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04_ 역시 내 일이 되어야만 아는구나
이 글을 쓰는 현재는 18주 차로 입덧이 꽤나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입덧, 입덧. 모두가 입덧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었다. 한평생을 여자로 살아왔고, 나 또한 한때는 입덧을 유발했던 생명체인데. 임신준비에서부터 임신 후에는 더욱더 본격적으로 나의 무지몽매함에 매번 놀랬다. 이토록 임신, 출산에 대해 아는 게 없다니......
임신을 준비하면서 사둔 책들이 있었는데, 나도 남편도 시간이 날 때 틈틈이 읽으며 정보를 공유하곤 했다. 그중 남편이 먼저 읽고 내게 공유해 준 내용들을 처음에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 지금까지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심장과 뇌 외 장기들이 탯줄에서 생성되고 시기가 되면 애기 몸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대.
-12주까지는 엄마가 양수를 만들어내는 거지만, 13주부터는 애기가 직접 양수를 만든대. 양수를 먹고, 쉬를 싸기를 반복한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소변에 세균이 없대. 애기는 양수를 먹고 이를 쉬로 싸면서 세상에 나오기 전 소화기능을 연습하고, 그 과정 자체가 양수를 정화시킨대.
literally unbelievable...
말도 안 돼! 뻥치지 마! 하고 반응했지만 모두 진실이었다. 아니 탯줄이 컨베이어 벨트도 아니고 진짜 거기서 장기들이 만들어지고 때가 되면 들어와서 애기 몸에서 또 알아서 자기의 위치를 잡는다고? 애기가 자궁에서부터 쉬를 싼다고? 나는 지금까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공부해 왔나. ㅎㅎ 임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우리 모두가 저 과정을 거쳐 이 세상에 태어났을 텐데. 정말로 모든 과정이 경이로움과 입틀막 그 자체였다.
근데 입덧도 그랬다.
내 주변의 케이스만 가지고 성급한 일반화를 해보자면, 10명 중 1-2명은 정말 축복받은 엄마들로 입덧이 별로 없다. 있어도 그냥 임신 전만큼 못 먹고 가끔 울렁거리는 정도? 반면 10명 중 1-2명은 극심한 입덧으로 수액까지 맞는다. 토를 너무 많이 하면 영양이 부족한 것은 물론 탈수가 오기도 하고, 현대과학의 선물 중 하나인 입덧약이 안 듣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입덧약조차 듣지 않으면 혈관에 직접 약을 꽂는 수밖에 없어서 수액을 맞는다고 한다. 나보다 5개월 정도 먼저 임신한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입덧이 너무 심해서 결국 일주일을 입원했다. 토를 자주 했던 또 한 명의 친구는 변기와 절친이 되었다고 했다.
이렇게 근시안적인 스케일에서 보면 나는 지극히 평균에 해당했다. 임신 전에도 토를 못 해서인지 토는 잘하지 않았다. 차라리 토를 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토는 안 나왔다. 주로 구역질에 시달렸고, 냄새에 (매우) 민감하고(ㅠㅠ), 소화가 잘 안 되고, 시기에 따라 두통이 심했다.
토를 안 하는 게 어디냐.. 계속 토하면 식욕도 떨어질 텐데, 배는 또 어느 순간에는 결국 고프니까 먹긴 해야 하고. 토하는 사람들이 제일 불쌍했다.
그래 토를 안 하는 게 어디냐.. 했지만, 그리고 토덧이 심한 분들 앞에서는 이야기 꺼내기조차 죄송스럽지만. 그래도 입덧은 힘들었다.
입덧이 이런 거였구나. 모든 엄마들이 다 이걸 겪었다고? 음식이 맛있게 느껴진다는 건 축복이구나. 연예인 주우재나 던처럼 애초에 식욕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먹는 즐거움이 없는 삶은 생각보다도 더 슬펐다. ㅠㅠ 매 끼니 오늘은 뭘 먹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 고민조차 귀찮고, 시도했다가 역해서 구역질하는 게 더 괴로워서 언제든 실패가 없는 과일, 식빵, 견과류 정도만 몇 끼니 내리 먹기도 했다.
속도 편하고 냄새도 그나마 괜찮지 않을까 하고 들어갔던 두 곳의 샤브샤브 집에서는 내리 구역질을. 심지어 6주 차에는 엄마가 한번 음식을 해주러 오셨는데 그 음식과정에서 구역질을 너무 하는 바람에 그날 저녁은 거의 굶다시피 했다.
