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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례자 현황 Sep 06. 2021

더 지치기 전에 순례길#19. 마차 타고 까미노 순례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18일 차,  까리온 ~ 사하군 17+21.33 km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인가 ~? (영화 관상 중에서) - 마차 타기 전 했던 생각

 까리온에서 마라롱샤를 먹고 동네를 돌며 순례길에서 만난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그러던 중 들은 신기한 소식. 가리온에서 마차를 타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대략 20km 정도를 마차 타고 이동하는데, 여러 명이 모여 조금 더 저렴하게 이용 가능하다고 한다. 1인당 15유로를 지불했다.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하러 와서 "마차" 라는건 아주 매혹적으로 들려왔다. 살면서 언제 한 번 마차를 탈 기회가 있었나? 순간 사극 영화들을 보면 주로 나오는 마차들이 떠올랐다. 마차 마차 마차


내가 아는 마차는 Matcha 즉, 녹차 같은 것들만 알고 있었는데 내 살아 있는 동안 마차를 탈 기회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오호라 고민할 여지없이 나는 바로 콜을 외쳤다. 순례길에서 만난 한 누나가 마차를 예약했으니 정해진 시간까지 장소로 오면 모여서 마차를 타고 이동한다고 한다.


까리온 -> 깔사딜리아 데 라 꾸에사 17km 마차로. 왕이 아니라 노예 느낌
마차 타러 집합장소로!

 

 다음날 아침, 우리는 약속 장소로 모였고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알고 보니 쭉 이어지는 메세타 평야 구간으로 점프하는 순례객들이 많다 보니 이런 마차 프로그램도 생겨난듯하다. 마부는 계속해서 펼쳐지는 자연의 모습들이 마차 위에서 바라보면 사뭇 다르게 느껴질 거라 말했다. 또한 우리가 마차를 타는 이 코스는 순례길 특히 메세타 평원에서도 악명 높은 코스였나 보다.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Carrion de los Condes와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 Calzadilla de la Cueza 사이 17km 구간을 상점이나 화장실 없이 걸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 구간에는 오로지 자연으로 채워진 평야 구간만이 있었고, 중간에 쉴 수 있는 곳은 그늘 말고는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이 평야를 두 다리로 며칠씩 계속 걸어가는 동안에는 지루한 시간들도 있었다. 또 그늘 한 점 없는 하늘에 원망하는 마음을 갖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평야 길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가는 즐거움도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론 평온하지만 지루한, 그런 느낌들을 많이 받았다.


 다행히(?)  영화 속에서 보던 마차가 아니라, 마치 어딘가 노역에 가는 듯한 마차였다. ( 뭘 바란 거니... ) 그리고 우리와 동행할 말들은... 조금은 덜 건강해 보였다. 예전에 만났던 친구가 한국에서 승마 교관을 하고 있었다. 그때의 훈련된 말들과는 달리 마르고 또 한 마리는 매우 늙은 모습의 친구였다. 이 친구들이 우리 성인 대여섯 명을 끌고 갈 수 있을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가득 들었다. 두 마리의 말이 우리를 싣고 가는데, 늙은 친구가 힘을 쓰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옆에 있는 젊은 친구는 자꾸 물라고 하고 그때마다 마부 아저씨는 가볍게 채찍을 휘둘렀다.


아침 8시에 모여서 출발한 우리는 마을 밖으로 조금 나서자 일찍이 출발한 다른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흥분과 즐거움으로 마음 가득했었는데, 아침 일찍 나와 걸음을 시작한 순례자 친구들을 만나자 조금 다른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부끄러움이었을까, 미안함이었을까?

물론 다들 다른 목적과 마음으로 순례길을 시작한다고들 한다. 종교적 이유, 새로운 여행에 대한 탐험 등. 누군가는 두 발로 완주하지 않는 걸음은 순례길의 본질이 아니라고도 한다. 물론 사람들마다 의견은 다른 것이고 가치관에 의한 것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여기서 느낀 감정은,


이 뜨거운 여름에 태양을 맞으며 본질에 충실하도록 걷는 걸음인데, 나는 마차 위에서 편하게 가는 모습이 그들에게 괜한 박탈감을 주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괜히 그들의 걷고자 하는 의욕을 내가 약화시키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새로운 경험들을 체험하고자 하는 목표로 다양한 경험들을 하고 있었지만 이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쉽게 결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만나면 고생했다고 시원한 맥주나 콜라 한 잔 사줘야지! 하고 인사를 했다. 다행히 아주 좋은 친구들이 우리의 모습들을 사진도 찍어주었다. 마차 안에서 보는 풍경이 아닌 순례길 위에 있는 우리의 마차를 찍어준 사진은 소중한 사진이 되었다. 좋은 친구들 덕에 이런 추억의 한 장면을 마련할 수 있었다.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 Calzadilla de la Cueza


