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가 한 건 필라테스가 아니었나..?
필라테스를 오랫동안 하지는 않았지만 일에 치이는 와중에도 반년동안 꾸준히 다녔다. 그래서 비록 능숙하지는 않고 높은 난도의 동작은 몰라도, 기본 동작들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리에 오고 나서 그 생각은 말끔히 지웠다. 뭐랄까. 음. 그냥 내가 필라테스를 한 적이 없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내가 알고 있던 동작이었는데, 내가 알던 것은 동작의 겉모습이었다. 사진처럼 완성된 동작 모습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 동작을 따라 하기 위해 어디는 올리고, 어디는 낮추고, 어디에는 힘을 주고, 어디에는 힘을 빼고. 나 나름대로 그 모습에 몸을 끼워 맞췄던 것 같다. '벽 통과 게임'을 알고 있는가? 스크린에 나온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해서 통과해야만 하는 게임. 그동안 나는 '벽 통과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허탈하게도 말이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매번 하는 준비 운동의 루틴이 있다. 간단한 동작들이었는데도 호흡과 함께 동작들을 하나하나 채워 넣어가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그 동작들도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았다. 준비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 날은 몸이 더 굳어있었고 운동 후에 근육통이 남고는 했기 때문이다. 그 간단한 동작조차 마음에 들게 되지 않는 것이 솔직히 처음에는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나 제대로 하려고 노력하면서 심호흡을 크게 내쉬는 그 순간이, 나 자신과의 대화에 초대하는 그 순간이 좋아졌다.
일리에서 필라테스를 하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움직일 때마다 힘과 에너지를 어떤 방향으로 써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고 알려주시는 점이었다. 단순히 동작을 따라 하는 건 쉬웠지만, 세세하게 알맞은 근육과 에너지를 사용하는 건 어려웠다. 열에 아홉은 내가 사용하던 근육과 힘의 방향이 엉망진창이었다. 그래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내가 필라테스를 한 적이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많은 때에 동작을 하고서 어디 근육을 사용했냐는 물음에 난 말을 잃었다. 나 스스로 몸을 움직였지만 어떤 부분의 근육을 사용하고 힘이 들어갔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물음에 답해가며 나는 내가 몸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어디가 약한 지 알아가게 되었다. 나는 복부와 엉덩이 쪽 근육이 특히 없는데, 다른 부위 사용하는 운동을 할 때보다 그 부위 운동을 할 때 배로 힘이 든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하나 더 알게 된 것은 분명 나아진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미세하게 조금씩 힘이 생기고 바른 방향으로 에너지를 쓰게 되어가고 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벽 통과 게임'을 하고 있을까? 트루먼쇼처럼 내가 '벽 통과 게임'의 주인공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영역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저 겉모습을 똑같이 하여 따라 하고 나를 끼어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와 방향성을 분명히 알고 해내는 ‘나’이고 싶다. 설사 그 과정에 주어진 모습이 나에게 맞지 않아 변형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기꺼이 마주하는 벽에 다른 모양도 만들어 찍어볼 수도 있는 용기를 가진 '나'였으면. '나'와 같은 또 다른 이에게 괜찮다고, 나 또한 그러하다고 손 내밀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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