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시험 예약은 여유를 위해? 아니 여유 있게!

시험장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by 볕뉘
아뿔싸- 늦었다. 어떻게 하지?

자꾸만 시계를 보며 빠른 걸음으로 회사를 나섰다. 예정대로라면 별문제 없이 지하철을 탔어야 할 시간인데, 회사 일이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을 나는 왜 잊었을까. 터진 일을 급하게 처리하고 나오니 늦었다. 지금 드는 생각이지만, 이런 날 종종 예상치 못한 일이 '붐'하고 터졌던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원래대로라면 성격상 일정을 여유 있게 잡아 시험 시간까지 여유 있었을 텐데, 이후의 여유를 생각하며 타이트하게 일정을 잡았던 나. 뒤늦게 이래서 사람이 하던 대로 해야 하는 걸까 후회했다. 이왕 반차를 쓰고 나오는 것, 시험을 빨리 보고 남는 시간의 여유를 즐기고 싶었던 나- 욕심이 과했나 보다.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 여러 가지 방법들을 떠올렸다. 이럴 때는 당황스러워도 차분하게 빠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래, 택시를 타야겠다. 대중교통에 비해 비싼 택시의 비용, 파도가 울렁이듯 요동치게 되는 멀미, 그리고 늦은 시간에는 혼자라는 것 등의 이유로 택시를 잘 타지 않던 나였다. 그런데, 그간의 이유들을 오늘만큼은 모두 삭제, 삭제, 삭제. 오늘은 택시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굳이'가 아니라 '반드시' 택시여야 했다. 무엇이든 항상 나에게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단정 지을 수 없나 보다. 어떨 때는 '굳이'였던 것이 때로는 '반드시'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시험장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시험에 늦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생각만 가득했는데 이동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도로 위 모습에 다른 생각들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여가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분명 생각하면서도, 시시각각 '잘할 수 있겠다'라는 하얀 생각과 '잘할 수 있을까'하는 검은 생각이 오갔다. 검은 생각 위에 하얀 물감을 쭈욱 짜내서 스윽스윽 덮어본다.


저기 앞에서 내려주세요- 감사합니다!

강남운전면허시험장 길 건너편에 무사히 내렸다. 서류도 작성하고 접수도 해야 하고 신체검사도 해야 하니 시간이 더 촉박하게 느껴졌다. 1층에 들어서자 여러 창구와 나처럼 분주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류에 내 신청사항과 인적 사항을 체크해서 작성하고 가져간 여권용 사진을 붙였다. 학과 시험 전에 신체검사를 받아야 해서 받으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2년 내에 공단 건강검진을 했으면 대체가 가능했다. 일주일 전에 공단 검사를 했었는데 결과가 입력되는데 한 달 정도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해서 이번 검사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가까스로 재작년에 했던 건강검진 기록이 있어서 해당 기록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휴.


확인받은 서류를 가지고 위층으로 올라가서 대기표를 뽑고 다시 접수를 해야 했다. 대기하다 접수를 하며 수수료를 내고, 위층 시험장으로 올라갔다. 시험은 정시에 시작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실 같은 넓은 시험실이 있고 오는 사람들이 차례대로 시험감독관에게 자리를 배정받아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다. 들어가기 전 통신이 가능한 기기들을 꺼야 했는데, 나에게 꺼야 할 기기가 이렇게 많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개인 휴대폰과 업무용 휴대폰, 애플워치, 아이패드까지. 정신을 차려보니 애플 생태계의 덫에 빠져버린 나였다. 때가 되면 애플 기기를 잘 활용하고 있는 이야기도 할 때가 올 것 같다.


자리에 앉아 물건들을 내려놓고 시험에 응시하였다. 공부를 할 때 사용했던 앱과 화면이 비슷하여 낯설지 않아서 좋았다. 정답을 모두 체크하고 시험 종료를 누르면 바로 점수가 화면에 나오고, 다시 감독관 데스크 쪽으로 가서 도장을 받으면 끝! 시험 종료와 함께 합격했다는 글자를 화면에서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감독관에게 가 받은 도장이 혹여나 번질까 원서에 부채질을 하며 긴장 대신 설렘을 채워본다. 그렇게 무사히 학과시험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험장을 나섰다.


현재 순간의 나도 여유 있게- 공백을 만들어 놓다.

시험이 끝나고 삼성역까지 홀가분한 마음으로 걸어갔다. 촉박한 시간에 발을 동동거리며 아찔했던 적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평일인데 아직 밝은 시간에 바깥공기를 마시고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어디를 갈까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휴대폰을 검색하다가 맛있는 디저트를 판매하는 카페로 향했다. 도착하자 같은 마음으로 온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잠시 다른 데로 갈까 고민하다가, 이어폰을 끼고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하나를 시켜 자리에 앉았다.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고 잠시 눈을 감아 호흡하며 주변의 색채를 지워본다. 시끄럽고 여러 사람이 있어 북적이는 곳에서도 이렇게 혼자가 되는 방법도 꽤 괜찮다.


내게 미래의 여유도 소중하지만 그를 위해 현재 순간의 내가 너무 분주하고 쫓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 보니 그게 꼭 엄청난 몇 년 후의 미래가 아니더라도 그런 것 같다. 사실은 계획적이고 바쁜 삶을 살아가는 나이기에, 나를 잘 아는 누군가가 이 말을 본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내게 현재의 내가 여유 있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내가 바빠지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다면 해내고 그 사이사이에 공백들을 일부러 만들어 놓는 것 같다. 때로는 큰 공백으로, 때로는 소소한 공백으로. 시험 일정을 여유 있게 잡는 것은 시험을 보기 전의 내가 여유로울 수 있는 소소한 공백을 만들어놓는 일이었다.


당신의 선과 공백은 어디에 있는가? 현재 순간의 나도, 이후 순간의 나도 기쁠 수 있는 적절한 선을 찾고 지키는 건 분명 쉽지 않다. 쉽지 않지만 생각하며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 같다- 내 인생이니까. 생각하지 않는다면 오늘의 나처럼 때때로 그 평온함이 깨지고 당황하여 세상이 순식간에 빨갛고 파랗고 요동친다고 느껴질 거다. 분명 거기에서도 배움이 있고, 나쁘지만은 않은 기억으로 저장될 테지만. 그 선을 잘못 잡으면 어떻게 하나 고민이 될 수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선이란 건 어제의 '굳이'가 오늘의 '반드시'가 된 것처럼, 매 순간 조금씩 변해가는 나를 따라 같이 호흡하며 움직여가는 듯하다. 그러니 이렇게도 잡아보고, 저렇게도 잡아보자. 모든 순간의 경험은 내게 배움과 생각을 남겨줄 테니 괜찮다. 또 그 선의 움직임을 쫓으며 나와 바로 마주해보기를 바란다.



'잘할 수 있겠다'라는 하얀 생각과 '잘할 수 있을까'하는 검은 생각이 오갔다.
잠시 눈을 감고 호흡하며 주변의 색채를 조용히 지워본다. 이렇게 혼자가 되는 것도 꽤 좋다.
당신의 선과 공백은 어디에 있는가?
어제의 '굳이'가 오늘의 '반드시'가 된 것처럼, 이렇게도 잡아보고 저렇게도 잡아보자.
모든 순간의 경험은 내게 배움을 줄 테니 괜찮다. 그 선의 움직임을 쫓으며 나와 바로 마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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