 마차는 종착지에 도착했고, 걸음을 시작할 겸 재정비하며 바에 들어왔다. 이후 우리보다 먼저 출발했던 친구들이 우리 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길에서 지나가는 우리를 보며 신기하고 또 부러웠다고 하며 어떻게 그런 걸 찾았냐는 등의 대화를 했다. 이때 사진들도 받았고, 또 나 때문에 발이 더 무거워졌다면 미안하다고 했다. 다행히 친구들은 달려가는 마차의 모습에 신기하고 또 얼른 붙잡아서 사진을 보내주려고 더 빨리 걸을 수 있었다고 한다 :-) Nice guys


바에 머물며 우리가 지나쳐온 친구들을 만났고, 한창 마차로 지나간 우리에 대해 수다 타임이 이어졌다. 누나 덕분에 이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중간인지 몰랐던 중간 기념비

 걷다 보니 왠지 멋있는 기둥 두 개가 나왔다. 마치 새로운 관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생겼다. 후에 이곳에서 더 많은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을 후! 회! 하게 되었다. 다시 간다면 꼭 저 앞에서 멋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


 아~주 나중에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다가 알게 되었다. 바로 이곳이 산티아고 까미노 프랑스길의 중간지점을 표시한 기둥이라고 한다. 프랑스 길이 대략 800km 정도니, 400km 기념비라고 하면 될까? 다음에 산티아고 까미노를 다시 간다면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1. 스페인어 공부해가기. 주민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싶다.

2. 400km(중간) 기념 비 앞에서 멋있는 사진 찍기


이번 순례길 여행은 아무것도 모르고 바람처럼 닥치는 대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여행이기에 만족스러운 마음만큼이나 아쉬움도 크다.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친 수많은 것들을 다음엔 다시 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가득...





사하군... 살아 있는 거지?

 

 그리고 이내 우리는 사하군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조용했다. 아니 요 근래에 지나온 대부분의 마을들이 인기척이 드물었다. 점점 우리는 시골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사람 냄새보다 자연의 냄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조용한 사하군, 어느 한 알베르게에 우리는 짐을 풀고 전보다 조용한 저녁을 맞이했다.


오늘은 스페인 발렌시아 주에서 레온 주로 넘어오게 되었다. 순례길에서 어느덧 레온 주. 이제 레온 마을 앞을 향하게 되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12

⭐️⭐️⭐️친구들과 함께 부를 (국가 불문으로) 알만한 노래 하나 준비해 가면 어떨까? 물론 스페인에선 BTS가 정말 크게 먹힌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11

⭐️⭐️⭐️⭐️ 카스트로제리즈 , 오리온, 비빔밥. 3가지 키워드만 기억하면 된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10

⭐️⭐️⭐️⭐️⭐️ 이쯤 걸으니 알겠지? 우린 모두 다른 속도로 걸어. 누군가의 속도에 신경 쓰지 말고 "나"의 속도에 온전히 집중하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9

⭐️⭐️⭐️⭐️⭐️  휴지 챙겨!!!

언제! 어디서! 갑자기 필요할지 모른다. 항상 휴대용 휴지 챙기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8

⭐️⭐️⭐️⭐️⭐️ 기회를 만들어 야간 행군을 강력 추천. 남들과는 다른 시간에 걸어간다는 기분은 조금 더 차분하고 고요한 시간을 선물해준다. 또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대신 안전제일! 음식 준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7

⭐️⭐️⭐️6,7월 스페인은 정말 미친 듯이 덥고

특히 로스 아르코스 -> 산솔 코스는 자갈길에 그늘 한점 찾기 힘들다. 유의해야 할 코스!! 물 미리 챙기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6

⭐️⭐️⭐️ 반드시 아침 일찍 걷기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급함도 금물, 남과 비교도 금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5

⭐️⭐️⭐️⭐️⭐️ 장 볼 때 필요한 식재료 단어, 수량을 공부해가자! 식탁의 퀄리티가 올라간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4

⭐️⭐️⭐️ 일과 후 에너지가 된다면 알베르게에서 나와 마을을 둘러보자! 어떤 재밌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설레는 마음으로,, ( 단, 무리하지 말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3

⭐️⭐️⭐️⭐️ 허기보다 당이 문제. 캔디류를 챙겨나가길 추천 (청포도 캔디 강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2

⭐️⭐️⭐️⭐️⭐️ 등산화는 등산을 위하기보다, 부상을 피하기 위해서 더 중요하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1

⭐️⭐️⭐️⭐️⭐️발에 열이 찬다~ 느껴지면 한 번씩 멈춰서 신발, 양말 다 벗고 열을 식혀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발가락 사이에 밴드로 마찰을 줄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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