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기로 한 것과 필라테스가 무슨 상관인데
낼모레 서른이야-이러다 정말 서른 되겠네.
나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 1월 1일이 되는 것에도 감흥이 없고 나이가 더해가는 것에도 감흥이 없는 나인데. 서른이 되는 건 왠지 남다르게 느껴졌던 걸까. 내 인생의 계획이나 그려지는 모습이 딱 길어봐야 서른 즈음에 멈춰있었기 때문일까. 서른이면 막연하게 멋지게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어른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년 정도의 카운트다운만이 남아있는 지금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 곁의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안정을 찾아가고, 누군가는 여행을 자유롭게 다니고, 누군가는 여유를 누리고. 다들 마음대로 다 되지는 않아도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혼자 제자리에 멈춰있고 어릴 때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 깊은 수렁을 헤매었다.
한참 뒤에 알게 된 것이지만 나에게 '자율성'은 중요한 가치였다. 누군가 그 자율성을 침해한다면 난 곧 불편해지고 답답해지고 마음에 들지 않고 화가 났던 것 같다. 그게 부모님이든 친구이든 연인이든. 결정을 도와주는 것과 결정을 해주는 것은 다른 문제이니까-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자.
어른이 되는 게 어떻게 하는 건데?
그래서 깊은 수렁 속에서 불행했다. 계속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고, 하는 일에서도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계속 이렇게 의미 없이 살면 불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의미를 찾기로 결심했다. 스물아홉의 어느 날, 의미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필라테스도 그 고민의 결과에 따른 일부였다. 앞선 글에서 말했다시피 직장 생활도 여전히 벅차도 어느 정도 적응했고 왕복 3시간의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해야 의미가 있고 행복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내가 그리던 멋진 어른의 모습이 무엇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그리던 멋진 어른은 혼자 바로 잘 서 있고, 나 자신과 솔직하게 마주할 줄 알았다. 용기 있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옮기고, 그 결과 또한 책임지고 감당한다. 주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도 결국 그 행동을 하고 감당하는 것은 내 몫이니 신중하게 잘 생각해서 옳다고 생각되는 길을 선택한다. 등의 생각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래서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혼자 바로 잘 서 있는 것부터- 서른이 되기 전에 내 생활이 의미 있게 잘 채워져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뭐부터 하지?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몸의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 해 한 해 다르다는 사람들의 말에 '뭐 얼마나 다르겠어.'하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아니었다. 하루에 약속 3개도 가능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1개만 다녀와도 다음날까지도 힘들다. 피부에 상처가 나면 약을 바르지 않아도 며칠이면 사라졌었는데, 이제는 '나도 나을 힘이 없어.'라고 하는지 약을 바르지 않으면 몇 주를 그냥 그대로 있다. 왕복 3시간의 출퇴근도 내 체력 저하에 한몫했다. 그래서 운동을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몸이 좋지 않으면 마음도 기분도 정신도 약해진다는 걸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됐기 때문이다. 러닝을 하고 있었지만 날씨와 때에 구애받지 않는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싶었다. 코어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하고 자세 교정에도 도움이 되는 필라테스가 끌렸다. 그리고 필라테스를 하며 나에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되었고, 신생아이지만 매번 잘 생각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선택하는 것과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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