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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 Nov 03. 2019

2019년 4월 7일, 수술 날

당신의 자궁은 안녕하십니까? 

 수술 날 


수술 날을 잡는데에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일은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내 걱정과는 다르게 물속에서 하는 수업이 아닌 라이프 가드로 물 밖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고 병원에서도 내가 가능한 날에 마침 수술이 바로 가능했다. 인도에서 선생님이 했던 말이 맞았다. 내가 생각했던 걱정은 생각보다 걱정할 거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수술을 앞두고 일주일 동안 기분이 이상했다. 우울한 건 아니었지만 이제 막 30대가 시작한 내가, 결혼을 하기 전인 내가, 아이를 낳기 전인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원망도 후회가 되다가도 이미 일어난 일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싶으면서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했다.  


 내 블로그를 통해 많은 분들이 같은 진단을 받고 걱정되어 찾아 온 분들이 많았다. 20대 30대 여성분들이 많았고 이미 아이를 낳은 분들도 계셨고, 수술을 마친 분들도 많았다. 전에는 나만 이렇게 아픈거라고, 나만 자궁 경부암 반응이 이상하게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걱정하고 수술을 준비하고 마치신 분들이 많았다. 덕분에 많은 힘이 되었다. 


 아침 9시, 늘상 가던  2층이 아니라 4층 분만실, 수술실로 올라갔다. 보호자인 엄마는 문 밖에서 기다리고 나는 걸어서 수술실 아니 분만실로 들어갔다. 수술실 간호사님의 숙련된 움직임에 긴장할 새가 없었다. 눈 깜박하니 나는 침대에 누워있고 눈 깜박하니 내 팔은 묶여 주사가 들어간다. 잠시 뒤 의사 선생님이 오시더니 마취가 시작된다. 어떻게 해야하지 하다보니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수술은 끝나 있었다. 내 생에 처음 하는 수면마취는 이렇게 끝났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티비를 보면 연예인들은 수면 마취를 하고 나면 이상한 말도 하고 웃기던데. 


 생각보다 수술에서 일찍 깨어났고 통증도 없었고 정신이 들면서 부터는 밖에 있는 엄마가 걱정 되었다.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 나갈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남아있던 링겔을 빼고 혼자 있을 엄마를 만나러 나갔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 잘못되는 줄 알았다며 얼굴에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나는 엄마가 걱정 되어 일찍 나온다고 나온건데... 멀쩡 했던 아빠는 배가 아파 병원에 갔고 간단한 수술 후 중환자 실에서 삼일 만에 아빠는 세상을 떠나셨다. 나 역시 그러지는 않을까 엄마는 말도 못하고 걱정을 했었나 보다. 나의 마음과는 반대로 말이 나온다. “이래서 엄마 안데려 오려고 했는데.” 솔직히 ‘엄마가 걱정되서 링겔 다 안맞고 나온거야.’ 좋게 말하면 될걸 말에 가시가 달아 내 뱉었다. 


 사실 수술을 앞두고 엄마가 걱정 할까 엄마가 아닌 다른 보호자를 찾았는데 없었다. 남자친구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고, 다른 친구들을 산부인과에 부르자니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닌데 이상했다. 수술을 위해 다른 보호자를 찾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결혼을 안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는데 엄마가 돌아가시면, 나는 이제 부를 사람도 없네. 하하. 다른 수술이라면 다른 친구를 불렀겠지만 왠지 산부인과에는 부를 수가 없었다. “산부인과”라는 약간 부담스러운 이름 때문인가. 아니면 수술 부위가 너무 프라이빗 한 곳이라 그런걸까. 잘 모르겠다. 


 30분 밖에 지나지 않은 줄 알았는데 9시에 들어간 수술실은 11시가 되어 끝이 났다. 다시 2층으로 내려가 의사 선생님을 만났고, 선생님은 수술은 잘 끝났다고 한다. 나는 아직 가임기의 여성이기에 자궁 경부를 많이 떼어낼 수 없다고 한다. 떼어낸 절단면에도 감염된 세포 약간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이상으로 절단을 하면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지켜보자고 했다. 세포를 떼어내며 절단면을 레이저로 처치를 했으니 지켜봐도 될 것 같다고 한다.


 자궁을 다 떼어내지 않는 이상 바이러스가 한 번 침투되면 감기 같아서 면역력이 안좋아진다면 언제든지 재발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전에는 수술을 하고 나면 자궁 경부를 묶거나 유산의 위험이 컸으나 요즘 레이저를 통한 수술에는 출산에 대한 큰 부작용은 거의 없는 편이라고 했다. 산전검사에서는 자궁, 나팔관, 난소 모두 혹이 없고 깨끗하고 모양도 좋다고 했는데... 자궁경부가 문제가 될줄은 몰랐다. 아이를 낳기 위해선 정말 신경 쓸 것이 많구나 다시 한 번 느꼈다. 


 수술을 마치고 계산을 하고 집에 가야할 차례다. 세포검사, 조직검사, 각종 검사들로 얼마나 돈이 나오려나 걱정이 되었다. 진단부터 수술까지 걸린 시간도, 비용도 놀라웠다. 이 날 수술비는 9만원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은 최고다. 원무과에서 “9만5천8백원이요.” 라고 하는데 “네???” 다시 물었다. “19만원 아니고 9만원이요?” 원무과에서는 왜 자꾸 묻냐는 듯 “네에.” 나는 믿을 수가 없어 다시 물었다. “떼어낸 세포 재검사 하는 비용은 나중에 내는 건가요?” “아.니.요. 다. 포.함.이.에.요.” 정말 놀랍다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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