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08_ 3월에 있었던 예기치 못한 상실에 대한 이야기
한 문이 닫히면 작은 창문이라도 열린다.
라는 혹자의 말. 누군지 몰라도 참 고맙다. 진정으로 저 말이 맞다고 와닿지 않는 순간에도 제법 위로가 된다.
내가 제일 밉고, 그다음으로는 남편이 밉고,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이 미웠다.
막내아들이면서 10년 넘게 어머니를 모시고도 장례식이 끝난 후에조차 ‘그날 어떻게든 미용실을 못 가게 말렸어야 했는데’라고 자책하시던 시아버님이 뒤늦게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서 죄송했다. 사람이 자신에게 너무 소중한 걸 잃으면 자학행위인 걸 알면서도 자신을 탓하는 걸 멈추기가 어렵다. 논리적으로 옳고 그런지 어떤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세상 많은 책들에서 말하듯 건강한 마음을 먹는 게 필요하다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33년 동안 자신을 위할 줄 모르고 본인들에게는 두부 한 모 가방 한 개 이리저리 따져보고 가장 싸게 가장 오래 쓸 수 있는 것만을 고르면서, 본인들도 정작 못 밟아본 외국 땅에 나를 보냈던 엄마 아빠가 생각났다. 너무 자식들을 위해서만 희생하기보다 본인들의 인생을 누리지, 그게 노후자금 관리가 되었건 일상에서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든. 오히려 그렇게 지내셨다면 내 어깨 위에 항상 앉아있는 부담감 내지는 죄책감도 덜할 텐데. 훨씬 가벼울 텐데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야속했다.
인간은 어디까지가 동물이고 어디까지가 동물과 구별되는 존재인가... 어딜 가도 자기 거는 안 사고 아기 거만 사던 친구들, 아기 이야기 외에 할 이야기가 없던 친구들... 너희가 이걸 겪었구나. 예상보다 빨리 왔고 존재를 확인할 곳이라고는 임테기 두줄 밖에 없는, 아기집조차 아직 보지 못한 새 생명 비스무리한 게 왔다가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세상이 뒤엎어질 일인가. 모성애라는 단어에서 파생되는 감정들은 그냥 동물의 본능인 건가? 내가 뭘 잘못했는지 최근의 일상은 물론이요 젊음에 기대어 나 자신을 돌봐야 할 중요성조차 채 깨닫지 못했던 근 몇 년을 속속들이 뒤집어보며 원인이 될만한 것을 악몽처럼 자꾸 곱씹게 되었다. 시간은 또 어느 시기든 묵묵히 흘러가서, 어떻게 어떻게 그 지옥 같은 마음의 절정은 지나간 것 같다.
나 자신에게 애써 설득하듯 이 시간에 그래도 얻은 교훈 비스무리한 마음들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살아지고, 정돈된 우선순위와 앞으로의 건강을 위해 오히려 더 가볍게, 담백하지만 옹골찬 집밥처럼 살아지기도 하고. 몇 년 후 돌아보면 지금 나는 인생의 어떤 시기를 겪고 있을까. 이후의 나는 나 자신이 평가했을 때 한결 더 나은 삶을 바람대로 살고 있을까.
우선은 이 시기를 혼자 겪지 않게 하는 사람들에게, 긴 겨울을 견뎌냈는지 충분히 쉼을 가졌는지 그 둘 중 어딘가 인지 모르겠지만 역시나 와준 아름다운 봄날의 꽃들과 새순들에게, 따뜻한 햇빛을 만나 찬란하게 반짝여주는 윤슬에게, 일상의 작지만 정녕 소중한 순간들을 착실히 살아내는 나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