그리고 냄새........ 냉장고 냄새는 물론이고 길거리의 온갖 냄새, 심지어는 향기롭게 느껴졌던 제품들조차 역했다. 냄새가 없는 종이세상으로 잠깐 도피하고 싶었다.
5-6주 차에 정말 정말 심했던 두통에 관해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임신 과정 전체가 피를 필요로 하는 거라 언제든 두통이나 빈혈이 오는 게 되려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셨다.
그리고 너무 너무 너무 너무 귀찮았다...... 집순이 체질이 아닌 데다, 아무것도 안 한 채로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좀 거리가 먼 나였는데. 인생 최대 귀차니즘에 시달렸다. 정말 너무 너무 너무 귀찮았다. 나가는 것도, 친구를 만나는 것도, 집안일도, 취미생활도. 모든 게 귀찮았다. 이래도 되나 싶다가도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보면 샬로미는 그새 쑥쑥 자라 있었다. 없던 게 생겨있고, 꼬물꼬물 움직이고. 그 모습을 보면 '아, 내가 피곤할만하구나. 모르는 새 에너지를 많이 쓰는구나.'싶어 더 당당하게 쉬었다. 아이가 태어나도, 훗날 복직을 해도.. 은퇴 전까지는 이토록 맘 편하게 쉴 수 있는 날이 또 언제 있을까 싶어 즐기기도 했다. 독서와 다이어리 쓰기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책을 읽거나 글씨를 쓰는 행위조차 귀찮아서 OTT만 돌려봤다. 그래도 샬로미와 나의 건강을 위해 하루 30분에서 1시간 산책은 꼭 했다는 사실이 참 자랑스럽다.ㅎㅎ (+13주부터는 이전에 하던 순산요가도 시작했다!)
안정기라 불리는 12주 차가 되면 좀 나아지겠지, 입덧이 거의 끝난다는 16주 차가 되면 좀 나아지겠지. 하면서 스스로 위로하곤 했다. 그럼에도 7주 차쯤에는 2주만 해도 괴로웠는데 이 2주를 3번을 더 겪어야 한다는 게 절망스러웠다.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어찌저찌 시간은 갔고, 그 순간에 당기는 걸 하나씩 시도해 보며 때로는 실패했지만 조금씩 먹을 수 있는 걸 늘려나갔다. 그래도 구토는 내 이야기가 영영 아닐 줄 알았는데, 15주 차쯤 감기기운이 들자 갑자기 속이 꿀렁거리더니 4번을 내리 토했다. 인생 2번째로 하는 토는 정말.. 역시 괴롭다. 정말 내 몸이지만 내 몸이 아니구나.. 내 몸 하나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이 들었지만, 그 무력감 자체는 나쁘지만은 않았다. 엄마가 된다는 것 자체가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경험의 연속이라는 어디서 들은 말을 되새기며, 그냥 견뎠다.
어찌저찌 시간은 그래도 가주었다. 12주가 지나자 다시 활동이 좀 하고 싶어 졌고, 16주가 지나고 나니 신기하게도 정말 입덧이 훨씬 좋아졌다. 이 글을 마쳐가는 현재, 20주 차에는 소고기와 딸기를 왕창 먹는다. 샬로미의 입맛이 꽤나 고급이어서 엄마 아빠가 일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ㅎㅎ 물론 아직도 못 먹는 음식들은 있지만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 ㅎㅎ
내 인생 최대로 귀찮고, 피곤하고, 무기력하고, 내 몸이 내 맘대로 안 되는 시기를 겪으며... 이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입덧으로 심히 괴로울 때도 '아기가 건강히 자라고 있어서 그런 거니 엄마가 좀만 참아줘요'라는 말을 들으면 행복하곤 했다. 세상 모든 아기는, 그리고 커서 어른이 된 우리 모두는,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소중하고 존귀하구나.
입덧을 겪으며, 그리고 앞으로 남은 임신과정과 출산을 겪어내며 조금은 더 내려놓을 줄 아는 엄마가 되길. 내 몸 하나 내가 어쩌지 못하는데. 자식이든 세상의 다른 어떤 일이든 내가 뭘 어찌할까.라는 마음으로 작은 것에 감사하고 흘러가는 대로 유영할 수 있는 여유로운 엄마가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