른 시간에 걸어간다는 기분은 조금 더 차분하고 고요한 시간을 선물해준다. 또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대신 안전제일! 음식 준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7

⭐️⭐️⭐️6,7월 스페인은 정말 미친 듯이 덥고

특히 로스 아르코스 -> 산솔 코스는 자갈길에 그늘 한점 찾기 힘들다. 유의해야 할 코스!! 물 미리 챙기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6

⭐️⭐️⭐️ 반드시 아침 일찍 걷기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급함도 금물, 남과 비교도 금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5

⭐️⭐️⭐️⭐️⭐️ 장 볼 때 필요한 식재료 단어, 수량을 공부해가자! 식탁의 퀄리티가 올라간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4

⭐️⭐️⭐️ 일과 후 에너지가 된다면 알베르게에서 나와 마을을 둘러보자! 어떤 재밌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설레는 마음으로,, ( 단, 무리하지 말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3

⭐️⭐️⭐️⭐️ 허기보다 당이 문제. 캔디류를 챙겨나가길 추천 (청포도 캔디 강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2

⭐️⭐️⭐️⭐️⭐️ 등산화는 등산을 위하기보다, 부상을 피하기 위해서 더 중요하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1

⭐️⭐️⭐️⭐️⭐️발에 열이 찬다~ 느껴지면 한 번씩 멈춰서 신발, 양말 다 벗고 열을 식혀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발가락 사이에 밴드로 마찰을 줄여준다

이전 04화 더 지치기 전에 순례길#15. 잠시 걸음을 멈췄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